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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신문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 '돌아가다, 그래서'
제 809 호    발행일 : 2009.11.02 

‘돌아가다, 그래서’

철학과 2006007044
황종문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십 년 전 당신은 아버지가 싫어 집에서 뛰쳐나왔다. 일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에 코빼기도 안 비친 후레자식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 제사를 치르러 고향에 간 누나에게서 묘한 소식이 들려 온다.

얘, 엄마가 젊어졌어.

당신은 어머니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아내의 반대에도 사직서를 내고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애당초 잘되리란 생각도 없었지만 고향에선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힘든 생활이 이어진다. 어머니는 당신을 몰라볼 정도로 계속 젊어지기만 한다.

당신은 생각한다. 되돌리고 싶어.

결국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이 되기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시게 된다. 당신은 어머니가 남긴 유서를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담담하게 모든 것을 정리한 당신은 아버지의 기일도 피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돌아가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오후 두 시, 동서울 버스터미널, 당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심쯤부터 조금씩 흩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터미널을 온통 새하얗게 뒤덮고 말았다. 원래 사람 왕래가 잦은 동서울 버스터미널이지만 당신이 서 있는 17번 승강장은 한산했다. 승강장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있어도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다들 승강장이 잘 보이는 역사 현관문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난로를 쬐거나 하며 승강장을 힐끔거렸다. 다만 몇몇이 승강장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바람이 차다. 쏟아지는 눈발도 한층 기세를 올렸다. 당신은 아홉 살 난 아들이 걱정되었다. 역사 안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한사코 아빠랑 같이 있겠다고 떼를 썼다. 당신은 아들의 차가워진 손을 감싸 쥐었다. 아들 녀석 고집이 세서 어지간해선 당해내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당신도 마찬가지였다. 당신 아버지는 항상 당신의 고집을 못마땅히 여겼다. 당연한 일이다. 당신 아버지 고집도 여간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

당신은 생각한다. 당신 인생에 있어 그 망할 영감 혹은 빌어먹을 꼰대 등으로 불린 역사가 더 긴 그 허망한 존재에 대하여. 무척이나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끈기를 가지고 당신은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아버지. 왜 벌써 돌아가신 겁니까.

두 시 십오 분. 두 시 이십 분 동서울 발 안동행 고속버스가 승차 개시를 알린다. 역사 안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순식간에 빈 좌석을 채워 간다. 당신은 양 손에 짐을 끼고 비틀거리며 버스에 탑승한다. 오른쪽 짐이 쪼르르 달려가 창가에 앉았다. 왼쪽 짐을 짐칸에 얹어 놓고 나니 몸이 후끈했다.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장거리 버스 안에서 피곤을 느낀다는 건 어떻게 보면 환영할 일이다. 어쨌든 자게 되니까, 불편한 자리에서 뒤척이는 것보다 한순간에 곯아떨어지는 편이 낫다. 당신은 눈치껏 좌석을 뒤로 젖히고 지친 몸을 누인다. 시동을 켠 지 얼마 안 되는 버스 안은 아직 추웠다. 몸이 식으며 한기가 몰려왔다. 당신은 몸을 한껏 움츠린다. 어쩐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요 며칠,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아빠, 이거 좀 봐. 이거 아빠야.

아들이 이제 좀 자보려는 당신을 재촉한다. 사람들의 온기로 뽀얗게 흐려진 창가에 아빤지 나발인지가 그려져 있다. 당신은 문득 그 아빠의 입이 웃고 있지 않음을 눈치 챈다. 애들이란 퍽 단순해서 웃는 얼굴이라면 안면 전체를 웃도록 그릴 터다. 뭐랄까, 칙칙한 얼굴이다. 아마 본 대로 그렸을 것이다. 곧 아빠를 이루고 있던 뭉툭한 선이 흐릿하게 번져 내린다. 칙칙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아빠는 이젠 울고 있다.

당신의 아버지는 일 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럭저럭하던 당신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상갓집에 코빼기도 안 비쳤다. 상상을 초월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신은 그 비난을 일일이, 피하지 않고 모조리 다 받아내었다. 당신에게도 상주가 없는 상갓집은 썩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니까. 그러나 집을 뛰쳐나와 십오 년이 넘도록 피해 오던 그 엄한 얼굴을 어쩌자고 죽고 나서 만난단 말인가.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며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당신은 이젠 엄하지 않은 아버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이란 현실과 대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 년.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 누나에게서 묘한 연락이 왔다.

