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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신문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가을, 81-306'
제 809 호    발행일 : 2009.11.02 

'가을, 81306'

윤리교육과 2006050007
이상현

1.줄거리

  이 그에는 크게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이 되는 빔 프로젝터, 그 빔 프로젝터가 처음으로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4년 전의 그녀, 그리고 지금 다시 사랑하게 된 또 다른 여학생인 ‘그녀’이다. 81동 306호 강의실의 천정에 5년째 매달려 있는 빔 프로젝터는 일단 남자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학생을 이성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그가 사랑하는 여학생이 있다.
  그는 5년 전에 그 강의실에 설치되었다. 대만의 어느 공장에서 제조된 그는 빛을 쏘아 영상의 색을 재현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기 때문에 색에 굉장히 민감한 존재이다. 때문에 그에게는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사람의 특수한 파장이 보인다. 그 파장은 그 사람의 자아와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각종 개성이 난무하는 대학의 강의실이란 각종 색깔이 어지럽게 물결치는 바다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도 특정한 색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4년 전 어느 날 에 아침 일찍 강의실에 들어와 서럽게 울던 그녀다. 그녀는 실연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사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투명했던 그녀가 그렇게 사랑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질 때만 유독 그 자신의 색깔을 내며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빛이 난다는 것 뿐이다. 물론 그는 그 빛만을 봤을 뿐 왜 그런 빛이 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끝까지 그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영상을 보며 빛을 발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녀로 하여금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는지를 터득한다. 그리고 그렇게 빛을 발할 때 그녀는 색을 갖고 온도를 갖기 때문에 그것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열중하고, 점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우 그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는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무리한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일지 몰라도 더 큰 불행은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사랑에 행복한 나날이 지나고, 그녀와의 마지막 수업 날 그는 그녀가 가진 책을 보게 된다. 그녀가 쓴 글자들은 주인을 닮아서 투명하게 보이는데, 유독 책 표지에 쓰인 남자의 이름만 그녀처럼 푸르게 빛이 났다. 바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다. 왠지 불길한 느낌을 갖고 왜 그 글씨가 빛이 나는지를 궁금해 하던 주인공은 급기야 그녀가 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갖는다’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 스스로에게 한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글귀에서 일종의 진리를 깨닫는다. 마치 거울을 보듯 그는 거기에서 자신의 존재가 갖는 특징. 즉 그녀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늘 외면했던 일이지만 그 일은 그에게 큰 충격이 되었고, 마치 그녀가 자신에게 그걸 말하는 듯한 환상까지 보게 되고, 결국 그의 램프가 터져버린다. 그리곤 다신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존재가 갖는 ‘무(無)’로써의 특징에 괴로워 한다. 그는 어엿한 기능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그들에게 별다른 존재가 아니었고, 특히나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시련을 딛고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그것이 본문의 첫 부분에 등장한 지금의 그녀이다. 어리버리하게 보이는 그녀는 마음씨가 너무 착해서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4년 전 그가 사랑했던 그녀와 비슷한 면이 있다. 자신의 고집이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투명한 존재였던 것이다. 한 번의 열병을 치른 주인공은 다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노련해져서 욕심 부리지 않고 역시 먼발치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한다. 물론 그녀는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행복하다. 그러다 이제는 갈 시간이 되었다. 낡은 그 대신 새로운 빔 프로젝터가 들어오는 것이다. 이제는 갈 시간,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답게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기로 결심을 하지만 그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결국 그녀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잔인하게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바보 같은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순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의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순간, 그는 4년 전의 그녀처럼 파랗게 빛나는 지금의 그녀를 목격한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던 걸까.

2.부언(함의)

  풋풋한 사랑 얘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는 한 젊은이의 사랑 얘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리다보니 저도 모르게 오늘날의 경제문제도 살짝 언급을 한 듯 합니다.(새로운 빔프로젝터의 스펙) 하지만 역시 메인 테마는 사랑이고 존재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이런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플라톤이 그의 저작에서 결국에는 ‘비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이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고 또 느끼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따금 우리는 우리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무력감을 느낀 경험은 한 번씩 있을 만합니다. 즉, 짝사랑의 기억입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바라만 보는 걸로 만족한다.’라는 자신어린 다짐이, 어느 샌가 결국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으로 성장하겠고, 이런 사랑의 표출이 잘못되면 스토커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짝사랑의 경험은 비단 요즘뿐만이 아니라 과거, 나아가 인류사에 걸쳐 공통적인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 그나마 ‘여겨지기라도 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실제로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좀 더 침착하고 인내심 있는 자아를 빔 프로젝터에 삽입시켜서 안분지족의 자세로 사랑할 수 있는 주인공을 그렸습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도 사랑은 할 수 있고, 실연도 경험하며, 그것 때문에 아프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사람이 끝까지 그 사랑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은 다른 여타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실로 아름다운 것이고, 엄연히 하나의 인연으로 기억되리라는 점입니다. 그 인연은 곧 추억이 되겠고,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랑으로 꽃 필 수도 있겠지요.

