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라고. 인생은 태어남(Birth)와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라는 것이다. 경제학 전공서 도입에 나오는 이 문장은 인간의 삶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고 어떤 욕구를 억제해야 할 것인가 하는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다.
원체 선택하는 데에 많은 고민을 하지만, 20대가 된 후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부턴가 나에게 새로운 선택지는 설렘보단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충북대신문> 편집국장 직책을 맡는 선택지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거의 한 학기 내내 고민하고, 편집국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선택에 후회한 적이 없는지 묻는다면, 무조건 있다고 답할 것이다. 없어보일지 모르겠지만 진심이다. 편집국장으로 발령받은 첫 학기에는 걱정과 불안만 가득했다. 신문사 운영에 대한 방향은 잡았는데, 좀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기자였을 땐 내가 작성한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하고, 다시 인터뷰하면 됐다. 그런데 국장의 업무는 달랐다. 기자들을 관리하는 것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어떤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기사들도 봐줘야 했기에 찝찝함을 남긴 채로 넘어간 적도 많았다.
그리고 일은 왜 항상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편집국장으로 지내면서 교육실습도 가야 했고, 항상 있던 전공 과제와 시험공부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신문사에 쏟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늘어났을 뿐더러, 시간을 쏟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발생했다. 도피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결국엔 도피하고 싶었던 나의 발걸음은 신문사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는 이 선택을 왜 했는가, 그리고 왜 도피하지 못하고 있나. 언젠가 생각해봤을 때 그 질문에 내린 결론은 신문사에 대한 애정이 그 모든 선택을 이끌었다는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더 좋은 신문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 마음이 또 좌절할 걸 알면서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렸다. 만평, SNS 홍보 등 독자를 확인할 수 있는 신문의 외적인 요소에도, 회의 방식 등 신문사 내부 운영에도 많은 시도를 했다. 이것저것 하려는 국장 때문에 기자들도 많이 애썼다.
신문사에 있다 보면 모두가 신문 발간에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나 때문인 것 같아 속으로는 뜨끔하면서도 모른 척했다. 기획안을 작성해도 기획회의를 하면 수정할 부분이 꽤 많고, 취재를 해도 중간보고를 하면 다시 취재할 부분이 생기고, 기사 초고를 제출하면 또 다시 취재하고 다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면 편집은 편집 기자들이 새벽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쳐 겨우 끝나고, 만평과 SNS 카드뉴스도 피드백을 통해 반복되는 수정을 거친다. 끊임없는 쳇바퀴에 지친 기자도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외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신문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편집국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제야, 기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대학 신문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이지 않겠는가 답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의 20명이 되는 기자들이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북대신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면 학교에 그런 기구가 있냐는 사람들의 질문도, 학교에 신문배포대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반응도 이젠 익숙해졌다. 새로 발행된 신문을 넣고 며칠이 지나도 신문이 줄어들지 않는 신문배포대도 별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가 낸 신문에 관심이 없다는 무력함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을 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충북대신문>에서 활동하기로 선택한 기자들까지 이 무력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엔 며칠이 지난 후 비어 있는 신문배포대를 봤다. 또, 신문사 앞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시민도 만났다. 그 광경이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색해진 광경을 보게 되는 요즘에 와서야 편집국장 생활을 마무리 짓는다. 그토록 힘들었던 편집국장 생활을 마칠 땐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크다. 진부하게 들리는 말이라 이 문장을 결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 문장 외에 대체할 말이 없다. 이 말을 한 당사자들의 심정이 이제 이해가 간다.
이번 학기에 함께 한 수진 부국장, 취재부 동건, 승민, 시호, 한빈, 인선, 성원, 동호, 정린, 륜휘, 예원 기자와 편집디자인부 유리, 영준, 승균, 현지, 윤서, 준환 기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부족함이 많은 국장을 기자들이 믿고 따라주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국장의 부족함을 기자들이 채워줬다. 나의 걱정과 불안이 때로 당신들에게 전해졌다면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 전한다.
<충북대신문>의 70년 중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 3년 동안 20명이 넘는 기자들을 떠나보냈다. 항상 기자들의 떠나는 발걸음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는데, 이젠 나의 발걸음이 신문사를 떠나야 하는 시점이다. 이번 데스크칼럼을 끝으로 <충북대신문>에서의 끝과 앞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선택하며, 앞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충북대신문>을 읽을 나날을 기대한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