얘, 엄마가 젊어졌어.

당신과 아버지의 길고 긴 대립의 역사 속에 늘 빠지지 않는 인물이라면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앞뒤로 꽉 막힌 고집쟁이어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면, 어머니 또한 나름대로 대책 없는 인물이었다. 당신 어머니는 언제나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이의 모든 말을 수긍하셨다. 아버지 하자는 대로, 당신 하자는 대로 당신 어머니는 늘 사정없이 휘둘리셨다. 당신의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긍정하고 계셨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선택은 남이 하고 어머니는 그들의 걱정을 짊어지셨다. 세상만사 모든 걱정은 모두 어머니를 거쳐 가는 것 같았다.

아마 한, 오 년쯤 더 젊어진 거 같아.

어머니의 이상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누나였다. 아버지 기일에 제사 치르러 집에 가보니 글쎄 엄마가 젊어져 있더란다. 아버지 기일은 그렇다 쳐도 엄마가 젊어진 건 어떻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당신에게 전화를 준 것이 닷새 전이었다. 처음에 당신은 시큰둥했다. 당신네 회사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었고, 당신네 부서는 실적이 매우 저조했으며, 덕분에 휴가는커녕 정상퇴근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지금 당장 잘려도 이상할 것 없는 판에 어머니가 한 몇 년 젊어진 게 무슨 대수인가. 그러나 어제 당신의 누나는 재차 이상한 소식을 전해 왔다. 엄마가 또 젊어졌어. 이번엔 한 십 년쯤? 당신은 잠깐 고민하다, 휴가 신청서 대신 사직서를 냈다. 휴가신청을 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고향에 돌아갈 대충의 짐을 쌌다. 당신보다 늦게 퇴근한 아내는 당신이 짐을 싸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으나 당신의 사직서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이라곤 했지만 당신은 딱히 할 말이 없었고, 그저 이해해 달라는 말만 반복해야만 했다. 아내는 대출금과 대출금보다 끔찍한 대출이자와 곧 눈덩이처럼 불어날 아들의 학비와 육 년째 살고 있는 좁아터진 전세방에 대해 한탄을 했다. 아내의 그저 그런 수입으로는 세 가족이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결국 당신은 차선을 택했다. 당신이 아주 고향에 내려가 터를 잡고, 아들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상당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아내는 당분간 자기 혼자 먹고 살 생각만 하면 될 것이고, 당신은 이제 큰일 났다. 아내는 끝내 이혼 이야기까진 꺼내지 않았다. 이젠 지쳤어. 아내는 풀죽어 얘기했다. 너무해. 당신은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미안해, 라고 했다.

당신은 어젯밤 잠들지 못하고 고향에 대해 생각했다.

버스는 어느새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눈발은 더욱 짙어져 창밖은 잿빛 일색이 되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직전 잠깐 정체되지 않았으면 톨게이튼지 뭔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서울은 눈도 거창하게 오는 도시다. 안동의 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리기 보다는 흐드러진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안동은 낙동강을 끼고 댐 두 개가 있는 도시라 안개가 자주 낀다. 겨울에도 안개 같은 눈이 내린다. 아직도 눈이 그렇게 내리는지는 의문이다. 당신이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교 시절은 확실히 그랬었지만. 쏟아지는 눈을 보며 휴게소에서 반드시 당신과 눈싸움을 할 거라고 우격다짐하던 아들은 이미 잠들었다. 당신은 조금 착잡했다. 안동에 가서 뭘 해야 하며, 뭘 하고 먹고 살 것인가. 아버지, 어머니, 아내, 눈, 아들, 고향, 새로운 직장 따위의 수많은 생각들이 당신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당신은 점점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버스는 거센 눈발을 헤치며 안동을 향해 달렸다. 당신의 희미한 꿈속에서 당신은, 저 높은 어딘가에서 지상으로 확 잡아당겨져 엄청난 중력을 느끼며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악몽에 신음하던 당신을 깨운 것은 아들이었다. 당신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곳이 휴게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버스는 이미 안동에 도착해 있었다. 당신은 묵직한 트렁크를 끌며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안동엔 눈이 그쳐 있었다. 아들이 길가에 쌓인 잿빛 눈을 뭉쳐서 당신에게 던져댔으므로 당신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당신의 고향집까지는 택시를 타기에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당신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고, 나머지는 모조리 변해 있었다. 익숙한 길이지만 상가며 건물이며 온통 새 것이고 못 보던 것이었다. 당신이 저기 어딘가에 당신이 일할 자리가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당신 아들은 신나 있었다. 당신 아들은 일 년 전 아버지의 상중에 아내와 같이 안동에 왔었으니까 당신에게는 온통 생소한 이 거리가 꽤 눈에 익어 있을 것이다. 이곳에 적응해야 할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었다. 아들도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여기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적응하는 것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당신 아들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아들보다 훨씬 더 오래 이 땅에 남아있을 사람은 아마도 당신일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어준 것은 누나였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누나는 당신이 올 때까지 대책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누나는 일주일짜리 연가를 모두 털었으며, 때문에 올해 승진은 끝장일뿐더러 이번 달 봉급도 위험한 수준이라며 푸념했다. 현관문에 들어설 즈음에야 당신은 당신 직장 얘기를 꺼냈다. 누나는 잠깐 생각하다 네 마누라가 너랑 살아주는 게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저 왔어요.