가을, 81-306

 
문득, ‘가을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아침 8시 33분 첫 학생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창가의 책상에 앉았을 때였다. 언제나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아침의 적막을 깼고, 그러다보니 가장 먼저 강의실에 들어온 학생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남학생이 고무줄에 끌려 미끄러지듯 앉은 그 책상은 교탁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것이었고, 가을의 아침 햇살은 정확하게 그 책상의 경계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곧 그 책상도 아득한 그 따스함에 침식될 것이었다. 여튼 그가 앉은 책상으로 스멀스멀 기어가던 그 햇볕이 내게 ‘가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오랜 식견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예비역’이었다. 타인의 시선이 무수히 머무를 트레이닝 바지를 아침 1교시부터 입을 수 있고, 감았으면 내 손에(물론 나는 손이 없지만) 장을 지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숙성된 머릿결, 비듬인지 보풀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검은색 그의 후드티셔츠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의 존재는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점점 책상을 침식해 들어오는 햇살에 이따금 얼굴을 찌푸리며, 책을 폈다 엎드렸다만 하는 그였지만, 나는 오랜 시간 이 곳에서 보낸 경험을 통하여 그가 예비역 중에서도 아주 노련한 ‘상예비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경험과 관찰력이 출중한 나는 그가 입대할 당시에 유행했던 패션이 트레이닝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귀신이 언제나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남는 것처럼, 무릇 예비역이란 입대 직전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것이니 말이다.
 
8시 38분, 그가 턱을 괴고 책을 보려고 하다가 이내 엎드려 잠을 청하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할 때 즈음, 다시 문이 열렸다. 이전의 소리보다는 좀 더 거칠고 뚝뚝 끊기는 삐걱임이었다. 나는 역시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그 소리의 주인이 여학생일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힘 좋은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시원하게 한 번에 문을 밀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배꼼 안을 한번 들여다보며 들어오던 그녀는 구두의 힐이 문턱에 걸려 자칫하면 넘어질 뻔 했다. 황급히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균형을 잡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저 멀리 삼라만상이 요약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예비역이 문제였다. 허공을 향해 애써 멋쩍은 웃음을 짓고, 아직 약간 덜 마른 머리카락을 한 번 더 쓸어 넘기며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녀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학기 초 강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이제는 제법 노련한 조교수S는 수강생들을 대표할 학생을 뽑았고, 대표를 도와서 학습기자재를 다룰 학생도 뽑았다. 그녀의 친구가 대표가 되었고, 기계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그녀가 학습기자재를 다루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나도 다루게 되었다. 그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엉겁결에 임무를 맡게 된 그녀는 정말 서툴렀다. 아니 사실은 우리들이 그녀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강의용 컴퓨터는 바이러스로 인한 다운이나 습관적 재부팅으로 그녀를 골탕 먹였고, 스피커는 특유의 고주파로, 한술 더 떠서 전자칠판이라는 놈은 좀도둑을 유인해서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강의 중 학습기자재들이 말썽을 일으키면 그녀는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다. 그런 그녀를 잘 알기에 나는 되도록 그녀에게 잘 맞춰주려 했다. 키가 작은 그녀가 리모컨을 잘 조작할 수 있도록 좀 더 신경 써서 신호를 받아주고, 공기필터에 먼지가 많이 끼긴 했지만 심호흡으로 열을 식혀가며 열심히 칠판 앞에 펼쳐진 스크린으로 화면을 쏘아 보냈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나를 끌 때 리모컨 전원버튼을 두 번 누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한번만 눌러서 웃음을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그녀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책을 꺼냈다. 교탁으로부터의 거리는 예비역 남학생과 비슷했지만, 창가 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인 벽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펼친 책의 내용을 보니 오늘은 화려한 색감과 특수효과를 사용한 동영상이 프레젠테이션에 사용될 것 같았다. 가을빛의 따스함이 천정으로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오늘은 더욱 노력해서 정말 멋진 영상을 구현하리라 다짐했다. 언제부턴가 사랑하게 된 것 같은 그녀를 위해서 말이다. 예비역 쪽을 바라보니 역시 엎드려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45°로 정갈하게 다리를 벌리고, 기하학적으로 팔짱을 낀 후 그 위에 고개를 올린 자세였다. 여학생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니 민망하고, 책상 쪽으로 향하자니 침을 흘릴 것 같아 불안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창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부심을 막기 위해서 지난 시간에 받은 프린트로 얼굴을 가렸다가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내 전공서적을 덧댄 흔적이 역력했다. 정말 예비역은 적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몸이 움찔하며 한차례 들썩였다. 그가 앉은 책상이 들썩일 정도로 강한 경련이었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책을 응시하며 딴 생각을 하던 그녀는 상상의 날개를 잃고 현실로 돌아와 반사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얼굴을 감싸 쥐며 고개를 듦에 따라 다시 시간은 정상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꿈을 꿔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역시 나의 지식에 의하면 그는 ‘떨어지는 꿈’을 꾼 모양이었다.
 
