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현상공모전
현상공모전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2015년 현상공모 소설 당선작
제 900 호    발행일 : 2015.11.16 
당선자 | 권현정(사회학과·13)

14일, 토요일


  십 년 만에 미숙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미숙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십 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거니와, 십 년 전에도 매일같이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도 미숙은 이름을 밝히는 대신 선배, 저예요,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되물었다. 이름은, 같은 질문이 몇 번 더 반복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미숙은 십 년 전, 한창 인기 있던 여자 가수의 이름이었다. 그 가수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학과 후배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얼굴이나 인상은 희미했다.
- 오랜만이네. 그간, 어떻게 지냈니?
- 그럭저럭요. 선배는요?
- 별일은 없어. 그런데,
  웬일이니, 라고 물으려다가 순번이 뒤섞여 용케도 번호를 알았구나,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대학 때 알던 이들 중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이는 C뿐이었는데 그마저도 한동안 뜸하던 참이었다.
- N 선배한테서 들었어요. 선배 서울에 계신단 얘기 듣고 연락드린 거예요.
  N?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런 이름의 동기가 있었다는 기억이 있긴 했지만 별다른 인상 없이 이름뿐인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 나의 생활과 접점 없이 살아온 누군가일 것이었다. 휴대전화를 바꾼 것과 이사를 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상대에 내가 전한 적 없는 나의 소식이 그토록 재깍재깍 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득 선득했다.
- 그렇구나. 서울에 올라왔니?
- 길게는 아니고 잠깐이요. 한두 달쯤, 서울에 있을 것 같아요.
- 그래. 내가 뭐 도울 일이라도 있니?
-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요.
  문장마다 한 차례씩의 간격이 있었다. 간격마다 이어질 다음 대답에서 전화의 명백한 용건이 드러나기를 기대했으나, 곧, 간격은 간격이 아니라 대답의 끝을 알리며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미숙의 반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숙은 전화의 용건을 말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용건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전화를 이어나가는 것만이 도리어 전화의 용건인 것 같았다. 그런 대화가 더 이어지다가 마침내 미숙이 말했다.
- 14일, 다음 주 토요일, 2시. ◇ 거리에 △ 음식점이요. 가능하세요?
  미숙은 일시와 장소를 명료하게 제시했다. 말에는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가능하냐는 말은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행해진 포위 후, 통보 같았다. 무기를 내리고 손을 들어라. 나는 얼결에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텔레비전 위에 올린 탁상달력을 눈으로 훑었다. 14일 토요일의 해당 칸에 메모가 자잘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주중 드라마의 재방송시간이었다. 수목드라마, 월화드라마, 각 두 편씩. 다음 주 토요일이 아내의 휴일인 모양이었다.
  아내는 내가 실직 상태에 있을 때 마트에 나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단층 짜리 동네 마트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하는 날도 있었고, 오후에 출근했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내가 다시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도 아내는 계속 마트에 출퇴근했다. 아내의 휴일은 불규칙했고, 나와 겹치는 휴일에 아내는 집에 없거나, 있더라도 종일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일을 집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내가 메모해 둔 드라마의 재방송 시간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의 방송시간과 오늘 자 방송시간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해당 채널을 틀자마자 화면 속에서 웬 어린 여자가 빽빽 악을 쓰면서 울고 있었다. 악을 쓰며 울면서도 여자는, 화장이 망가지지 않았고, 콧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내가 메모해 둔 드라마가 이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껐다.
  아내는 글을 썼었다. 주로 소설을 썼고 때때로 시를 쓰는 것 같았다. 아내를 처음 만났던 것도 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문집을 엮어내는 동아리에서였다. 아내의 눈은 생기와 희망으로 반짝거렸고 아내와 함께 있을 때면 그 생기와 희망은 나에게까지 옮아 들어서 나는 주절주절 희망에 찬 미래상을 아내에게 늘어놓고는 했다. 그렇게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사실감이 없었고 사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확신에 차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 턱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다. 그렇구나, 그래. 그렇게 될 거야. 잘 될 거야. 아내는 내게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아내의 작품은 지방 신문사의 단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해당 신문에 게재되었다. 아내의 글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그때 한 번이었다. 서른 둘이 되던 해부터는 나조차 그녀가 쓴 글의 독자가 될 수 없었다. 아내의 꿈이 지난해 질수록 아내의 눈은 내게서 멀었고, 집으로부터 멀었다. 덮인 공책을 앞에 두고 똑같이 먼 눈으로 책상을 내려다보는 아내를 보는 일이 잦았다. 아내의 눈은, 점차 글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내의 눈이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던 그날들에, 나는 직장을 잃었다.
