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모임이나 공부 혹은 진로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읽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오랜만에 온전한 쉼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만의 여유를 부리니 새삼 여태까지 얼마나 바쁘게 지내왔는지 느껴진다. 성실함과 성취는 단연 좋은 것이지만, 요즘은 그 미덕만을 강요받는 세상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바쁘게도 살아간다. 바쁘게 나아가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하고, 심지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도, 주말이나 방학을 맞아도 완전히 편안한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도리어 이 휴식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 뒤처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SNS는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기 십상이다. 화면을 내리다 보면 자신보다 더 바쁘게 더 치밀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심지어는 쉼조차 생산성을 강요받은 모습이 SNS에 흔히 전시된다. 쉴 때 하는 취미라고 생각되는 여행, 독서, 영화 등의 문화생활에서 인증샷은 이제 필수가 됐다. 열심히 휴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독서는 자기 계발을 위해서,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넓은 시각을 위해서, 영화는 교양이나 트렌디함을 갖추기 위해서만 추구한다. 생산적인 휴식의 모습이 아니라, 순전히 그 순간에 멈춰 자신에게 몰입하고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불안함에 못 이겨 쉼의 순간에도 성취와 열심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휴식의 배제는 단순히 SNS와 개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달리기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가 원인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더 효율적으로, 더 잘.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미덕이다. 학생일 때는 더 좋은 대학이나 직장, 더 좋은 점수, 더 많은 상장과 자격증을 요구받고 이후에도 더 높은 성과, 더 바쁜 모습, 더 좋은 집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우리의 삶을 멈춰선 안 되는 달리기 트랙 위로 몰아간다. 그러곤 그 트랙에서 벗어나거나 그 위에 멈춰 서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제 몸은 쉬어도 마음만은 절대 쉬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린 거다.
성실함과 성취만으로 평가하는 현실에서, 어느 순간 쉰다는 것은 나태나 도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휴식은 나태하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휴식과 게으름을 구분해야 한다. 휴식은 비록 비생산적일지 몰라도, 그 의미는 있다. 휴식은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어딘가로 도망치지 않고, 홀로 서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일이다. 우리는 휴식의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좋아하고 싫어한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속도가 나에게 맞을지 등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고 나면, 더 단단해진 채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휴식은 절대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되려 더 오랫동안 달리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악보에는 쉼표가 있고, 경기 중에는 숨을 고르며, 작품에도 호흡이 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우리 인간에게도 휴식은 필수다. 휴식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시간을 더 벌어다 주는 생존 전략이다. 지금도 자신을 다그치며 버티고 있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쉬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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