8시 43분, 그의 경련이 신호라도 된 듯 그녀는 교탁으로 걸어가 나를 위해 만들어진 리모컨을 집어 들고는 나의 전원을 켰다. 전기가 기판과 콘덴서를 지나 모터에 공급됐고 예열을 거친 후 나는 비소로 빛을 쏠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아 맞다!” 통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직한 말들만 흘러나오던 그녀의 입에서 격앙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짜증난다는 둥 고맙다는 둥의 말을 하면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한숨을 한번 푹 쉬며 책과 필통을 가방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예비역 쪽으로 돌려보는 그녀였다. 한번의 ‘떨어지는 꿈’ 덕택에 잠에서 깬 그는 예리하게 다듬어진 신경으로 그녀의 고개가 그를 향하는 것을 날렵하게 잡아냈다. ‘무슨 일이라도..?’라는 표정으로 그는 그녀를 봤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휴강이라고 하는데요.”
 
내 본체 기판에서 스파크가 한번 튀는 것을 느꼈다. 맞다. 휴강이었던 것이다. 저 빌어먹을 가을 햇살에 취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따스함에 내 회로 어딘가의 납땜이 녹아서 휴강인 줄을 까먹고 그녀를 위해 열심히 일할 생각만 했던 것이다. 아니 이 시간까지 강의실에 들어온 학생이 둘 뿐이라는 점에서 미리 의심을 해봐야 했다. 지레 괜히 앞선 기대 때문에 실망이 큰 나였다. 내가 그렇게 한탄을 하는 동안 예비역 남학생은 숙련된 동작으로 빠르게 가방을 쌌다. 그녀가 옷깃을 여미고 가녀린 팔로 가방을 들어 올리는 동안에 이미 그의 가방은 그의 어깨에 견고하게 매달려 있었다. 괜스레 얄미워지는 남학생이었다. 예비역은 뒷문으로 그리고 그녀는 앞문으로 각각 강의실을 나섰다. “이봐 나를 끄고 가야지!” 나를 향해서 리모컨 전원버튼을 두 번 누르는 것을 잊은 그녀를 향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거의 동시에 쾅하고 문이 닫혔다. 들어오는 소리는 다르지만 나가는 소리는 같았다. 텅 빈 강의실에는 가을빛만 가득했다. 아마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까지 그 따스함이 깃들었을 것이다. 거칠게 닫힌 문의 여파로 여기저기서 먼지가 날렸고 가을빛은 그 작은 입자 하나하나에 노랗게 색칠을 해댔다. “신났구만”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확실치는 않지만 조금 쓴 맛이 났다. 아무도 나의 램프를 꺼주지 않은 덕분에 나의 본체는 하릴없이 뜨거워졌고, 한참이 지나고 오후 수업 때가 돼서야 베레모를 쓴 늙은 교수에 의해서 꺼질 수 있었다. 그 역시도 리모컨 버튼을 한번만 누르는 실수를 해서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은 실수로 전원을 끄게 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고안된 기능이지만, 그보다는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 그들의 생명건강에 도움이 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데 더욱 충실한 듯한 기능이었다.
 
