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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상공모 소설 가작
제 900 호    발행일 : 2015.11.16 
당선자 | 서동명(교육학과·10)

나와 개 이야기



“개처럼 커야한다.”
  벽에 걸린 영정 속의, 백발이 성성한 남자는 살아서 지겹도록 내게 했던 말을 그 힘없이 풀린 눈을 어렵싸리 치켜세우며 저세상으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내게 읊조리는 듯했다.
  그렇다, 남잔 나에게 개처럼 크라고 했다. 태어날 때 각인이 된 주인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주인을 위해 한 소쿠리의 단백질로 전락해 버리는, 충성심 강한 개처럼 크라고 했다. 남잔 그런 개의 일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며 줄곧 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개에 대한 남자의 행동이나 말투는 마치, 개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웅변하는 개 변호인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를 포장한들 그는 개장수에 불과했다.
  반평생을 개장수로 살았으면서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개처럼 살라하는 남자의 말을 나는 차마 따르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개를 대하는 방식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를 중히 여기는 듯 했으나, 개만큼 그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개를 위한 변호라기보다도, 개를 통해 먹고 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투철한 변호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남자는 개를 팔아왔으니, 내가 엄마의 자장가보다도 개들의 울부짖음을 더 많이 듣고 자랐음은 자명한 일이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개 냄새 폴폴 풍기는 개장수에게 홀려 어쩌다 같이 지낸 첫날밤에 재수 없게 얻게 됐을 아이를, 개 키우는 것에 정신이 빠져 그저 길거리 돌멩이 대하듯 하는 사람에게보다야, 어려서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녔던 개들에게 더 온정이 갔던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기엔 아주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이 갈만 하면 그 개들은 남자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건네어져 어딘가로 가버리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개들이 비어진 그 개들의 자리를 채웠고, 나는 또다시 그 개들에게 온정을 주었다. 그러나 이 짓거리를 삼십 오년을 반복하니 이젠 새로운 개가 들어와도 반갑다는 기분보다도 그 개의 앞으로의 팔자가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여기로 잡혀오게 되는 개들의 팔자야 팔려가는 게 전부일 터이지만, 종종 이곳의 생활을 적응치 못하고 골골대다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개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처음엔 죽어가던 개들의 영을 위한답시고 어디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건 있어서 부적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 죽은 개 한 마리 한 마리의 시체 위에 놓고 기도를 했지만, 죽어 나가는 개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나도 그들의 죽음에 초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는 오늘 죽은 개로는 수육을 해먹을지, 탕을 끓여 먹을지, 나조차도 나 스스로가 의심스러워 질만큼 점점 남자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나이가 열다섯에 달했을 무렵, 나는 남자로부터 어떻게 개를 훔쳐오는 지를 배웠다. 어렸을 땐 무작정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남자가 어디서 개를 몇 마리 얻어와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친구가 줬다는 둥, 시내에 버려져 혼자 끙끙 앓는 것이 가여워서 주워왔다는 둥 어린아이를 상대로 마치 대단한 사람을 속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매일 다른 핑계를 써가며 나를 속여 댔지만, 내가 점점 나이가 차고 집안에 사람냄새는커녕 개들이 사는 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꼴이 되다보니, 남자는 사실 저 개들은 모두 자신이 훔쳐오는 것이라고, 아직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에게 재미있는 전래동화 들려주듯이 말해줬었다. 그런데 나조차도 말해 놓고서 놀랐던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내가 남자에게 했던 말이었다.
  “재미있겠다, 종류별로 개를 모으면 좋겠어요.”
  그때 남자는 아마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여편네 복은 없어도 아들 하나는 잘 낳았노라고. 버려진, 혹은 훔칠 개에 대한, 그리고 그 개의 주인에 대한 연민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작은 허영을 남자는 그때 나의 눈빛 속에서 보았노라고 언젠가 나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남잔 내가 태어난 지 정확히 열다섯 해가 되는 생일 바로 다음 날, 나를 꼭두새벽에 흔들어 깨워 학교는 이제 그만 다니고 자기와 같이 개를 잡으러 가자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었다. 나는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남자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남자의 일터에 가보게 된 바로 그날, 나는 한 마리의 개를 훔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개를 사러 온다.”
