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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원표
<기자읽다> 자의적인 심판의 위험성, 과거의 교훈과 현대적 의미
제 983 호    발행일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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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Witch)란 현대 사회에서는 판타지적 요소, 혹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중에게 신화적 요소의 재미를 선사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현대에 마녀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거나 실재하는 대상이 아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수 세기 전, 종교가 과학을 압도하고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을 좌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에 반하는 이단과 악마, 그리고 악마와 접촉한 인간인 ‘마녀’는 존재의 영향력이 실재했다. 적어도 그 시기에 마녀는 실존하는 두려움이자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 병적인 거부감은 마녀사냥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심판을 남겼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그러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종교적 격동의 시절인 1486년경 종교재판관 하인리히 크라머와 독일 쾰른 대학교 학장 야콥 슈프랭거의 공동 저술로 작성됐다.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마법의 요소, 2부에서는 마법의 수단과 마녀를 퇴치하는 방법, 3부에서는 이단을 근절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중세 유럽에서 엄청난 반응을 이끌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에 힘입어 유럽 전역으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책의 전파는 신과 종교에 대한 신념에 의지해 살아가는 유럽인들에게 이단과 악마에 대한 불편함을 계속해서 가중했고, 곧 이단과 마녀의 전령으로 통하는 마녀를 찾아내고 고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결과를 촉발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인간의 자의적인 심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은 마녀사냥의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으며, 수많은 여성과 소수자들이 ‘마녀’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결과가 보여주는 문제는 단순히 마녀사냥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의 독자들은 자의적인 기준과 편견에 기초한 심판이 인간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마녀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이들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짓는다. 책은 마녀를 식별하는 방법과 처벌 절차 및 기준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그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여성의 외모, 특정 행동, 심지어는 사회적 지위가 그들을 마녀로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의적 판단은 실질적인 증거나 객관적인 논리보다는 당대의 두려움과 편견에 의해 좌우됐고, 그 결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동기로 작용했다.
  자의적 판단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합리적 반론이나 타당한 검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은 변호할 기회조차 없었고, 일방적이고 왜곡된 심판 구조는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가운데 심문과 처벌이 진행했다. 이는 삐뚤어진 절대권력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과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자의적인 판단과 편견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가짜 뉴스, 혐오 발언, 좌우 진영논리와 흑색선전 그리고 법적 절차에서의 불공정한 재판은 모두 자의적인 심판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충분한 검토나 증거 없이 비난하거나 낙인찍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는 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여론 재판은 자의적 판단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가 퍼지면, 대중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고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진실은 아무 소용이 없고 비합리적 심판이 중세 마녀재판처럼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그의 명예와 삶을 파괴한다.<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역사는 자의적 심판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공정한 사회는 누구도 자의적인 심판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실수는 반복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녀사냥의 망치를 다시 들지 않도록 이성적인 판단과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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