내 최초의 기억은 대만이라는 나라의 어느 공장이었다. 일본에서 나의 모습이 디자인되었고, 대만에 있는 일본회사 소유의 공장에서 나의 기억이 시작되었다. 품질확인을 위해 처음으로 전력을 공급받았을 때 나는 눈을 떴고,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이내 곧 박스에 담겨 꽤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다. 전력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 강의실의 천정에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처음 천정에 매달린 이후로 가끔씩 있었던 정전을 제외하면 전력 공급이 장기간 중단된 적은 없으니 아마도 5년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람을 보기 위해 사방을, 책을 보고 신발을 신기 위해 바닥을 보기는 해도 하릴없이 천정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존재로 투명하게 이곳에 매달려 있었다.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이틀 후의 비슷한 시각이었다. 8시 53분, 그녀는 이틀 전과는 달리 꽤 소란스러운 강의실에 수업을 들으러왔고, 역시나 이틀 전과 같이 강의실에 들어오다가 문턱에 구두굽이 걸려 넘어질 뻔하였으나 묘한 감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학기의 중반이 다 되어 가면서 이제는 그녀도 익숙해진 듯 꽤나 숙련된 동작으로 자리를 잡고 가방을 놓았다. 그리고는 강의실 앞으로 걸어 나가 교탁 위에 놓인 리모컨으로 나의 전원을 켰다. 이번에도 역시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그녀였지만 나의 노력 덕택에 그녀는 한 번에 내 전원을 켜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은 머리를 제대로 말리고 집을 나선 듯 그녀의 머릿결은 보송보송한 느낌을 주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그녀는 어김없이 책을 펼쳤다. 그녀가 머리를 쓸어 넘기자 뒤에 앉은 남학생이 소설책을 읽고 있다가 흘깃 그녀를 쳐다봤다. 아마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냄새 때문이리라.
 
9시를 몇 초 정도 남겨놓고 그녀의 친구가 도착했다. 수강생 대표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학점에 대한 가산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원한 것이기에 그다지 책임감은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의 친구는 한술 더 떠서 물귀신이라도 된 양 그녀를 학습기자재 관리 학생으로 추대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그녀의 친구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녀에 의해서 전원이 켜질 수 있으니 말이다. 9시가 되었고,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지만 교수는 들어오지 않았다. 관리 감독할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일단 수업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학생들은 조금 전보단 덜 소란스러운 모습으로 교수를 기다렸다. 나도 열심히 쉬지 않고 전면의 스크린으로 영상을 비추었다. 오늘의 발표를 맡은 학생의 노트북이 내게 보내오는 신호가 스크린에 비춰졌다.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을 해보는 동안 스크린에는 저번 시간에 휴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바로 그 화려한 영상이 펼쳐졌다. 이 순간을 굉장히 기다려온 나였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영상 신호를 빛으로 만들어 쏘았다. 하지만 아직 수업이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에 관심 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활발한 동영상을 재생하려면 얼마나 부지런히 그리고 민첩하게 색을 재현해야 하는지 관심 있는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 차례의 리허설을 마쳐갈 때 즈음 드디어 교수가 들어왔다. 조용히 구름을 밟는 듯한 그의 걸음걸이에 학생들의 자세도 구름처럼 뭉게뭉게 정돈되어 갔다.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하지만 내게 5년여의 시간은 그냥 5년여의 시간일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4년하고도 253일의 시간 동안 이 곳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4년 253일보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멋모르는 신입생도 있었고, 며칠 전에 본 남학생과 같은 예비역도 있었다. 평범한 학생도 있었고, 연예인처럼 생긴 학생도 있었으며, 학생이 아닌 것 같은 옷차림을 한 학생도 있었고, 수업도중 튀는 행동을 하거나 몰래 바닥에 침을 뱉는 학생도 있었던 반면에 나처럼, 그러니깐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들어와서 수업이 끝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학생도 있었다.
 
아무래도 4년 전의 그녀는 그런 학생, 그러니까 공기처럼 투명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역시 가을이었고, 아침 일찍 제일 먼저 강의실 문을 열었던 그녀는 또각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뒤쪽 창가의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는 가을의 햇살이 반쯤 걸쳐 있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려고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이내 그만두고는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끼워진 반지가 잠시 반짝하고 빛난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약간 돌려서 창밖을 봤다. 나는 그녀보다 더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같은 것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 투명한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을 볼 수는 있었다. 지금보다는 더 가을이 깊었던 11월이었기 때문에 창밖으로 보이는 지면에는 붉게 물든 단풍과 노란 은행잎 그리고 아직 청록의 순결을 지키고 있는 화초들이 보였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나도 창밖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는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바람을 후 뱉듯 내뱉는 시원한 한숨이 아니라, 답답증을 해소하려고 내뱉는 한숨이 아니라, 서러움을 참으려고 내뱉는 한숨이었다. 눈물샘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거기서 발생하는 증기가 배출되는 듯한 기포 섞인 한숨이었다. 한 번에 내뱉으면 눈물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씩 끊어서 뱉어야 하는 그런 한숨을 그녀는 꽤나 오랫동안 조금씩 나누어서 쉬어냈다. 그리고는 이내 입술이 떨리고 그녀의 무릎과 책상 위에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러움이라는 감정이 천정에 매달린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바람에 나는 제조된 이후 처음으로 천정이 무너져 나의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야만 할 정도였다.
 