  저녁상을 물리고 손걸레로 바닥을 훔치던 노파가 눈치를 슬슬 보다 슬며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젠가 자신의 남편처럼 자신을 떠날 것을 아는 여잔, 성난 수캐에게 뒤를 내주고 낑낑대는 것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여느 암캐와 닮아있었다.
  노파는 남자에게서 버려진 유일한 개였다. 남자에 관해선 하도 말을 아껴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노파는 실수로 남자와 가진 잠자리에서 나를 갖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를 지우려는 남자와, 이 작은 것도 생명인데 지켜야 한다는 노파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노파였다. 그러나 자신의 씨앗을 노파의 몸에 옮겨 심은 뒤부터 노파에겐 그 무엇도 준 것이 없는 남자와 달리, 노파는 남자에게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마음은 떠나도 가끔 몸이 그리워 찾는 남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노파는 들은 것도 같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배운 도둑질을 개를 훔치는 일에 써먹더니, 끝내는 자신을 훔쳐온 개를 돌보는 하인으로 부려먹기 시작했다. 노파는 남자에게서 버려진 쓸모없는 개였지만, 끝까지 남자의 여자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는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누군가의 남편이기보다도 누군가의 오빠이기를 택했다. 내 나이가 서른이던 해에, 남자는 그 모든 것을 나와 노파에게 남기고 자신을 오빠라 부르는 사람과 같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리고 작년 갑자기 망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노파는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오빠라 부르던 여자의 행방은 묘연했고, 누가 불러서 온 것인지 경찰 몇 명이 남자의 장례식장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떠나더니 결국 남자의 사인은 자살로 판명 났다. 살아생전 자신이 훔치고 다닌 개의 행적이 그 개의 주인에게 묘연해졌듯, 자신의 인생의 끝도 결국엔 그렇게 묘연하게 사라져갔다.
  이곳으로 여자가 개를 사러 오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이렇게 노파가 ‘여자’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궁금증이 들어, 이빨 구석으로 가져갔던 이쑤시개를 꺼내 반으로 분지르며 입을 열었다.
  “웬 여자?”
  “전화가 왔다. 튼실한 놈으루 하나 부탁한다구. 저기, 여자가 와서 봐둔 거 하나 있다.”
  노파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어 내 쪽으로 힘없이 던지며, 안채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개장에 슬며시 눈길을 보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쪽으로 고갤 돌렸는데, 순간 누렇게 빛바랜 복슬 거리는 큰 털을 가진, 흡사 일곱 살 정도 됐을 남자 아이가 누런색 털이 촘촘히 박혀있는 커다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은 크기의 동물 하나가 나의 시야에 순식간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푸른 눈빛을 번득이며 자리에 누워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던 녀석은, 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캉!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던 저 누런색 커다란 개는 한동안 팔리지 않던 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팔고 있지 않던 개였다. 녀석은 다름 아닌, 내가 남자의 도움을 받아 어렵싸리 훔쳤던 첫 개였던 것이다.
  “개를 훔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멀리서 축축한 코를 바닥에 박고 여기저기에 킁킁거리고 있는, 어른 머리만 한 누런색 개 한 마리를 가리키며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분홍색 소시지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이것이 해결해 줄 것이다.”
  남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시지의 포장을 조심스레 까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입 베어 물고는, 과장되게 쩝쩝대는 소리를 내며 누런 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그때, 그 개의 귀가 쫑긋 서더니 이내 호기심이 생겼는지 바닥에 연신 박고 있던 코를 치켜세우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남자 쪽으로 바꾸어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제 반은 성공이다.”
  남자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다시 주머니를 뒤지더니 뜯어진 생수병을 나에게 건네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 물을 따서 내 신발코 앞에다 흘려라.”
  나는 남자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남자 쪽으로 다가오던 개는 어느덧 소시지를 올려놓은 남자의 손바닥까지 접근하여, 그 축축한 코를 남자의 손바닥 이리저리에 대고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소시지 근처까지 코가 왔지만, 그 개는 쉽사리 그 소시지로 입을 가져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남자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눈을 살짝 찌푸리며 오므린 입술을 개 쪽으로 가져갔다. 남자가 말한 신호인 듯 했다. 나는 조용히 생수통의 뚜껑을 열어 천천히 남자의 신발코 앞으로 가져가 바닥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소시지에도 별다른 반응을 안보이던 그 개는 바닥에 흘려진 물을 사정없이 핥아대며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쥐고 있던 소시지를 내팽겨 치고 바로 개의 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자신의 품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네가 잡은 첫 번째 개다.”