당신은 아버지가 들을까 싶은 마음에 조용히 중얼거리고, 잠깐 멍해 있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당신은 이제야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촌구석 안동은 꽤나 그럴듯하게 변해 있었지만 이 집은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이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작품이리라.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왔을 때 이 집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집을 뛰쳐나갔을 때, 아무리 설득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어머니는 이 집안의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해 왔을 것이다.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어머니는 딱 그 무렵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왔나, 우리 아들이 왔나?

누나는 어머니 뒷전에서 당신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당신이 오는 동안 5년 더 젊어지셨다는 이야기였다. 이십 년. 얼추 계산이 맞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집안을 마구 헤집어대는 아들에 대해서 한 마디도 이야기하질 않았다. 당신은 촐싹거리는 아들을 붙들어 어머니께 인사시켰다. 어머니. 제 아들입니다. 오, 글라. 어머니는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이 온 날 밤 누나는 급하게 서울로 올라갔다. 누나는 자신이 젊을 때 입던 옷 몇 벌을 따로 챙겨두고 갔다. 곧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누나의 설명이었다. 당신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기까지 젊어질까? 글쎄. 누나는 심드렁했다. 당신은 막연하게 걱정이 앞섰다. 누나, 더 젊어지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병원에 가 볼 수도 없잖니.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당신을 흔들어 깨웠다. 학교 안 가나, 아들? 처음 당신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당신에게 푹 파묻혀 있는 당신 아들을 가리켰다. 얘가 가야 돼요, 어머니. 어머니는 그저 인자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은 비몽사몽하는 아들의 뒷덜미를 붙들고 세수 시키고 밥 먹이고 옷 갈아입혔다. 당신은 이제야 당신 아내가 당신보다 항상 한 시간 일찍 일어났던 이유가 꼭 화장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십 년 만에 먹어보는 어머니의 된장찌개는 이십 년 정도의 맛이 났다. 당신은 교복 대신 양복을 갖춰 입었다. 어머니는 굉장히 즐거워하며, 손수 넥타이를 매 주셨다. 당신은 새 생활이 낯설어서 칭얼대는 아들을 질질 끌고 근처 초등학교에 갔다. 당신의 모교였다. 이름도 다르고 시설도 다르지만 당신이 다니던 그곳임은 틀림없었다. 전학 수속의 대부분은 아내가 처리해 놓았으므로 당신이 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아들과 교무실에 서 나란히 있으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의 담임이 될 사람은 젊은 여교사였다.

어떻게 서울서 여기까지 오시게 되셨어요? 그게, 어머니가 갑자기 젊어지셔서요. 어머, 세상에.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얌전한 어머니라. 당신은 왠지 학생이 된 기분이 들어, 적당히 인사치레만 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당신에게 학창 시절에 교무실에서 좋았던 기억은 없다. 나서는 길에 아들이 수업 받는 모습을 한번쯤 보고 싶기도 했지만 당신은 그만두기로 했다. 실업자 아버지는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학교를 나선 당신은 적당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의 취업본부였다. 당신은 그곳에서 생활정보지를 정독하고, 여러 곳에 전화를 걸고, 몇몇 군데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랬을 뿐인데 어느새 점심때를 한참 지나 있었다. 당신은 아들이 길을 잘 모르니까 데리러 가기로 했었다. 아마 한참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헐레벌떡 학교로 찾아가자 아들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되었다. 아들은 아무도 없는 그네에 앉아 잔뜩 풀죽어 있었다.