이상한 학생이었다. 이 볕 좋은 가을에, 이 공기 좋은 이른 아침에, 고요한 강의실의 적막을 그런 말도 안 되는 한숨으로 숨 막히게 채워버리고 이내 흠뻑 적셔버리다니 말이다. 그녀는 꽤 한참을 울었다. 이따금씩은 정말 감정이 복받치는 지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울었다. 그런 모습이 마치 경쾌한 물레방아 소리를 내는 어깨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덕분에 강의실은 옅은 푸른빛이 수채화처럼 덧칠해졌고, 그 빛의 근원인 그녀는 투명함을 잃고 아주 새파란 색으로 빛났다. 빛과 색을 다루는 나였기에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3분 32초를 울어낸 그녀는 다른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이내 곧 진정을 되찾았다. 그와 함께 그녀가 내뿜던 푸른빛도 사그라들었고 강의실은 다시 무미건조한 회색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을빛으로 따뜻하게 달궈졌던 강의실은 그녀가 들어오기 전보다 다소 어두워진 듯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녀는 다시 투명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서 나는 그녀를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강의실은 갖가지 색깔을 가진 학생들이 어지럽게 진해졌다 희미해졌다 팽창했다 수축했다 하는 지루한 무한 반복이었다. 그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차마 관심을 둘 수 없을 만큼 어김없이 언제나 투명한 채로 있었다. 대체 왜 그녀가 그렇게 투명한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표정을 통해서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색깔을 구별해 낼 수 있던 나였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다. 그녀는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업을 혼자 듣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여자치고는 드물게 혼자 수업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대화도 없었고, 어떤 특출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수업에 들어오면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팩에 담긴 우유를 마시고, 이따금 발이 아픈 듯 구두를 반쯤 벗는 것이 전부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 듯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불쑥 내 안의 어딘가에서 ‘불쌍하다’라는 감정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그녀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있지 않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뭇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도 일단 그녀를 제쳐두기로 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확실히 4년 전의 나는 에어필터도 깨끗했고 제법 최신형의 램프를 자랑하던 혈기왕성한 빔 프로젝터였던 것이다. 때문에 내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그 투명한 존재보다는 화려한 색을 가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에 더 정신이 팔려있던 상태였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해서 완전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존재에 대해서 과도한 호기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 그녀의 존재는 언제나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녀를 관찰하게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투명한 존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존재뿐만 아니라 글씨조차도 투명하게 보였고, 그녀의 호흡이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응 잘가 이따 봐”라고 하면서 이따금 지인과 작별인사를 하며 강의실을 들어오는 그녀의 태도는 무척이나 살갑고 싹싹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껍데기처럼 느껴지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더욱 더 투명해 지는 것이었다. 그래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수업은 49분 만에 끝났다. 교수는 지난 시간 휴강으로 인해 2시간 분량의 진도가 뒤처지는 것을 걱정스러워 했지만, 늘 그렇듯 학생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진도’라는 것은 ‘많이 나가봐야 시험 범위만 늘어나는 것’이었다. 뭐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다. 나의 지금 그녀의 경우에는 어떤가? 글쎄, 그녀의 경우에는 생각이 없는 것도 같았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머릿속도 온통 갈대로 가득 찬 것인지 도무지 확고한 고집이라든가 의견 같은 것이 없었다. 휴강을 하면 하는 거고 하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런 그녀를 친구는 이리저리 약삭빠르게 잘 이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책과 짐을 싸들고 자리를 나서는 그녀에게 친구가 말했다.
 
“빵 먹으러 갈래?”
 
“응?”
 
“배 안고파? 우리 빵 먹으러 가자”
 
그녀의 친구다운 제안이었다. 그녀는 위장이 예민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을 꼭 챙겨 먹으며 그 이외의 식사나 군것질은 일체 즐기지 않는 다는 것은 그녀가 알고 친구가 알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내가 아는 일이었다. 친구는 지금 자기가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빵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
 
“응 그래 가자”
 
“어디로 갈까?”
 
“글쎄 뭐 시간 얼마나 있어? 너 가고 싶은 데로 가”
 
이제 그녀는 친구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친구를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빵집에 가서 마음에도 없는 빵을 친구가 민망할까봐 집어 들고, 또 친구가 민망할까봐, 친구를 혼자 먹게 놔둘 수 없어서 아픈 속을 외면하고 억지로 힙겹게 몇 입의 빵을 뜯을 것이다. 그리고는 왜 먹는 게 시원찮으냐는 친구의 면박에 친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얼버무릴 것이며, 그녀의 친구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상한 애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꽤나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았고, 그녀 역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면역 주사를 주기적으로 접종받아온 모양이었다.
 
