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짧은 칼럼 하나를 쓰기까지 문서 탭 목록에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초고가 존재했다. 어쩌면 이것도 완성되지 못할 거란 막연한 불안을 안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완전히 새로운 창조는 더는 없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빈 문서를 채워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벌써 1년을 넘도록 기사를 써왔고, 이젠 편집국장의 자리에 있음에도 글을 쓴다는 건 정말이지 막막한 일이다.
칼럼을 쓰는 건 주제와 생각만 정리되면 되기에 비교적 덜 고된 일이다. 더 깊은 노력이 들어가는 건 기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자료를 정리해야 하는 기사다. 바쁜 나날 중 A4로 3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체력, 정성을 쏟는 건 어지간한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여러 번의 피드백과 수정의 인내까지 거쳐야 비로소 글이 완성된다.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런 어려움을 거쳐 직접 글을 쓰는 일은 ‘미련한 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AI에게 맡기면 기획의 단계부터 글을 완성할 때까지 제법 괜찮은 결과물이 쏟아진다.
이번 학기 시작부터 여러 교수님이 수업 중에 똑같이 하신 말이 있다. “AI가 다 잘해주죠?”, “AI 때문에, 우리도 평가하기 곤란해요”. 나날이 발전하는 AI의 실력에 어쩌면 비효율적으로 글을 완성해 나가는 나에게 불안감이 들이닥쳤다. 밤을 지새우는 노력이 AI에게 하는 간단한 명령 하나로 우스워진다. 나는, 그리고 우리 기자들은 어째서 수고로운 걸음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빠르게 채워지는 AI의 하얀 바탕에 비해 느리게 채워지는 나의 바탕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정답이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의문에 겨우 내린 답은 단순한 전달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의 차이다. 빠른 속도, 깔끔한 구조와 정리, 웬만큼 정확한 정보. 이젠 언젠가 AI에게 핵심이나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선 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AI는 사건이나 사실이 있는 현장에 다녀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구태여 시간을 내지 않으며, 깔끔하고 간결하지 않더라도 그곳의 상황과 감정을 실으려 밤새 고민하지 않는다. 미련한 짓처럼 보이는 노력이 나와 기자들의 글이 갖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의 목소리를 글로 써 독자들에게 이어주는 것, 그 연결 다리 역할은 많은 정성을 쏟아붓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사람들 사이를 잇는 글이란 천성적으로 느리고 고된 작업인 것이다. 시간과 체력을 들여 그곳을 다녀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직접 듣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속이야기가 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사를 쓰며 느낀 것이기도 하다. 여러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 혹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게 만든다. 이는 단 몇 초, 몇 분에 뚝딱 글을 완성하는 AI가 기어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힘겹게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구태여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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