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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호
<기자, 보다> 혐오에 맞설 수 있는 힘이란, 영화 <미키17>
제 986 호    발행일 :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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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키17>은 원작 소설 <미키7>을 각색한 봉준호 감독의 SF 영화다. 극 중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미키라는 인물은 영화의 초입, 크레바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 살려달라는 그의 외침에, 그의 친구인 티모는 “넌 어차피 죽으면 다시 프린트될 거잖아”라고 말하며 미키를 그대로 버려두고 돌아간다. 미키‘17’의 의미는 17번째 미키라는 뜻으로, 17번째로 ‘프린트’된 미키인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니플하임’ 행성으로, 행성 이주 프로젝트를 위해 몇 년의 항해를 거친다. 미키는 빚에 떠밀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이 우주선에 올랐으며, 이 프로젝트에서 ‘익스펜더블’이라는 직함을 갖는다. expendable, 직역하면 ‘소모용의’라는 뜻의 형용사다. 미키가 죽으면 새로운 미키가 바이오프린터로 프린트된다. 모든 미키의 모든 기억은 메모리에 저장되며, 죽음의 기억까지도 저장된다. 미키는 그저 실험 쥐에 불과한 것이다. 미키의 죽음과 프린트가 지속될수록 미키의 생명은 경시된다. 초반 미키의 생명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지만, 이후엔 프린터에 받침대를 빼놓은 단순한 실수로 미키가 그대로 프린터에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 미키의 죽음에 대해 점점 둔감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행성 이주 프로젝트의 우두머리는 정치인 ‘케네스’다. 케네스는 ‘멍청한 독재자’로, 아내 ‘일파’의 입김에 휘둘리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한다. 또한, 그는 미키뿐만 아니라 우주선 내의 시민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내는 공간 또한 그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독재 세력은 식사 배급량을, 시민들을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칼로리를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성행위 금지법이라는 허무맹랑한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니플하임 행성에 도착하면 번식을 위한 자유로운 성행위를 장려하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정책에도 그의 지지자들은 열광하며 광적으로 지지를 표한다. 지지자들의 이토록 강한 결집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케네스는 공공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이들을 결집한다. 이 괴상한 판타지가 다분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혐오’는 파시즘의 강력한 무기다. 이들의 적은 니플하임 행성의 원주민 ‘크리퍼’다. 이들은 ‘creepy’(오싹한, 기이한)한 생김새를 가졌다는 이유로 ‘크리퍼’란 이름이 붙여졌다. 케네스 부부는 크리퍼는 인간을 잡아먹는다며, 크리퍼를 주적으로 상정하고 적대감을 조성한다. 크리퍼는 앞선 영화의 초입에서 크레바스에 빠졌던 미키를 구해주는, 해롭지 않은 평화적 존재였음에도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 크리퍼와의 전쟁을 도모하는 케네스에게 소리치던 미키의 연인, 나샤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들 잘 살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크리퍼도 미키도 다른 모든 시민도 원래 잘 살고 있었다. 분열을 조장해 권력을 잡고 잡은 권력을 유지하려 혐오와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권력자의 알량함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듯했다. 케네스 부부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던 체제를 전복시킨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니고 미키를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크리퍼에게 공감할 줄 알며 미키의 아픔에 연대하던 이들이 결국엔 승리한 것이다.
  <미키17>은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엿볼 수 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 희망의 빛을 알려주는 영화다. 영화의 마무리처럼 연대와 사랑의 힘을 우리 사회에서 또다시 보고 싶다. 혐오와 폭력에 맞섰던 연대와 광장의 함성, 평화를 바라는 그 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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