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사에서 매 호를 발행할 때마다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만약에 막판에 엎어지는 기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포토뉴스로 넣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놓는다든지, 엎어진 기사를 대체할 기사의 주제를 미리 생각해둔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하지만 탄핵 국면에 들어서고는 ‘탄핵 인용’이라는 하나의 경우의 수만 생각했다. “만약에 탄핵이 기각되면 어떻게 해?”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른 수를 생각한 적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탄핵이 인용될 거라 자신한 건 아니었다. 몇 시간 후의 내 기분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데, 나라의 운명을 예측하는 건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나의 상식에는 그 수만이 정답이었다.
하루하루가 참 길었다. 여러 언론사에서 3월 첫째 주에 탄핵 선고 날짜가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한 뉴스를 보고 끊임없이 속보를 확인했다. 휴대폰으로 속보를 확인하면서 ‘다음 주에 나오려나 보다’라고 생각한지도, 뉴스에서 ‘오늘도 탄핵 심판 선고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은 지도 거의 한 달이 돼 가던 때였다. 언론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늦어지는 선고 소식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헌법재판관들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에 빠져서 결정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평론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의 논리가 아닌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나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늦어지는 선고에 초조할지언정 헌재가 결정문 작성에 공을 들이고 있기에 생긴 상황이라 믿었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상식이 판을 치더라도 결국 비상식의 논리가 상식을 넘어뜨릴 순 없다. 12월 3일에 모두가 지켜본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은 4월 4일에 윤석열의 파면을 모두가 지켜보며 종점을 찍었다. ‘헌정 사상 최초’라는 단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요즘,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판결문이었다. ‘이렇게 명료한 결정이 그렇게도 오래 걸렸네’가 아니라 ‘명료하게 쓰기 위해’ 오래 걸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탄핵 인용 선고 이후 그토록 우려하던 극우들의 반발도 생각보단 잠잠한 듯하다.
탄핵 선고 전문에는 단지 판결을 내리는 것을 넘어 국민들에게, 국회에, 전 대통령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담겼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합니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문장인데도, 언제부턴가 이상적인 정국에서만 나타날 것이라 생각해 왔다. 현대의 권력분립주의는 권력간 협조하고, 공화를 강조하는 것 아닌가. 지난 몇 년간 다수당인 야당 주도의 입법안 통과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는 소식은 국민들을 지치게 할 뿐이었다. 툭하면 민생회복을 말하는 이는 많았지만, 정작 무엇이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것인지 말하는 이는 없었다. 야당과 여당, 정부와 야당의 양극화가 그 원인이 아니었겠는가.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시작이다. 이 시작에선 당연한 말이 이상적으로 들리지 않기를, 상식이 통하는 국정이 운영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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