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혜(식품공학과 08)
처음 공모전 포스터를 보았을 때는 한번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도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떨어지던 때였거든요. 실패의 좌절감을 계속 느끼기보단 ‘이것도 경험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 내내 저는 행복했습니다. 제가 원하던 글을 쓰고 있고, 무엇보다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글이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어 글로 비추어본다는 것은 사실 즐거운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그만큼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이죠.
사실 이 이야기는 제가 우인혜이기 전 우현진이란 이름으로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저나 제 동생들도 자라서 이런 추억은 없지만, 어린 저는 방학이면 외가댁에 가서 보내던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나이 터울은 좀 크지만 쌍둥이인 동생들 때문에 외조부모님이 절 보살펴주셨기 때문이죠.
외가댁엔 크진 않지만 작은 과수원이 있습니다. 그 곳은 우리 엄마와 이모 삼촌이 살던 추억의 자리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곳에 가면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도 느낍니다. 그 기억을 잊기 전에 한번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이 글은 저의 작은 일기 같은 존재이지요.
그리고 과수원에 있는 작은 원두막은 많은 이야기가 담긴 곳입니다. 그 곳에서 수박을 먹으며 들었던 무서운 얘기와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뒹굴던 일, 할아버지의 집필이 이루어지는 작은 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던 일..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제 곧 재개발로 원두막은 철거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저에게 닿았기에 감히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마지막 추억을 큰 선물로 되돌려준 이번 공모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과수원길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동요를 신나게 부르며 6차선 도로 옆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어가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다. 아마 이 노래를 다시 개사 한다면 아마도 ‘동구 밖 과수원길 사과꽃이 활짝 폈네~’가 아닐까 싶다. 과수원길.. 지금은 앞에 커다란 웨딩홀도 생기고 포장된 도로가 깔려서 한결 들어가기 쉬워진 곳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십오년전만 해도 그 곳은 그 아이만의 작은 원더랜드였고, 놀이동산이었으며 동시에 공포의 선망이기도 했다.
지금은 퇴직을 하시고 매일의 애착을 가지시고 작게 운영하시는 작은 농장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 때는 교직에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취미로 일구시던 곳. 외갓댁에 가면 으레 들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겐쌍둥이인 동생들 때문에 외갓댁에서 방학을 지낼 때에나 갈 수 있었던 그런 멀고도 늘 곁에 있어준 곳이기도 했던 그 곳.. 충주시 금릉동 산 15번. 아니 이 이름보단 팽고리산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런 이름이 더욱 잘 어울리는 이곳.
지금은 내가 너무 커버린 탓이기도 하고 그동안의 세월의 변화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어린 꼬마였을 땐 그 곳엔 허름히 쓰러져가던 초가집 한 채와 발이 빠질까 두려워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푸세식화장실이 붙어있던(아마 그 때엔 본채가 아니었을까?) 커다랗고 컴컴했고 커다란 거미줄들이 생각나던 커다란 낫들의 위협적인 날이 떠오르는 창고, 커다란 말 두 마리가 매어져 있던 커다란 마굿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늘 사람을 반겨주던 검정코에 똥색을 한 강아지 한 마리, 마지막으로 작은 아이에겐 올라가기엔 너무도 높았던 그 팽고리산. 지금은 너무도 시시해져버렸지만 그 때의 난 그 위의 세계가 너무도 궁금했었다. 낑낑거리며 올라가서 뱀이 나오니까 위험하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뒤로하고 구경하던 닭장은 얼마나 신기했던지. 또 그 뒤로 펼쳐진 과일나무들은 마치 미로속의 나만의 세상에 떨어진 것 마냥 얼마나 즐거웠던지.
