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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빈
<데스크칼럼> 참사를 기억한 시간
제 983 호    발행일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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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9일은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많은 이가 10.29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생각하기도, 먹먹한 감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경험한 사회적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다. 공교롭게도 두 참사의 희생자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다. 그래서 인지 두 참사의 희생자를 떠올릴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당시 나이는 만 16세였다. 2022년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 156명 중 104명이 20대 희생자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2003년생인 나는 만 11세,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만 19세였다. 그렇기에 이들 참사를 떠올릴 때면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하는 가정으로 참사를 생각하곤 한다.
  이들 참사를 접했을 때의 기억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에 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후 TV를 틀었을 때, 배가 뒤집혀 침몰하고 있었다. 사망자 수는 처음에 1명이었는데 화장실에 갔다 오고, 간식을 먹고, 밖에 나갔다 오면 그때마다 사망자 수는 늘어나 있었다. 첫 번째 사망자가 뉴스 속보로 나온 후 잠시 광고가 나왔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나온 광고 속 음악이 계속 귀에서 맴돌아 무서웠던 건 기억한다. 겁에 질린 상태에서 들은 음악였기에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 귀에 더 맴돌지 않았을까 싶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접하게 된 기억을 떠올려보면, 30일 새벽이었다. 스탠드만 켜져 있는 깜깜한 기숙사 방에서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하다 머리를 식힐 겸 접속한 유튜브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 좁은 골목과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압사 사고를 전하는 뉴스가 여러 개 올라왔다. 분명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라고만 생각했다. 영상 속 인파로 인해 파도처럼 출렁거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침이 되니 여러 단톡방에서 이태원에 간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는 문자가 울려댔고, 이태원 참사 뉴스 영상을 다시 보고서야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을 인지했다. 이후 고등학교 동창의 이태원 참사로 인한 부고 소식을 들었고, 그제야 참사가 실감 났다. 한 번도 같이 대화해 본 적 없었고, 이름과 얼굴만 알던 동창이었는데도 마음속 먹먹함은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힘든 시간을 걷는 이를 위로 하려고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시간은 단지 흐를 뿐 아니던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건 없었다. 그저 힘든 시간 속에서 어려움을 견딜 뿐이었다.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시간이 흐를 동안 해결된 건 없었고, 힘든 시간 속에서 그들은 슬픔을 삼키는 방법만 터득했을 뿐이다. 참사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난 10월 29일에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언급하며 “국민의 일상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일상에는 희생자들의 일상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동안 그들의 일상은 지켜졌다고 볼 수 있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정치 프레임을 씌우고, 사고의 책임은 ‘그러게 거길 왜 갔어’라는 말로 희생자에게 돌렸다. 공감도, 위로도, 행동도, 진정성도 없는 말은 그들의 일상을 지키지 못했고, 더 이상의 참사를 막을 조치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참사는 언제고 반복될 것이고, 또다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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