  마트에 출근한 첫날, 집에 돌아온 아내는 생전 보지 않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오래도록 그것을 쳐다보았다. 현란하게 전환되는 장면마다 웃고 울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다가 아내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서 ‘저것 좀 꺼줘.’ 라고 말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방문을 닫았다. 그날부터 나는 거실에서 잠을 잤다. 아내에게 아내의 일을 묻지는 않았다.
  나의 재취업 사실을 알렸을 때, 아내는 나를 축하해 주었다. 잘됐다,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날 아내는 그녀의 방을 봉했다. 안으로부터 잠겨서 밖에서는 열리지 않았다. 열쇠는 그녀에게도 없었다. 방안에 넣고 잠갔어. 나중에 열자, 라고 아내는 말했다. 아득한 나중을 이야기하는 아내의 눈이 불안으로 떨리는 것을,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14일, 아침에 몸을 일으켰을 때 아내는 이미 집을 나서고 없었다. 부엌에 아침 밥상만 차려져 가지런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기상한 탓에 먹지는 못하고 쉬이 상할 것들만 추려서 냉장고에 넣었다. 국은 한 번 더 끓여두려고 하다가 그저 말았다. 국은 그때껏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음식점에서 미숙은 미리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숙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미숙이 용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선배는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하는 미숙의 말에 허허 웃어 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입학했던 후배라고 하니 현재 서른 즈음 되는 나이일 것이었는데, 얼굴은 그보다 두서너 살쯤, 손은 그보다 대여섯 살쯤 많아 보였다.
  만남은 매우 어색하게 시작되었다. 한 주 전에 전화통화로 나누었던 인사들을 이제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식이었다. 더 민망했던 것은 미숙이 비교적 나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반해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까지도, 나에게는 기억나는 미숙의 모습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학과 모임에서 몇 번 봤던 얼굴인 것 같긴 했으나 이상의 인상은 도무지 없었다. 미숙이 말하면 내가 하하, 그랬나, 라고 맞장구치는 식으로 그나마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대화의 진행은 아니어서 말은 빈번히 끊어졌다. 종업원이 식탁 위에 버너를 올리고 불을 켰다. 그 위에 순대 전골이 올려졌다. 김이 올라서 미숙이 잘 보이지 않았다.
- 선배 결혼하셨다면서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잘 보이지 않는 너머에서 미숙의 말이 건너왔다. 결혼식에 왔던 하객 중에 대학 동문이 몇 명쯤 됐던가, 생각했다.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
- 한참 됐지. 그래도 소식이 꼬박꼬박 가긴 하는가 봐.
- 망이 튼튼해요. 요사이 연락 뜸하더란 소식도 같이 들리던데요?
- 뭐, 그때라고 연락 잦았나. 그제나 이제나 매하나지.
  그런가요, 라고 미숙이 대답했다. 버너의 불을 죽였다. 김이 수그러들면서 너머에 미숙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미숙은 젓가락 두 개를 양손에 각각 집어 그릇에 옮긴 순대를 향해 들이밀고 있었다. 젓가락 한 짝이 순대 껍질을 뚫고 안으로 진입했다. 단단히 고정된 순대에 나머지 한 짝의 젓가락도 돌진, 순대를 관통했다. 젓가락 한 쌍은 순대 안에서 교차하여 반대로 머리를 내밀었다. 젓가락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젓가락 한 쌍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그 움직임의 목적을 생각했다. 목적은 단 하나. 저 순대를 먹어야겠다. 어쩌면 보이는 그대로가 이 약속의 진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나저나 소식이 드문 것도 소식이 되는구나.