그 작은 산에는 이제는 작은 나무계단이 있다. 너무 허름해서 계단이라고 하기에도 어설픈 그런 구조. 하지만 지금도 이 녀석이 처음 날 위해 태어났던 날이 눈에 선하다. 어릴때부터 유독 겁이 많았던 나는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오도가지도 못하고 그저 울면서 누가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런 나에겐 닭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한 암벽등반이나 다름이 없었다. 늘 이렇게 힘겨워하는 날 위해 작은 삼촌이 놓아주었던 작은 나무계단. 그 겁많은 아이는 이 작은 나무계단을 설치할 때도 무서워서 옆에서 삼촌들이 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정말 올라가보고 싶지만 마치 올라가면 누군가가 날 밀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계단마저도 나에겐 너무도 높게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이기고 올라간 곳엔 작은 닭장이 있었고 그 곳에서 나오신 할아버지의 손엔 작고 따스한 달걀이 두개씩 들려져있곤 했다. 그 달걀을 부화시키겠다고 가장 작고 예쁜 알을 골라 니트티에 포근히 싸서 들고다니다가 떨어뜨려 알이 깨진날엔 또 얼마나 울었던지.
계단이 만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또 그 곳엔 작은 원두막이 세워졌다. 겉보기엔 허름하고 보잘것 없었지만 그저 한더위를 식히고 그저 흐른 땀을 말리기엔 적당한 크기였다. 그 곳에서 그 작은 아이는 엄마의 무릎에 누워 엄마가 해주던 이야기에 잠이 소록들었다 깨어나면 뒤에 있던 커다란 보리수나무에서 한아름 보리수를 따 베어물곤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 재촉하곤 했다.
“거기에는 엄마가 살았고, 인혜이도 살고, 할아버지도 살고, 이모도 살고, 삼촌들도 살고있는 집이었어요. 아주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답니다. 거기에서 엄마는 사과도 기르고 배도 기르고 복숭아도 기르면서 살았대요. 그래서 우리 인혜이한테 따주었대요.”
이런 소소하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 재미있던 이야기도 없었고 이 이야기만큼 무서운이야기도 없었다.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가 있는지 도무지 그 소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의 무릎에 누워있을 때면 이따금씩 그때 내 머리 위로 지나가던 바람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이렇게 과수원을 뛰어다니던 작은 아이는 배가 고프면 봄이면 나무 한가득 열리던 보리수를 따서 먹고, 여름이면 살구며 복숭아를 따먹고, 직접 딴 옥수수를 삶아 먹고, 가을이면 세를 놓아주었던 사과나무에서 몰래 사과도 서리해 먹고 달콤츄르릅한 배도 따먹고, 겨울이면 모두들 모여 군고구마를 먹었었다. 또 감기가 들면 직접 딴 모과로 만든 모과차를 마셨고, 기관지가 약해서 항상 가장 크게 자란 배를 따다 할머니가 꿀에 재워 달여먹이셨다. 다른 아이들처럼 단 사탕, 초코렛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주전부리들을 좋아했던 그 중에서도 달콤쌉사래했던 보리수를 따먹는 맛이란! 지금은 내 한아름보다 더 커진 보리수나무. 이 녀석은 특유의 쌉사름하고 텁텁한 맛 때문에 먹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따먹지 않았기에 너무 커버린 그 녀석을 베어내고 새로이 다른 녀석을 심으려던 할아버지. 하지만 매년 봄이 오면 그 작은 소녀는 커서 숙녀가 되도록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오두막에 앉아 보리수를 따먹으며 즐겁게 웃는 모습에 할아버지는 이내 마음을 돌리시고 그 작은 나무를 소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지금은 매년 남은 열매로 술도 담가 마시고, 여전히 보리수는 내 전담의 주전부릿감이 되었지만.
그 뒤로 그 작고 허름했던 귀신나오던 집은 허물어지고 그 위엔 할아버지의 작업실이 세워졌다. 지금의 나는 그 곳에서 나는 은은한 먹내도 좋고,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는 연습장과 할아버지의 습작시들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운 여름날엔 작은 침대에서 창문을 모두 열고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할아버지의 글을 읽다 잠이 드는 상쾌한 기분도 좋다. 그리고 또 몇해가 흐르고 그 뒤에는 작은 시비와 아름다운 화단이 일구어졌고 더 이상 나는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의 길목에 서있게 되었다. 이젠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그 시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절차를 따르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새 작은 토담집이 생겨나고 찜질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지만. 지금도 내 머릿속의 과수원길은 그 작은 오솔길을 지나 귀신이 나오던 허름한 오두막을 지나 날 반기던 말 두 마리가 있던 그 곳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낮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함께 놀자고 내게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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