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과학대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게 가장 어려운 점을 뽑자면 사회가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비록 한 명의 사람이라도 사람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무궁무진함은 언제나 공부에 있어서 부담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경향성을 파악하거나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 난처한 경험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문사에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취재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 또한 한 사람의 이야기라도 매우 섬세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특히 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인터뷰이에게 항상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곤 한다. 기사를 기획할 때 미리 어떤 답변이 나올지 예상하고 또 나름 많이 준비해 가도, 현장에서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 나의 예상과 형식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체감하게 된다.
가장 처음 진지하게 인터뷰이와 공감한 것은 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인터뷰한 때였다. 활동이 활발한 곳이라 자료가 많아 질문을 매우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혼인신고 시도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소송도 진행하셨는데, 어떤 계기와 결심으로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디셨나요?” “처음 신청은 그냥 될까? 싶은 심정이었고, 이후에는 줬다 빼앗긴 게 억울했어요.” 기억도 흐릿하고, 기사에도 답변 전체가 실리지 않아 정확하진 않지만, 영웅과 비슷한 용기나 굳은 결심의 답변을 예상하고 또 듣고자 했던 나의 질문에 인터뷰이가 웃으며 소박하게 들려준 답변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거였다. ‘혹시 이거 되는 건가?’ 하는 일상에서 자주 드는 호기심과 줬다 뺏긴 억울함. 나도 자주 느끼는 흔한 감정이 그 동기였다. 그제야 나도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인권 신장에 한 걸음을 보탠 소송의 주역이란 꺼풀을 떨치고, 내 앞의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무엇 하나 특출나거나 위인전에 나올법한 대단한 영웅은 아녔다. 물론 앞서서 나가는 열정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숨긴 경험도 있던 분이다. 한 발짝 떨어져 듣는 것과 사람을 직접 만나 듣는 것은 풍부함과 깊이 그리고 이해에 있어 천지 차이였다. 다양한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매력 때문에 힘든 신문사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무한한 다양성을 모두 인정하고 매번 신경 쓰는 건 머리 아픈 일이다. 그래서 MBTI나 에겐/테토와 같이 사람의 성격을 쉽게 유형화한 것들이 유행하는 것이겠다. 이런 일상적인 유형화는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유형화가 혐오와 폭력에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좌냐 우냐, 빨강이냐 파랑이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여자냐 남자냐 등. 서로 자신들 내부에서 한쪽에 대한 편견과 예상으로 상대를 악마화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분노하며 혐오한다. 슬픈 일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역시 서로 직접 만나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며 내가 깨달은 것처럼, 직접 만나 대화하면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해를 풀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북대신문> 편집국장직을 맡으며 부담과 고심이 있었다.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이의 노력과 추억이 어린 <충북대신문>을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끌어야 할까? 나는 우리 신문이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전달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오해와 편견을 부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당신께 전달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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