  나는 그 개의 이름을 ‘물이’로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자는 이제 내가 자신의 일을 물려받아 하게 될 것이라 말을 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에 그런 사형 선고도 없겠구나 싶었다. 학교 잘 다니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던 아이에게 어느 한 순간에 학교는 그만 나가고, 이 동네 저 동네에 떠도는 개들을 훔치라던 아버지라는 작자, 그러나 나는 그때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느껴보지 못한 존경심을 그에게서 한동안 느꼈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나이가 어린 마당에 형제까지 없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개가 좋았고, 여러 종류의 개를 갖고 있으면 학교를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동네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남자의 말도 내가 남자를 존경까지나 하게 되는 일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러나 그 영웅대접 받는 일은 나에게 결코 일어나지 못했다. 동네에서 없어진 이 개 저 개가 학교도 안 나가는 아이의 품에서 나타난다면 그보다도 충격적인 일은 없을 것이지만, 그보다도 남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렇게 되면 그때 무렵 한창 세간을 떠들썩거리게 했던 반려견 보호 캠페인에 상충돼, 생활고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으니, 남자는 처음에만 나를 개로 구슬렸지, 그 이후로는 나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니며 개를 훔치는 방법에 대해 마치 소림사의 비기라도 알려주는 노승이라도 된 것 마냥 나에게 전수해 주었다.
  남자가 말한 개를 훔치는 방법은 생각보다는 간단했다. 초복이나 중복 즈음엔 개를 찾는 수요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니, 적당한 시기를 잘 골라 동네 똥개들이 출몰하는 지역에 며칠간 가서 보초를 선다. 바보스럽게도, 여러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충성심이 으뜸일 거라고 여겨졌던 그 개들은, 남자의 손 위의 햄 몇 조각 혹은 물 한 모금에 쉽사리 당하고야 만다. 그러나 여기서 포인트는 ‘물’이었다. 대개 사료를 먹고 큰 가정용 개들은 이미 소시지 같은 것엔 입이 적응이 돼 있어서, 그들의 작은 관심은 끌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는 신뢰를 보여주기엔 너무나도 하찮은 미끼였다. 그래서 남자가 생각해 낸 자신만의 비결이 바로 ‘물’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바깥을 떠돌아다니는 개들은 배는 안고플지라도 목이 타는 경우는 많아서, 소시지로 한번 관심을 끌고 물로 신뢰감을 높이는 것이 자신이 경험에서 터득한 비법이라고 남자는 자신감 있게 말을 했었다. 그런 남자의 수법에, 그 개들은 무엇이 좋은지 본래 주인의 곁을 꼬리까지 흔들며 쉽사리 떠나버린다. 얻어온 개를 남자는 정성스레 기른다. 그러나 ‘정성스레’란 단어는 남자의 표현이지,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었다.
  남자의 손에 끌려온 개들에겐 겨우 네 발 딛고 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허락됐다. 밥도 하루에 한 끼나 먹으면 다행이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어떤 개들에게 자신이 먹다 남은 밥을 줄지 골랐던 남자는, 어떤 날엔 고기가 질기다며 잘근잘근 씹다 말은 고기를 누런색이 빛바래진 똥개에게 던지기도 하였고, 어떤 날엔 지난밤에 너무 시끄럽게 짖어댄 개에게, 이런 날엔 묵힌 재수를 풀어야 한다며 중얼거리곤 물 대신 자신의 오줌을 그 개에게 먹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여기에 끌려온 개들의 운명이야 대부분이 저들의 고기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식당 주인에게 가는 것이 다반사였으므로, 여기선 저들을 최적의 상태로 만든다기보다 죽지나 않을 정도로 밥과 물을 주는 게 남자의 주된 일이라면 일이었다. 원래 혹독한 환경에서 갖은 인내심과 독기를 품고 자란 개가 맛있는 법이라며 남자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누런 개를 보고 간 여자가 오기로 한 날, 전화로 약속한 정확한 시각에 검은색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집 앞에 도착했다. 차는 온통 선팅이 되어 있어서 바깥에선 안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이내 차안에서 여자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내렸다.