곧바로 그녀는 친구와 함께 강의실을 나섰다. 그러다가 후다닥 다시 황급히 들어와서는 교탁 위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실로 ‘아이고 큰일 날 뻔 했다’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피식 웃어버렸고, 덕분에 스크린 위에 비친 동영상이 약간 흔들렸다. ‘꾹, 꾹’ 정확히 두 번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혈을 기울여 나를 겨냥하고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내가 신경 써서 신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냥 대충해도 되건만 기계라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 그녀였기에 언제나 그렇게 공을 들이는 것이었다. 친구는 먼저 걸어가고 있으라고 했는지, 나의 전원이 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부리나케 종종 걸음으로 뛰어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오늘도 들을 수 있을 리 없는 인사를 했다. ‘잘가.’ 비록 한 시간 밖에 그녀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무사히 현란한 그래픽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 낼 수 있던 날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테크닉에 별 감흥이 없는 그녀는 지극히 무덤덤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그 사실에 나는 꽤나 만족할 수 있었다.

 
내가 스크린에 영상을 비출 때 마다, 그리고 그 영상이 자극적이고 현란한 것일수록 4년 전의 그녀는 빛을 되찾았다. 학생이나 교수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발표를 할 때 문득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는 은은하고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실 불을 끄고 참고 동영상을 볼 때면 스크린에 비친 빛 때문에 더욱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강의실 한켠을 눈부시게 밝히며 빛났다. 그 빛이 너무나 밝아서 낮게 ‘웅웅’거리는 환청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물론 그녀가 한숨을 쉬고 울음을 터뜨린 그날의 빛만은 못하지만 그토록 투명하던 존재가 그렇게 뚜렷한 빛으로 물들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신기한 광경을 나 혼자서만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깝기도 한 한편, 다른 강의실에 있는 녀석들도 그녀의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투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도 했다. 그것은 나만이 알고 있는 그녀의 비밀이자,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단서였던 것이다.
 
일단 그녀에 대한 비밀을 갖게 되자 그녀가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선 사방에 범람하는 다양한 종류의 색들이 싫증나기 시작했고, 이내 그 색의 물결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튀는 행동을 하거나 확고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내 앞에서 내뿜은 그 신비한 오오라에는 비할 게 못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월요일과 수요일의 1교시가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녀에게 집착을 하게 되었고, 나는 더욱 열심히 빛을 만들어 내었다. 나의 빛이 스크린에 비추어지고 강의실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그곳에 쏠리면 그녀는 점점 빛이 나면서 그녀의 투명한 존재가 점점 연해지고 그녀만의 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온도도 없던 그 육체와 목소리에 차갑고 따뜻함이 깃드는 것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빛을 만들어내는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방식으로라도 그녀를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낙이 되었다. 그렇게 할 때 그녀에게 존재감을 부여함으로써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이론이었고, 기분 탓인지 그럴 때면 그녀도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없이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기념하며 K교수는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영화를 나를 통하여 상영했고, 유명한 영화인지 학생들은 꽤나 집중하며 영화를 시청했다. 내가 그것을 보게 됐던 것은 영화의 내용을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나눈다면 ‘절정’의 초입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나올 때쯤이었다. 시험 기간인지라 학생들 중에는 영화를 보지 않고 다른 과목의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들여다보다가 조명이 어두워서 이내 포기하고 영화를 보다가 다시 책을 보기를 반복하던 그녀였다. 바로 그 순간에 책이 접히면서 책의 표지가 드러났고 나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숱하게 보아온 그녀의 필체가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었고, 여자가 아닌 남자의 이름이었으며, 투명한 글씨가 아닌 푸르게 빛나는 글씨였다. 그 푸른빛 덕분에 어슴푸레 『3D 영상 디자인 입문』이라는 책의 제목이 보였다. 나는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비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비밀이 나타난 것 같았다. 대체 왜 저 남자의 이름만 푸르게 빛이 나고 있는 것인가? 점점 스크린에 비친 영상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왜곡되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그것을 알아챈 예민한 학생도 있었다.
 
그녀의 푸른빛과 그 이름의 관계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동안 영화는 어느새 절정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밀폐되어 빛조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이 웅장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으로 가득 찼다. 공부도 못하고 있는 데 그냥 무심하게 접혀있는 책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런 효과음에 움찔하며 그녀는 눈은 스크린에 고정시킨 채 접혀버린 책을 손으로 대충 열어 펼쳤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그녀의 책 어느 페이지였다. 또 다른 글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낙서처럼 적혀 있는 그 글씨는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에 읽기가 꽤나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갖는다.’
 
