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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신문문화상 수필 부문 당선작 '옛날 우리집'
제 809 호    발행일 : 2009.11.02 

2009학년도 신문문화상 수필 부문 당선작

 

 '옛날 우리집'

 

김민경(고고미술사학과/06)

 

“할머니, 무서우면 시장 가가지고 닭 한 마리 사가지고… 어, 닭을 요렇게, 요렇게 품에 안고 자면 된데이, 알았제?” 일곱 살 손녀의 말에 할머니는 한참을 껄껄 웃으시고는 담뱃불을 붙이셨다. 마루에 앉으면 멀리 보이는 먼 산을 할머니는 한동안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담배 연기때문인지 눈에 눈물이 금방 고이고 말았다. 손녀는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 앞에서 눈물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손등으로 몰래 훔치고 만다. 그렇지만 할머니 눈에는 손녀의 작은 코에 주렁주렁 매달린 콧물이 보인다.

고집 센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에 넌더리가 난 셋째 며느리는 언젠가의 독립을 위해 돈을 모으고 모았다. 그리고 딸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에 교육을 핑계로 시골에서 벗어나 읍내에 신축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본 내게, 엄마는 이제 이런 건 매일 탈 수 있고 네 방도 따로 있고 그 안에 이층 침대도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 생각에 우울해 있는 내 기분은 아랑곳 안 하고 한껏 들떠서 말하는 엄마가 미웠고 지금쯤 혼자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옛날 우리 집’에 다시 가자고 떼써, 부모님을 곤란하게 했던 일곱 살 손녀는 한, 두 해가 지나면서 김장철과 여름방학, 명절 때만 찾아가게 되는 ‘시골 할머니 집’에 오히려 더 익숙해져 버렸다. “할머니! 할머니!” 대문을 열기도 전에 할머니를 크게 부르던 소리도, 사춘기가 오고 할머니의 주름이 한, 두개씩 늘어갈 때마다 점점 더 작게 줄어들었고 발길도 적어졌다.

여름이었는지, 추운 겨울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어릴 때보다 더 흐릿하게 기억으로 남은 그 날, 그 날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었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아프셨다는 것과 계속 나와 내 동생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왜 엄마는 나와 내 동생에게 할머니가 아프다는 말도, 우리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도 해주지 않았을까? 엄마가 야속하고 미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못 비친 것에 죄송하고 많이 보고 싶었다.

상을 치루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시골 할머니 집을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고 오랜 만에 찾은 그 곳은 많이 달라졌고 또 그대로였다. 마당이 이렇게 작았었나, 한참을 마당에 가만히 서있었다. 마당에서 사촌 동생들과 뛰어놀던 기억, 돗자리를 펼쳐놓고 그 위에 누워 보았던 새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던 수많은 별들도 생각났다. 그 날 할머니가 해주셨던 방귀 뀌는 며느리 이야기도 생생히 떠올랐다. 난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웃음도 나오고 눈물도 새어 나왔다. 마당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마루가 보였다. 마루에 앉았더니 수많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밤에 자고 있다 소변이 마려워 마루에 나와 할머니와 함께 서로 요강에 앉아 소변보던 일, 큰어머니와 엄마, 작은 엄마와 둘러앉아 고구마 껍질을 벗기던 일.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좋아했던 할머니 냄새가 이제는 어렴풋하게 기억으로 남은 사실이 슬펐다. 안방에서 나와 대문을 바라보니 어릴 때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집 앞에 묶어뒀던 개가 항상 으르렁 거리고 짖어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워서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혼자 계속 대문 밖에 서서는 엄마를 불렀던 기억이 났다. 마당을 끼고 오른쪽 편에는 기와집, 바로 앞에는 예전 우리 식구가 살았던 집이 한 채 더 있었다. 우리가 읍내로 이사 가고부터는, 할머니 혼자 이곳에서 지내셨다. 집을 들여다보니, 여러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항상 아침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유치원 가자고 소리치던 동네 친구 태호도, 추석 날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던 그 날도, 어른들이 모여 고스톱 치던 것을 구경하던 것도, 다 같이 모여 잠을 자던 그 날들 모두 떠올랐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버지는 이제 이 집을 팔게 될 거라고, 아무도 살지 않을 바에야 파는 것이 나을 거라고 했다.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 살았던 이 곳, ‘옛날 우리 집’은 내 유년 시절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곳이었다. 속상해서 아버지께 투덜거렸더니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게는 어릴 때 추억만이 서린 곳이지만 아버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집’이라고 불렀던 곳이었다. 내 앞에서 껄껄 웃으셨던 아버지는 속으로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언젠가 늙으면 그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던 아버지였다.

그 뒤로 그 집을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명절 날 시골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러 시골에 간 적은 있었지만 그 집만은 일부러 아버지와 난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몇 해 전에 이미 돌아가셨지만 이상하게 아직도 나는, 그 집에 찾아가면 할머니가 계실 것만 같고 내가 “할머니!” 하고 부르면 반갑게 맞아주실 것만 같다. ‘옛날 우리 집’이 너무 그립지만 찾아가고 싶지 않은, 할머니가 없는 그 집을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아직 버거운 일이다.

지금도 ‘옛날 우리 집’, ‘시골 할머니 집’을 생각하면 안방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계속 우리 집을 간직하고 싶다, 언제까지라도. 할머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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