  “안녕하세요. 소개 듣고 왔어요.”
  “예, 안녕하세요.”
  개를 사고파는 이런 곳엔 어울리지 않게 수수하게 생긴 여자는 자신의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내 쪽으로 인사를 했고, 나도 엉겁결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소개라니? 누구의 소개를 받았다는 것인지 노파를 통해 전해들은 바도 없었고, 짐작이 가는 사람도 없었다. 주 거래처도 대개는 식당 주인들이고, 남자가 살아생전부터 계속해서 거래를 해 오고 있는 사이이니, 그런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 그들이 소개를 시켜주었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소개라면…….”
  내가 끝을 흐리며 말하자, 여자는 뭔가 실수로 잘못 말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장지가 이 근처여서 오며가며 자주 봤었거든요. 허름한 집이긴 한데 터는 넓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지나다닐 때마다 끊이질 않아 뭐하는 집인가 했었어요. 마침 저도 강아지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그러다 저기……”
  여자는 손으로 내 뒤의 무언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노파가 마당에 나와, 나와 여자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 어르신한테 말을 걸어보니 강아지를 파신다고 하시더라구요. 한번 둘러봤는데 상태가 괜찮은 강아지들도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지금 개를 키우세요?”
  여자는 기다렸다는 질문이라도 받았다는 듯, 하얗지만 약간은 투박한 치아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세 마리 기르고 있어요. 코커 스파니엘, 웰시코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냥 믹스견요.”
  “지금 사려는 개도 혹시 애완견 목적으로 사시려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좀 그런데요. 저 개는 워낙 덩치도 크고 식성도 좋아 애완견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좀…….”
  이미 노파와 뒤에서 말을 다 끝내고 온 뒤였는지, 나의 예상 밖의 말에 여자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자신이 오늘 온 목적은 개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저 개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는 듯, 여자는 계속해서 누런색 개가 있는 개장 쪽으로 시선을 힐끔힐끔 옮겼다.
  “아, 그래요? 그럼 별 수 없죠……. 모든 강아지들의 아픔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요, 저 강아지가 여기 있는 강아지들 중에선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덩치도 가장 크고 건강해 보여도 눈빛에서 왠지 모르게 슬픔을 느꼈어요. 그래서 데려가려고 했었죠.”
  여자의 말에 나는 나의 안에서 뭔가 움찔거리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뭔가, 지금까지 이곳으로 개를 사러 온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이 여자는 나로 하여금 남자에게 개를 잡는 방법을 배우기 전, 개에게 가졌던 감정을 내게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노파가 자꾸만 신경 쓰여 나는 여자에게 눈치를 주어 다른 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자, 여자는 좋아요, 하며 역시 그 특유의 치아를 내보이며 빙긋 웃었다.
  노파가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여자는 한동안 지속되던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사람 밑에서 커서 그런지, 강아지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과 참 닮아있어요. 동네 여기저기 쏘다니며 싫다는 이 암캐 저 암캐에게 달라붙는 게, 이럴 땐 카사노바 같기도 하고, 또 제가 다른 일에 맘이 상해 그렇게 모질게 굴고 밥 주는 거 까먹고 해도 내가 골골대는 소리만 내면 다가와서 또 같이 낑낑거리는 게, 이럴 땐 어지간한 사람보다 낫다 싶어요.”
  개를 훔쳐오고 파는 일에 가려, 한동안 내가 그것에 가졌지만 이내 곧 사라졌던 감정을 여자는 고스란히 다시 불러와 내 앞에서 따사로운 입김으로 내 귀에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물이예요.”
  “예?”
  “그 개 이름이요. 제가 처음으로 훔친 개거든요. 물로요. 그래서 물이라고 지었어요. 자기 이름이 물인 것이 먹는 물인 걸 아는지, 물을 되게 좋아해요. 사실 그 개는 안파는 개였거든요, 나름 제게 의미 있는 개이기도 하고…….”