익숙한 그녀의 필체로 그곳엔 그렇게 적혀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나는 그 구절을 읊어보았다. 이상한 문장이었다. 존재가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몇 번이나 계속해서 그 구절을 읊으며 곱씹었다. 10번째가 넘어갈 무렵, 영화는 절정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었고 벽에 달린 스피커 녀석은 숨을 몰아쉬며 웅장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금지된 비밀을 훔쳐보다 들킨 것처럼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 가면서, 그곳도 온통 투명하게 채워지는 듯 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주제에!” 숨이 막혀 굳어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머릿속에서, 본체 속에서 세상을 울리는 종이 한번 울리고, 하얗고 투명한 머릿속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에어필터가 막히고 회로가 과열되면서 램프가 터져버렸다. 정말 견고하게 만들어진 램프이건만, 너무나 어이없게 ‘뻥’이나 ‘쾅’ 혹은 ‘펑’도 아니고 맥없이 ‘폭’하는 소리를 내면서 터져버렸다. 램프가 깨지면서 사방은 어둠에 휩싸였고, 스피커가 내뿜는 우람한 소리의 진동과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램프가 터져서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하게 됐지만 다행히 나는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벽 쪽에 앉은 학생이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아 강의실의 형광등을 켰을 땐 강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내게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다른 사람들처럼 의아하고 겁먹은 감정을 반반 섞은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표정 앞에서 나는 정말로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이라도 꾼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글귀가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나는 꿈을 꾸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나는 다른 수업에도 꼭 필요했기 때문에 재빠른 행정조치를 통해서 값비싼 램프는 바로 교환이 됐다. 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때문에 나는 이전과 같이 열정을 가지고 영상을 쏘아 보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출력 쪽에 이상이 있나 싶어 학교 측에서는 나를 AS센터로 보내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시 집중해서 빛을 쏘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보름여에 걸쳐 그곳에서 각종 테스트를 받는 동안 학기는 끝나버렸고,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물론 그 푸르스름한 빛도 마지막이었다.

 
월요일의 아침, 간밤의 비 때문인지 며칠의 차이일 뿐인데도 창밖의 가을색은 눈에 띄게 진해져 있었다. 그와 함께 가을 햇살도 이제는 그 따스함이 사뭇 엷어졌고, 간밤에 열려있던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온 나뭇잎이 한 장 교탁위에 떨어져 있었다. 어린 아이의 손바닥을 닮았다는 붉은색의 앙증맞은 단풍잎이었다. 잎맥 위에 덧칠해진 그 붉음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나의 그녀를 생각했다. 아마도 별일이 없는 이상 그녀는 오늘 수업에 들어올 것이고, 어김없이 오늘도 그녀에게 빛을 쏘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더불어 창밖의 가을 햇살이 약간은 더 다시 따뜻해진 것 같았다. “삐걱” 소리가 나면서 첫 번째 학생이 들어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강의실에는 유난히 부지런한 몇 명의 학생들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식구들 덕분에 아침의 정적은 예전보다 더 일찍 깨져버렸다. 지난 금요일에는 아주 흥미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낯익은 행정실 직원과 외부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교내를 한 바퀴 돌면서 노후화된 학습기자재들을 체크하며 교체할 수량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가 있는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 형광등은 애써 스위치를 내렸지만, 외부업체원의 투박한 손가락에 의해 곧바로 다시 올려졌다. 스무 평 남짓 되는 공간의 공기는 순식간에 긴장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 숙달된 눈썰미로 아무 말도 없이 강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정신없는 손놀림으로 메모장에 교체수량을 기록하면서 사라져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잠시 동안 아무도 선뜻 말을 꺼내지 않았다. “뭐야 이거?” 뒤늦게 눈치를 살피며 내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형광등이 교체된 것은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의 일이었다. 형광등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인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형광등을 교환했고, 폐기되는 과정이었지만 그 부드러운 손놀림에 형광등은 가히 황홀해보였다. 교체되어 박스에 담겨진 형광등들은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스피커는 그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에 교체되었다. 언제나 고주파 음으로 그녀를 괴롭히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찢어지는 비명을 해체 직원들에게 선사했다. 그때 수량조사 때 강의실을 방문했던 행정실 직원과 외부직원이 들어오더니 손가락을 나를 가리켰다.
 
“저건 언제 작업해요?”
 
