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닫혀 있던 군사시설이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산 생각의 벙커’(이하 당산 벙커)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으로 오는 11월 16일까지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약 50년 동안 군사시설로 사용된 벙커가 예술을 통해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산 벙커는 우리 학교 정문 정류장에서 814번 버스를 타고 도청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도보로 약 5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익숙한 청주의 풍경 속에서도 이곳은 입구부터 서늘한 공기를 내뿜으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외관만으로도 군사시설의 흔적이 짙어, 이곳이 어떻게 예술 공간으로 바뀌었을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긴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김기성 작가의 <봉명주공, 장면들>이라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작품은 청주의 1세대 아파트 단지인 봉명주공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익숙했던 공간도 새 건물이 들어서면 금세 잊히지만, 영상은 아파트 단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오래 저장한다. 물리적 공간은 사라졌어도 각자의 추억에 남아있을 봉명주공의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처음에 보여줌으로써 당산 벙커도 누군가의 추억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영상 전시를 보고 나오면 긴 벙커 천장에 추들이 달려 있는데, 이는 최우람 작가의 <비밀의 추>로 당산 벙커의 서늘함 속에서 묘한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추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벙커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다음은 신형섭 작가의 <아르고스 판옵테스Ⅰ,Ⅱ,Ⅲ,Ⅳ>가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은 바비큐 통이나 쓰레기통 같은 일상 속 사물에 카메라 렌즈를 넣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벽면 전체에 투사된 이미지가 방을 가득 채워 그 안에 있으면 현실과 분리된 낯선 공간에 들어온 듯하다. 방안에 펼쳐진 여러 이미지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이병찬 작가의 <플라스틱 유기체>다. 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비닐 구조물이 마치 살아있는 거미처럼 움직인다. 들어오기 전에 들은 소리는 비닐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소리였고, 그 움직임이 징그럽게 느껴졌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작품 제목처럼, 플라스틱에 생명을 불어넣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 <플라스틱 유기체>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는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방 안쪽에는 거미 다리처럼 뻗은 구조물이 문을 휘감고 있는데, 문을 열 때마다 유기체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 유기체의 호흡 속에 함께 있는 착각이 들었다.

전수천 작가의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 전시도 눈길을 끈다. 유리판 아래에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가전제품이, 그 위에는 흙으로 빚은 토우가 놓여 있었다. 전통 재료와 현대 문명이 한 공간에서 어울리며 묘한 대비를 만들었다. 토우가 위에 놓인 모습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 위에서 인간적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로 보였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지금, 인간적인 것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엄지혜 작가의 <미래열병>, 박기진 작가의 <미지> 등 총 11개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폐쇄된 벙커의 어둠 속에서 마주한 예술은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을 줬다.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장소를 기억하고 다시 떠올리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산 벙커에서 전시를 관람하며, 청주와 나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추천한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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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