아들은 당신을 보자 훌쩍이던 걸 겨우 멈추었다. 아빠. 너무해.

미안. 당신은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을 집에 데려다놓고 당신은 다시 직장을 찾아 헤맸다. 당신 생각에, 젊을 적에 이력서 써서 돌아다닐 때도 이렇게 막막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저녁 여덟시를 지날 때쯤에야 당신을 써 주겠다는 곳을 찾았다. 불고기 전문 식당이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숯불을 피우고, 갈고, 바쁠 땐 서빙도 하는, 이른바 ‘불맨’이었다. 사장은 당신의 나이를 보고 탐탁찮아했지만 그래도 뭐 일단은 사람이 급하니까 어떻게 일할 생각 있으면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당신은 서울의 번듯한 사 년제 대학을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다녔으며 나름 서울의 번듯한 곳에 사무실이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사람이었다. 불맨이라. 일단은 집에 가서 고민해 봐야겠다. 당신은 일단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자 아들이 쪼르르 달려와 당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아빠. 할머니 이상해.

당신은 무슨 일인가 싶어 한달음에 안방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을 보자 대뜸 여보? 라고 했다. 기겁한 당신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엄마가 또 젊어졌는데, 이번엔 몇 년 젊어졌는지도 모르겠어.

응? 엄마가 뭘 했기에 호들갑이야?

누나 립스틱이랑 옷이랑 차려입더니 나한테 여보래.

아아. 엄마도 꽤 빨리 젊어지는구나.

어쩌지?

어쩌긴. 누나의 대답은 여기까지였다. 당신은 끊어진 핸드폰을 들고 곰곰이 생각했다. 곧 당신은 어머니가 젊어졌다는 것보다 어머니가 당신에게서 아버지를 찾았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누나 말이 맞았다. 어쩌긴. 당신은 곧 아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그쪽이 더 어려운 문제일 테니까. 그날 밤 당신은 불맨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때문에 당신은 이튿날 별 생각 없이 불고기 집에 출근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점점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신은 어머니가 많이 잘수록 더 빨리 젊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히 가사는 당신이 짊어지게 되었다. 자취 경력이 화려한 당신은 어렵지 않게 주부 일에 능숙해졌다. 불맨 일도 금방 익숙해졌다. 사장은 어째서 당신이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지 궁금해 했지만 당신이 썩 잘해내고 있었으므로, 딱히 물어보진 않았다. 당신은 열심히 일했고 그럴수록 집안은 형편없어졌다. 어머니가 당신을 아버지로 생각했던 건 사흘 남짓이었지만 당신은 그 이후로 어머니가 껄끄러웠다. 젊어진 어머니의 행동은 대부분 아버지와 연관되어 있었다. 당신은 일을 쉴 때도 좀처럼 어머니와 같이 있질 않았다. 그렇지만 어머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당신이 없는 동안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아들은 조금 묘한 표정이 되었다. 있잖아, 할머니가 나랑 아빠 구분을 안 해. 어머니 속의 당신은 당신 아들만큼이나 작아져 있었다. 당신은 별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응, 그런가봐. 아들도 주억거렸다.

하지만 아들이 좀처럼 납득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사흘째 아침으로 라면을 먹던 날이었다. 아빠, 나 이제 라면 싫어. 당신은 난감했다. 어머니도 동의했다. 내도 아침께부터 라면은 좀 그래요. 어머니는 이제 완전히 젊어져 있었고, 다른 지방 억양을 썼으며, 당신을 남 취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신은 그쪽이 더 편했다. 하지만 편하다고 라면만 먹는 건 당신이 생각해도 너무했다. 나 불고기는 자신 있는데, 오늘 밤엔 불고기로 할까? 어머니와 아들이 열렬히 동의했다. 그날 밤 당신은 퇴근하며 가게에서 고기를 좀 받아왔다. 숯은 없었지만 프라이팬이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불고기가 되었다. 왠지 밥도 유래 없이 괜찮게 되었다. 세 가족 모두 흥분했다. 당신이 돌아올 무렵부터 부엌에서 얼쩡거리던 아들이 냄새에 감탄했다. 아빠, 짱이다. 당신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 최고지? 어머니는 뒤꼍에서 당신이 사 온 상추를 씻었다. 늘 보던 그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이 겨울 그 찬물에, 어머니는 정성껏 상추를 씻었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당신은 피가 확 식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당신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아빠, 양파 맵지? 아들이 곁에서 쪼잘거렸다.