  미숙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 N 선배가 딱 그렇게 전하셨어요. ‘소식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소식이 없다.’ 언제 한 번 연락해 보세요.
  지금이라고 N의 얼굴이 기억날 리 없었다. 미숙이 N의 번호를 찾는 지 제 휴대폰을 두들겼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글쎄, 실은 얼굴도 기억이 안 나, 라고 말했더니 미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선배님하고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다던 선배인데.
  동창, 이라고 하자 퍼뜩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여전히 인상은 없이 생김뿐이었지만 아마 N일 것이었다.
- N. 기억났어. 키는 멀대같이 크고 안경 쓴.
- 맞아요. 지금은 안경 벗으셨지만.
  중고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나 반이 겹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며 가며 보기는 했을 것이나 얼굴을 익힐 만큼 서로에 얽히는 일이 전연 없어서 N과 나는, 육 년 내리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대학교라는 전혀 새로운 사회 속에서 관계는 백지에서부터 새로 시작이었고, 때문에 서로의 기억이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은 그 이전의 관계 유무와 상관없이 가까워질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미숙이 말을 더했다.
- 선배 만난다고 얘기하니까 N선배가 안부 전해 달라셨어요. 그 재미없는 놈 잘 지내나, 그러면서.
  N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학창시절 내내 둘 다 교실 밖 출입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반이 겹치지 않았던 건 둘째로 치고 어쩌면 학교 복도에서도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을지 몰라, 서로 우스개로 이야기하곤 했는데, 처음 통성명을 할 때까지도 서로의 면면이 눈에 전혀 익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것이 완전히 우스개만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나의 경우, 중학교에 다닐 적에도 마찬가지이긴 했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교실은 물론이고 할당된 책걸상에서조차 벗어나는 때가 거의 없었다. 앉아있는 것이 견딜 만했다기보다는 일어서면 다시 앉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는데, 그만큼의 간절한 무엇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저 으레 그래야 하는 줄로 알고 계속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절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대체 무엇에의 절박인 줄도 모르고 울며불며 매달렸었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무엇이 절박한 줄을 모르고 절박했던 것이.
- 그런데 정말 얼굴도 잊고 계셨던 거예요? 두 분 무척 친하셨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 그러게. 정말 잊고 지냈네.
  사람 사이가 다 그렇지 뭐, 말을 더했다.
  N과는 대학 시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참석하는 자리가 많았고 그런 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져 버스가 끊기고 나면 학교에서 가까운 N의 자취방에 기어들어갔었다. N의 자취방에서 나는 내내 나의 포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붙잡겠다느니 붙들었어야 했다느니 주절거렸다. N은 묵묵히 듣다가 내가 제풀에 지치면 자라, 라고 말하며 이불을 깔았다.
  N과 연락이 끊긴 것은 순전히 나의 탓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나는 내가 알던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끊었다. 사는 곳을 옮기고 연락처를 바꿨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 년이었다. 이 년 동안 나는 나와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취직을 하고, 집을 구했다.
  그곳으로 아내가 찾아왔다. 아내 역시 그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 라고 묻는 나의 말에 아내는 나를 빤히 보다가 괜찮아, 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 그래, 그렇게 될 거야, 하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나를 빤히 보는 아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의 생명력이 아내의 눈에서 여전히 넘치고 있었다. 생명력은 더는 내게 옮아들지 않았다. 옮아들지 않는 아내의 생명력에 나는 다만 깊이 기대었다.
  아내는 방 한구석에 단출한 짐을 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결혼했다. 동결되어 있던 연락망을 풀어 몇몇에 청첩장을 돌렸다. N에게는 보내지 않았다.
- 선배.
  미숙이 버섯을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면서 말했다. 별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미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저 회사서 해고당했어요.
  미숙은 한 차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이 주쯤 전에, 라고 덧붙였다.
- 서울에 올라온 게 아니라 실은 주욱 서울에 있다가 이제 내려가는 거예요.
  어디로, 라고 묻는 나의 말에 미숙은 어머니 집에요, 라고 대답했다.
- 대학 입학하고부터 한 번도 내려가 본 적 없어요. 중고등학교 내내 그 지역 뜨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다시 내려가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렇게 되네요.
