
2024년 새해 벽두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운동하기, 집밥 차려 먹기, 저축하기 등이었고, 이들 목표의 가장 큰 지향은 ‘건강하기’였다.
나는 아주 어릴 적, 나를 무척 좋아했던 친언니에게 감기가 옮은 후 엄청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타고나기를 허약하게 태어난 나는 단순 감기도 남들보다 몇 배는 심하게 앓았다. 그래도 부모님의 지극정성 속에 나이가 들면서, 허약했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 튼튼한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그 튼튼함의 정도가 어떠했냐면, 점심시간이 되면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 나무에 올라가 친구들을 구경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엄마를 닮아 하나같이 다 통통했던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뼈말라’였던 애가 혼자 나무를 쑥쑥 타고 오르니 원숭이라는 별명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며 편식하던 아이의 식성은 성인이 되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호호 할아버지가 됐다. 말띠라서 그렇게 뛰어다니냐는 핀잔을 받던 날랜 몸은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건지 발목부터 닳기 시작해서 움직이는 게 고단해졌다. 좋게 말하면 아주 행복했던 사람이고, 안 좋게 말하면 게으름뱅이. 그게 딱 최근의 내 모습이었다.
건강을 되찾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식단 관리와 운동이었다. 식단 관리는 배달 앱을 지우면서 시작했다. 매일매일 시켜 먹던 배달 음식 대신 닭가슴살, 채소, 잡곡밥 등 조리를 많이 거치지 않은 자연식 위주로 먹기 시작했다. 늘 달고 살았던 야식과 군것질도 조금씩 끊었다. 원래도 간식을 사두는 편은 아니었지만 식단을 바꾸다 보니 야밤에 불현듯 편의점으로 가 간식을 사는 일이 줄어들었고, 배달 앱 설치를 고민하는 순간도 사라졌다. 운동은 달리기, 홈트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내게는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헬스를 선택했다. 돈을 내면 그게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하지 않겠냐는 나름의 판단이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많지 않은 우리 학교 CBNU스포츠센터 헬스에 한 달을 등록하고 일주일 정도 새벽마다 열심히 운동했다. 그런데 나는 몸살이 났다.
밤새 열로 고생하다 겨우 찾은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가 너무 높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운동이 건강을 해치다니 이보다 우스운 꼴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그제야 내 건강 계획을 뒤돌아봤다. 먹던 양을 꽤 줄이고, 하지도 않던 운동을 갑자기 일주일 내내 강행했다. 심지어 6시간도 채 자지 못한 날도 운동을 갔으니, 병원비로 청구된 6만 원은 내 몸을 소홀히 한 대가였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운동과 식단, 그로 인한 몸살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내가 깨달은 건 역시 뭐든 천천히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하길 바라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누워있던 그때도, 운동을 하면서 식단까지 맞추려다 건강을 지키지 못한 지금도, 결국 중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고 나는 개강을 맞이했고, 내 건강 계획의 방향은 다소 달라졌다. 건강하게 먹기, 운동하기, 그 사이에 ‘타협할 줄 알기’라는 문장이 추가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은 운동을 가지 않거나, 런닝머신이나 스텝밀 같은 유산소 기구만 사용한다. 밥도 매일 먹던 단백질과 채소의 굴레에서 벗어나 원하는 음식을 적당히 먹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다. 바꾼 방법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이상에 도달하기까지의 길을 더 멀고 아득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게 내 중간이고, 이게 더 바른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년 뒤의 내가 이 데스크칼럼을 다시 읽을 때 지금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배시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