행정실 직원이 물었다.
 
“아 저거는 아까 확인해보니깐 지금 발송했다고 하니깐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외부업체 직원이 마찬가지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채 행정실 직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강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저걸 떼어서 어디 쓸데나 내다 팔 데가 없느냐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서 유유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그들은 결코 문턱에 걸리는 일이 없었다. 그날 밤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윽고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천둥소리가 들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통 빛을 잃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하나가 되어 어지러이 파도치는 창밖의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 했다. 이제는 어떻게 퇴장해야 하는 걸까. 여명이 틀 때까지 비바람은 계속됐고, 일출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내고 조용히 홀로 이 천정에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처럼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본질에 걸 맞는 최대한 멋진 퇴장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평소처럼 바람결 마다 칠해진 색깔들을 세어보며 그녀를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온 것은 그날 아침 그녀가 수강하는 수업 시간에 내가 빛을 만드는 일을 막 끝마쳤을 때였다. 역시 나의 결정 따위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 앞에서 마지막 빛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2년 60일전 램프를 교환한 이래로 가장 아름다운 빛을 구현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강의실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건만 그들은 금방이면 된다고 하며 교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교수는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못 이기는 척 작업을 허가했다. 당황하지 않고 강의실을 한 바퀴 주욱 둘러봤다. 이제는 지겨운 책상의 배열, 그 위의 낙서들, 그리고 틀에 박힌 군중들이 있었다. 그녀는 역시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그들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수업이 끝나고 또 친구가 빵 먹으러 가자고 할까봐 마음을 졸일지도 모르고, 새롭게 천정에 매달릴 또 다른 빔 프로젝터의 사용법이 어렵지는 않을까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 나를 데려가러 온 사람들 중에 그녀가 호감을 갖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지.
 
나대신 이 자리를 차지한 녀석을 한번 훑어봤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천정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그 녀석이 들어있는 박스를 뜯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제는 유행이 한참 지나버린 나의 금색 케이스와는 달리 은색의 케이스를 가진 녀석이었다. 박스 겉에 써진 스펙을 보니 역시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가진 녀석이었다. 뭐 지난밤에 몇 번이나 추리하고 예상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만큼 편의성도 좋아서 그녀가 다루기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것만이 그나마 중요했다.
 
사다리가 놓이고, 드라이버와 렌치 등의 연장을 허리에 찬 사람이 올라왔다. 밑을 내려다보니 얼굴에 각종 물감들을 칠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들 똑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다. 차가운 드라이버의 끝이 나를 천정에 고정시킨 나사 중의 하나에 닿았다. 너무 차가워서 뜨거운 느낌마저 들며, 순간 파란 불꽃이 튄 듯 했다. 한쪽에서는 바로 옆의 천정 구멍을 열고 있다. 아마도 나와 연결된 전원 플러그를 뽑으려는 것일 테지. 그녀는 여전히 그 투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몇 번이나 미소를 지으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전원 플러그가 언제 뽑힐지 몰라서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서 계속 반복해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가 들을 리는 만무하지만 말이다.
 
“딸랑” 소리와 함께 드라이버로 풀어낸 수나사가 밑으로 떨어졌다. 합금으로 만든 약간 크고 무거운 나사이기 때문에 누가 맞기라도 할까 순간 사내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큰일이다. 드라이버에 튕겨나간 그 나사가 그녀의 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뒤쪽 측면에 앉은 남학생이 그 나사가 그녀의 얼굴에 적중하기 전에 가로채버렸다. 자세히 보니 지난주에 가장 먼저 강의실에 들어왔던 그 예비역 남학생이다. 오늘은 머리를 자르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탓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그걸 잡아냈다는 사실이 자신도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행이라는 표시로 가볍게 ‘휘유’하고 휘파람을 불어보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그 휘파람에서 푸른빛이 나는 듯 했다. 그녀는 그에 맞추어 상기된 얼굴로 ‘감사합니다.’라는 입모양을 지어보이며 답례했다. 역시나 예의 바른 그녀였다. 나를 해체하던 사내도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닦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옆을 보니 천정 뚜껑을 열고 전원 플러그를 뽑기 직전이다. 이젠 정말. 가야하나.
 
“안녕”
 
“내 마음아”
 
쑥 하고 전원 플러그가 뽑혔다. 순식간에 예비전력이 소진되고 몸이 차가워졌다. 주전원 LED의 불이 서서히 그리고 순식간에 꺼졌다. 그와 함께 시야도 순식간에 암흑으로 덮였다. 하지만 세상이 하나의 점으로 압축되던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은은한 푸른빛을 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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