  국물이 졸아들어서 전골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숙이 버너의 불을 내렸다. 테이블을 지나가던 종업원이 밥을 볶아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미숙이 네, 대답했다. 종업원은 남은 국물을 다른 그릇에 덜어내고 버너의 불을 다시 올렸다. 냄비 위에 공깃밥 두 개를 툭 털어 얹었다. 채 썰린 파와 김과 그 밖에 이것저것을 털어 넣었다. 덩어리진 밥을 주걱으로 흩었다가 파나 김과 뒤섞고 냄비 바닥 전체에 바르듯이 펼쳤다. 익숙하고 재바른 손놀림이었다. 한 차례의 곡예 후, 종업원은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미숙은 아직 물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냄비 가장자리의 밥알을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며. 여기서 직장 다시 구하면 되지 않아?
  미숙이 천천히 대답했다.
- 줄곧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멈추고 보니 달려왔다는 걸 증명할만한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지쳐서요. 그래서요.
  미숙은 얼굴에 진이 빠져있었다.
  실패에의 기억이 아니라 포기에의 기억이었다. 아내에게서 옮아 든 생명력은 그때까지 한 시도 가져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라 나는 그것을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다만 별안간 생겨난 절박에의 이유에 벅차서 닥치는 대로 손을 내뻗고 멀어지면 달려가 다시 내뻗고 내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무엇이 손에 쥐여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의 감촉도 형태도 모르고 그저 내리, 내뻗기만 했다. 절박은 여전히 구체화되지 못하고 헛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팔을 뻗어대는 데에 지쳐서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였다. 포기에의 기억이었고, 한심함의 기록이었다.
  손을 내뻗기를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쥐려 했던 것의 촉감도, 모양도 알지 못했다. 내가 포기한 것은 실체가 없는 망령이 되어 내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내게 들러붙은 망령을, 처음에는 그때껏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대하다가, 나중에는 후회하면서 미련을 부렸다. 이십 대 초였다.
  졸업 후의 잠수는 그 기억들로부터의 도망이었다. 나는 멀리로 도망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단단히 숨어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미숙의 진이 빠진 얼굴과 포기에의 고백에 그 기억들은 쉬이, 불거져 나왔다. 포기와 한심함의 기억들이 눈앞에서 선명했다. 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서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날의 망령이 스멀스멀 내 몸을 오르고 있었다. 문득,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는 얼굴에 진이 빠져있었다. 환영 속에서도 아내의 눈은 자꾸 멀었다. 자꾸 멀어지는 아내 눈의 환영은 또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흐렸다. 아내의 눈이 자꾸 멀어질수록 나는 아내에게서 더 멀어졌다. 내가 그녀의 포기와 마주치는 것을 애를 써, 피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잠자코 미숙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숙이 다시 말을 꺼냈다.
- 변했을까요?
- 뭐가?
- 어머니 집, 그 동네요. 아주 시골도 아니었고 주민 수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미숙의 귀향은, 실은 미숙의 어머니 집으로의 귀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어디든지 간에 미숙의 동네는 전혀 변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숙의 질문은 이러한 대답을 요하는 말이 아닐 것이었다.
  미숙에 되물었다.
- 글쎄, 변했을 것 같아?
- 모르겠어요. 많이 변해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들어요.
- 왜?
- 제가 떠났을 때로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동네에 있으면, 그때는 정말 이곳이, 이곳에서의 십 년이 한꺼번에 아뜩해질 것 같거든요.
  십여 년 만의 귀향 앞에서 미숙의 지나온 십여 년은 위태해 보였다. 십여 년의 세월 전체에 걸쳐 그녀의 도망은 치열히 이뤄져 왔을 것인데, 그 치열함에 아랑곳 않고 그녀를 향해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 어머니 집의 문턱에서, 그녀의 십여 년의 치열은 한순간 통째 없었던 것과 같아질 것이었고,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 소리를 귓전에 들을 것이었다. 쟁쟁. 미숙의 귓전에 울릴 미숙의 목소리를 나는 되짚듯이 떠올렸다.