  나는 그 의미 있는 개를 상대로 개의 충성심을 실험해본 적이 있다.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바코드마냥 진하게 새겨진 충성심이란 것이, 개에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 나는 당연히 몰랐으나, 죽도록 녀석을 팬 뒤에 밥 한 끼 주지 않았던 내게, 그래도 낑낑대며 다가와 내 발을 핥아주던 녀석의 눈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그때 녀석에게 소리쳤다. 충성심보다 너의 아픔을 먼저 생각해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것은 곧 나에게 하는 말과도 같았다.
  “강아지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앞으로 안하셨으면 해요.”
  이윽고 이어진 여자의 그 말이 나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서 자의에 의해 이런 일을 해오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어려서부터 해왔으니까, 평생 개나 훔치며 파는 게 내 팔자인 줄만 알았다. 남잔 나보고 개처럼 커야한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남자가 의미한 그 ‘개’는, 충성심이 강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개처럼 살라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랑을 찾아 충성심을 저버리고 떠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남자가 나에게 개처럼 죽도록 일만 하라고 그런 식의 포장된 말로 나를 꼬드겼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도 아픔이 있듯, 강아지들에게도 아픔이 있어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빛은 나를 걱정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어떤 것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나로 하여금 예전에 물이에게 했었던 충성심 실험을 내가 받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이틀 뒤 이 시간에 다시 올게요.”
  여자는 이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자신이 타고 온 차를 타고 조용히 왔던 길로 사라졌다. 나는 여자가 남기고 간 자취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남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그가 남긴 많은 발자취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던 나였지만, 그 무엇이나 그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개처럼 충성심을 다해 믿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여자가 남기고 간 그 무언가는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찰나 같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여자가 나에게 빛을 던져주고 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남자가 나에게 남겨놓은 길이 아닌, 지금 저 여자가 남기고 간 길을 그대로 밟아서 가는 것일 것만 같았다. 나는 한번, 처음으로, 그것을 믿어보고 싶었다.
  “허튼 생각은 하지 말어라…….”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았을 때, 거기엔 노파가 엉거주춤 서있었다. 다시 돌아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노파가 다시 입을 열어 나를 잡아 세웠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잘 알지만, 괜히 네 아비가 우릴 떠났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뒤 이어진 노파의 목소리는 내 뒤통수에서 의미 없게 퍼져나갈 뿐이었다.
  여자가 나에게 이틀 뒤에 다시 오겠다고 알린 것은 나에게 해독을 하라고 보낸 비밀의 메시지 같았다. 그것을 해독하면 거기에 당신을 위해 제가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하는 비밀의 메시지. 그녀는 나와 닮아있다. 아니, 남자에게 물들기 전의 나와 닮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통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음을 조금씩 확신하고 있었다. 이틀 뒤에 그녀가 찾아오면 난 물이와 함께 이곳을 떠날 작정이다. 그녀에겐 뭐라고 말을 하지?
  여자가 다시 오기로 한 날, 나는 물이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차분히 마당에서 여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파도 어쩐 일인지 아침 일찍 목욕을 다 하고 옷까지 깨끗이 차려입어, 마치 떠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노파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여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만난 것은 단 한번 뿐이었으나, 이상하리만치 굳은 믿음 같은 것이 여자와 나 사이에 공존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안 올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세 대가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경찰차 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뛰쳐나온 노파는, 다급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숨어라, 어서!”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비집고 익숙한 소리가 메가폰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본 불법 반려견 판매 업소는 반려견 보호법에 위배되는 바……”
  그 이후에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나의 귀에 들려왔을 뿐이고, 나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을 뿐이었다. 노파는 자신의 몸으로 나를 어디론가로 계속해서 밀어 당기고 있었다. 나는 안채 입구 바로 옆에, 팔려나가기 전에 죽어나간 개들을 불태우고 남은 잔해들을 버리는 일 평 남짓한 지하로 노파에 의해 밀려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내가 죄인이오, 내가 그랬소, 이거 다 내가 잡고 내가 다……·”
  무엇인가 분주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법이 어떻고, 불법이 어떻고, 묵비권이 어떻고 하는 소리를 비집고 노파의 떨리는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나는 아수라장이 된 거기에서, 반쯤 자라다 만 꼬리를 힘겹게 품 안으로 감추며, 밖에서 이리저리 나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를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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