어머니는 기어코 소녀가 되었다.

어머니의 소녀 시절은 당신도, 누나도 몰랐다. 아버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어머니는 당신이 아주 모르는 어머니였다. 당신은 어머니의 과거를 알 만한 삼촌에게 연락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당신 기억속의 어머니는 원래 본인 이야기를 꺼려했었다. 당신은 젊어지기 전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이제와 어머니를 안다는 게 왠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여태껏 아들과 놀아주던 게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어머니는 소녀가 되자 그것마저 그만두었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해있거나, 아니면 잠드는 어머니였지만 둘 다 아닐 경우엔 쉬지 않고 의미 없는 말들을 조잘거렸다. 어머니는 당신을 아저씨로 불렀다. 가끔 자기가 쓴 편지를 보여주곤 했는데 내용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학업보다 농업이나 가사에 치중했을 삶인 듯싶었다. 당신을 짬을 내서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글보다 다른 것에 더 흥미가 있었다. 소녀가 된 어머니는 화장품을 바르진 않았지만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틈만 나면 화장품에 대해 묻곤 했다. 화장품을 잘 알 리가 없는 당신은 그것에 대해 누나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대부분 당신 아내는 혼자서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였다. 당신은 기가 찼다. 당신은 그럭저럭 살고 있지 못할뿐더러, 아내 이야기를 누나를 통해서 들어야만 한다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은 이따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했다. 불맨만 해서는 먹고 살기 빠듯했으므로 당신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겸하게 되었다. 편의점 시급의 대부분은 아들 밑으로 들어갔다. 일은 두 배로 힘들어졌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일을 하다 가끔 찾게 되는 아버지의 흔적도 따로 치우지 않았다. 애초에 이 집에서 아버지를 피해가기란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마련한 집이고, 아버지가 살던 집이다. 당신이 뛰쳐나왔던 그 당시 그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가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싶어. 아버지가 없으니까 엄마는 조금씩 젊어져버린 거야. 그 점에서만큼은 어머니를 혼자 놔두고 죽어버린 아버지는 미워해야 마땅했다. 그것은 당신이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때문에 당신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혹은 짊어지고 안동에 내려올 수 있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당신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당신이 어머니 곁에 있기 위해서 당신은 바빠졌고,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방치되었다. 당신이 어머니를 방치함으로써 어머니는 점점 더 빨리 젊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젠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삶도 이랬을까? 당신은 무엇인가에 자꾸 자신의 젊음을 뺏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신은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한글 실력은 급속도로 늘어 갔다. 젊어지기 전 어머니는 한글을 알고 있었으므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글을 배우는 동안 어머니는 어째서인지 젊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머니는 꽤 또박또박한 글씨로, 정확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편지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 다만 당신에게 보여 주지 않은 두어 통의 편지를, 당신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유서가 아닐까, 당신은 생각한다.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을 한 달 정도 남기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당신은 어머니의 유서를 뜯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마 아버지의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어머니의 상을 치르기 전에 아들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아내도 그것에 동의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그것을 아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무덤덤하게 아내 손에 이끌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당신은 상복을 입은 채로 그들을 배웅했다. 상은 그럭저럭 제대로 치러졌다. 아르바이트는 모두 그만두었다. 당신은 몇 주 정도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가 남겨 둔 재산을 처리했다. 안동 집이 매각되기 며칠 전 짐도 가구도 없는 텅텅 빈 집에서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을 맞았다. 어째서인지 당신은 피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던 아내와 아들도 내려왔다. 조촐하게 차려진 제사상 앞에서 당신은 한결 후련해진 느낌을 받았다.

한 달 만에 본 아들은 어째서인지 부쩍 왜소해져 있었다. 당신은 의아했다. 아들도 당신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빠, 젊어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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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상공모 시부문 심사평
2016년 현상공모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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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상공모 소설부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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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상공모 소설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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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설·드라마 부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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