  내 앞에 앉아있는 지금, 미숙은 그 십여 년의 연장선에 있었다. 미숙은 아득히 지워질 시간 속에 서 있는 지워질 것으로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미숙의 불안은 망령이 되어 미숙을 붙들 것이었다. 땅이 발을 붙들고 벽이 옭아매어서 한 발짝을 움직이지 못할 시간들이 다가올 것이었다. 나는 아마도 그럴 것, 이라고 생각했다. 내 몸을 타고 오르는 지난 시간의 망령이 점차 무게를 가지고 나를 내리눌렀다.
- 내버려 둬. 그냥 지나가도록.
  말이 흘러나왔다.
  늘어놓던 이야기들과 하등 상관없는 학과로의 진학을 알렸을 때, 아내는 내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연신,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에게는 해답이 없었다. 내버려둬. 아내가 말했다. 내버려둬, 그냥 지나가게. 붙들지도 말고, 애써서 털어내려고도 말고, 그냥.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숨는 것으로, 도망하는 것으로, 그 아등바등으로, 도리어 내처 손을 뻗던 그 순간들을 붙들었다. 허공을 휘젓지 않고도 거기 그 자리에 단단히 위치해 컴퓨터를 두드리고, 서류를 작성하고, 숟가락을 드는 손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것은, 나의 포기에 대해서 그 시절에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생명력의 기억과 한심함의 기억은 잇닿아 한순간이었고, 그래서 ‘그 시절’로 부를 수 있는 한 기간은 포기를 제한, 생명력만의 기억일 수가 없을 것이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은 내가 뿌리치려 했던 것과 결국 같은 것이었다. 내버려 둬, 그냥 지나가게. 아내의 말이 옳았다.
  내뱉어진 말을 두고 미숙은 무엇을 내버려두라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다만 미숙은, 지나갈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지나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분명히 지나갈 것이라고.
  버너의 불을 내렸다. 냄비 가장자리의 밥을 슬쩍 헤집었더니 김이 올랐다. 물기가 바싹 마른 겉의 밥과 달리, 속의 밥은 알알이 윤기가 흘렀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고소한 김이 입에 돌았다. 미숙도 수저를 들었다.
  한 숟갈, 다음 숟갈, 또 다음 숟갈마다 그 존재가 무게뿐이던 지나간 날의 망령은 점차 모양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한기처럼 온몸에 스미듯이 퍼져 있던 것이, 서서히 그 범위가 협소해지고, 등허리에서 덩어리지더니, 더 지나자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떨어져 들썩거렸다. 무언가 가벼운 것을 업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어깨를 꼭 붙드는 지난날이, 그 때 즈음 되어서는 따뜻했다.
  어깨를 꼭 붙드는 지난날의 온기 한 자락에서 툭, 미숙이 불거져 나왔다. 미숙은 이제 마악 시작된 시작에서 제게 닥친 보이지 않음에 대해 넋두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알아왔던 것은 다 헛것이었는지, 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고 죄 흐리기만 하다고 미숙은 말했다. 자리의 파장 무렵이었다. 동석한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때에 미숙은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미숙의 말은 마땅히 누구의 대답이나 맞장구가 필요한 말 같지 않았는데, 나는 미숙의 옆자리에 앉아서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대답을 하고 맞장구를 쳤다.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걸어가라고. 죄 흐린 건 모르긴 몰라도 누구에나 그렇겠지만, 발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깜깜하면, 잠시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가도 될 거라고. 어찌되었건, 갈 것이 아니냐고. 나는 미숙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미숙은 말에 달린 대답과 맞장구를 가만히 듣다가,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자리가 완전히 파하고 내가 N과 함께 밖으로 나섰을 때, 미숙은 어느새 반대쪽 거리 멀리까지 걸어가서 보이지 않았다.
