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의 끝에서
오승영 (국어국문학과/02)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점심을 늦게 먹은 까닭에 터미널 마트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과자를 사고 청주행 버스에 올랐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은 만원버스가 아니라면 대부분 옆자리가 허전하다. 하지만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 허전함은 하찮은 것이든, 그나마 좀 쓸만한 것이든 나의 많은 생각들로 채워지게 된다. 내 옆자리에 누가 앉건 상관이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시끄러운 아이를 무릎에 앉힌 아줌마, 담배냄새에 찌든 사람-아니, 평소 0.1mg이라도 니코틴 흡입을 즐기는 사람-, 떠드는 것까지는 좋으나 욕설에 능한 사람은 '상관이 없다'의 목록에서 과감히 삭제를 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을 클릭하게 되면 사정없이 쏟아지게 될 스팸메일같은 짜증들이 내 심성을 날카롭게 만들 것이 뻔하기에. 따라서 위 조항을 제외한다면 옆자리에 누가 앉건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내게 허락된 나의 권리이다.
허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것은 나의 간단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보기만해도 물이 그리워질 것 같은 크래커와 삶은 달걀 으깬 것이 듬뿍 들어가 있는 샌드위치, 그리고 싼값이라는 호기심에 구매한 새로 나온 과자에 신경 쓴 나머지 먹을 '음료'를 사지 않은 것이었다. 차에 올랐을 때부터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버스가 꽤 달렸을 즈음에는 배도 고팠기에 어쩔 수 없이 샌드위치를 꺼내어 먹었다. 되도록이면 잘 넘길 수 있게 오래오래 씹었으나 침 이외의 다른 액체성과는 교감도 없이 넘어가는 햄이며 빵뭉치며, 달걀덩어리들은 내 목구멍 벽에 붙어 혀의 감촉을 다시금 느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세 조각 중 하나를 꾸역꾸역 집어먹고나니 나도 모르게 옆사람을 쳐다보게 되었다. 혼자 먹는 미안함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물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샌드위치를 하나 권했다. 그녀가 사양한다.
“혼자먹기 미안해서 그래요. 하나 드세요.”
그녀가 마지못해 잘먹겠다 말하고 받으면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을 꺼낸다. 캔커피였다. 카페인 과민반응 증상이 있는 내가 커피위 위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쁘게 받아 마셨다. 잠시 뒤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차시간에 늦어서 허겁지겁 오느라 저녁도 못챙겨 먹고 왔다고, 하는 일 없이 바빠 점심도 못 먹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고맙다고.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리고는 내가 산 과자를 모두 풀어놓고 같이 먹기를 권했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그는 청주대학교 학생인데 해외유학을 다녀온 뒤 다음 학기 복학 정보도 물을 겸 친구들도 만날 겸해서 1년 만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순간 그의 부드럽고 맑은 음성, 긴 생머리카락이 매력있게 느껴졌다.-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비단 카페인 효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대화가 끊기고 청주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멀었는데 커피를 마셨는데도 약간 졸음이 왔다. 그녀는 잠에 빠졌는지 머리를 가누질 못하고 창문에 부딪히기도 하고 자꾸 내 어깨 쪽으로 기대는 듯했는데, 그러던 그가 완전히 내 어깨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역시 사람의 잠자는 모습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평화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녀의 불편한대로의 단잠을 깨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어깨 위에 벗어놓았던 긴소매셔츠를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순간만큼은 '이사람은 내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였건 간에 나의 행동은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다.'라는 생각에서 이 시간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녀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최후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0.5평도 되지 않는 버스 안 공간에서 그녀와의 만남은 나라는 사람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을만한 교감 이상의 교감이었다. 애초부터 왁자지껄 시끄러운 여행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당분간은 나홀로 여행도 쉬어야겠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단, '내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과 단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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