  미숙의 마지막 숟갈과 내 마지막 숟갈은 동시에 끝났다. 맛있네, 내가 말했고, 맛있네요, 미숙이 말했다. 한 컵씩 물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내가 계산하겠다는 것을 자신이 이 약속을 제안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들어 미숙이 저지했다. 음식 값은 똑같이 반씩 치렀다. 음식점에서 나오자마자 서로 길이 갈렸다. 미숙이 탈 버스는 음식점 왼편의 정류장에 정차했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의 정류장은 길 건너편이었다. 우리는 음식점 앞에서 헤어졌다. 조심히 내려가. 안녕히 가세요. 길 건너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미숙은 이미 버스를 타고 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어 나도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멀어지던 버스와 미숙의 귀향, 혹은 귀환 길을 생각했다. 문득 N이 떠올랐다. N의 인상이, 안경 너머 유해 보이던 눈매가 떠올랐다. 떠나온 것의 풍경이 버스 창 밖에 지나치는 풍경들 위로 겹쳐서 펼쳐졌다. 이유가 없던 절박과 형태 없는 이유로의 절박과 도망에의 절박이 잇달아 지나갔다. 마침내 현재의 절박이 내 눈앞에 멈추어 섰다. 집 앞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오후 다섯 시에 집에 도착했다. 집 안은 밤이 미리 내린 것처럼 어두웠다. 바깥이 워낙 밝았기 때문에 집 안의 어둠이 옅었음에도 한동안 더듬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짚이는 것이 있어 툭, 건드리자 불이 들어왔다. 부엌에 있는 등이었다. 등 아래, 밥상이 아침처럼 가지런했다. 행여 국이 쉬었을까 냄비뚜껑을 열어보았다. 국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문을 열었다. 텔레비전에서 예의 그 어린 여자가 예의 그 악을 쓰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음량을 최대로 높여둔 모양인지, 온 방이 왕왕 울렸다. 불 꺼진 방 한구석에서 아내의 윤곽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내는 온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움츠린 윤곽이 파르르 떨었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집을 나서는 현관 문턱에 서서, 사람 흔적 하나 없이 이제는 텔레비전뿐인 안방 문턱에 서서, 종종 아내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럴 때에 아내의 눈은 어디 먼 데가 아니라, 뚜렷이 내게 향해있었다. 나는 뚜렷이 내게 향해있는 아내의 눈에 ‘왜’를 물었다. 아내는 아니야, 아무것도,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면 아내의 눈은 다시 멀었다. 다시 먼 눈으로 현관 문턱이나 안방 문턱을 넘어서 나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매일, 현관 문턱을 넘고, 안방 문턱을 넘으면서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자신이 통째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포에 질려 나를 바라봤던 것일까. 나를 오래 바라보던 아내의 눈은 그 문턱을 넘기 전에, 내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를, 기다리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내는 온몸을 구기다시피 움츠려, 소리가 비어져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탓에 아내의 울음은 훨씬 괴로워 보였다.
  다가가, 아내의 움츠린 몸을 가만히 안았다. 긴장이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그녀의 울음도 따라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내는 엉엉, 서럽게 울었다. 괜찮다. 괜찮아. 당신의 실패도, 당신의 포기도, 지금도, 다 괜찮아. 서럽게 우는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기껏,
- 다음엔 해가 잘 드는 집으로 가자.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서럽게 울었다. 아내의 울음이 텔레비전 속, 여자의 악을 쓰는 울음을 덮었다. 아내의 울음이 서러워질수록 아내는 몸에 힘이 빠져 자꾸 나로부터 미끄러졌고, 나는 그때마다 아내를 더 부둥켜안았다. 아내를 부둥켜안고 등을 다독이면서, 나는 남향으로 창이 난 집으로 가는 다음번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날, 아내의 나중은 찾아오게 될는지 몰랐다. 아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서 온 집을 가득 메웠다. 창 너머의 바깥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
2024년을 새롭게 열 ‘개화’ 선본 제56대 ...
2024년 우리 학교를 이끌어 갈 제56대 총학...
우리 학교의 요리왕은 누구일까? 장쿱이의 꿈
우왕이와 찰칵, 생협 포토쿱 설치
현상공모전 More
2016년 현상공모 시부문 심사평
2016년 현상공모 시 당선작
2016년 현상공모 시 가작
2016년 현상공모 시 가작
2016년 현상공모 소설부문 심사평
2016년 현상공모 소설 당선작
2015년 현상공모 소설 가작
2015년 현상공모 소설 당선작
2015년 소설·드라마 부문 심사평
2015년 현상공모 시 가작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