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밖에서 살아보기>
정석진(경영학부, 06)
처음에는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고향을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서는 일주일정도 머물렀는데, 한라산을 다녀온 사이 자전거 안장을 도난당하는 재앙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황당한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마치 여행이 일상이었던 것처럼 편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무료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간 자칫 여행자체를 그만두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두 달여를 되돌아보며 고민한 결과, 밖에서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걱정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돈만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든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점 때문에 출발했을 때의 간절함은 사라졌고, 여행에 대한 의무감만이 남아 나를 옥죄고 있던 것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돈으로 결론지으면서, 나는 돈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바로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을 남긴 채 카드를 잘라버렸다. 그렇게 하고나니 왠지 모를 쾌감과 함께 다시 여행을 해야겠다는 욕구가 간절하게 솟구쳐 올랐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모험이 시작된 셈이다.
카드를 자른 직후에는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4시간쯤 달렸을까? 배가고파오기 시작했다. 일단 첫 날의 점심은 미리 사놓았던 라면5개 중 1개로 때웠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 해 강원도의 여름은 정말 강렬했는데 달아오른 아스팔트위로 내 몸도 함께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산이 많으니까 힘든 거야. 이곳만 참고 지나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제발 참자...”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해발 1000m 오르막길을 보니 그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후 얼마안가 라면까지 다 먹어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인적이 드문 태백산맥의 한 자락에 놓이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제야 나는 이성적 판단과 함께, 돈 없이 밖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먹을 것을 요구하는 내가 보였다. 하지만 계속 거절을 당했고, 나는 살기위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 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호의를 베풀기 전에 그에 대한 요청을 받는다면 불쾌감을 드러낸다는 공통적인 특성을 찾아냈다. 이것은 마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공부를 시킨다면 하기가 싫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후, 나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 보단 상대방이 먼저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그 후, 내리쬐는 햇볕아래 인적도 없는 강원도 국도를 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여기서 힘들게 뭐하는 거에요?” 그 아저씨는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는 대답 없이 검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밝게 웃어 주었는데, 그 모습이 황당했던지 그 분은 무척이나 웃으셨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연스레 내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하게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저씨는 나를 홀로 남긴 채 떠나 버리셨다. “아휴... 이번에도 실패구나...”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오늘 먹은 거라곤 비상시를 대비해서 1달 전쯤 사둔 초코바가 전부였다. 다시 출발을 하려는데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지 정신까지 어질어질 했다. “아씨... 메뚜기라도 잡아서 구워먹을까?” 나는 정말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억지로 출발하곤 얼마안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근데 밥은 먹었어요?” 좀 전 그 아저씨였다. “안 먹었으면 우리 밥이나 먹고 가죠.”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저씨를 사랑할 뻔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밥을 먹었는지 물어 보는걸 깜빡해서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선 시내로 이동한 후, 7만원 가량의 푸짐한 식사를 했다.
그 후에도 나의 돈 없는 여행은 계속 되었다. 씻을 곳이 없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윗옷을 벗고 씻다가 성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기도 했고, 깜빡하고 자전거와 떨어져 길에서 통닭을 먹다가 거지로 오해 받기도 했다. 또한 천원 벌기도 시작했다. 천원 벌기란 지나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주고 천원만 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나의 목표가 된 것은 이른 아침 우체국 앞을 쓸고 계시던 아저씨였다.
“아저씨, 제가 대신 쓸어 드릴 테니...........1000원만 주시면............”
아저씨는 내 행색을 보고 대충 감을 잡으셨는지 흔쾌히 승낙을 하셨고, 나는 그렇게 하루 밥값을 벌수 있었다. 천원 벌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원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는데 어떤 분들은 몇 만원을 주기도 했고, 천원으로 라면을 사먹을 거라고 하면 식당에서 밥을 한 끼 사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얼마간을 돈이 없이 밖에서 생활을 했다. 돌이켜보면 조금은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내 가능성과 사람들을 믿었다.
지금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20대의 평범한 일상을 살다보면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빠지지 않는 것이 여행경비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한 돈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데,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Yes"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직접 겪어본 ‘돈 없이 밖에서 살기’는 조금 위태롭긴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가능한 일이었다. 사소한 것에 대한 행복과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고마움,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는 계기였다. 떠나기 전 열등감에 휩싸여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던 마음도 웬만큼 정리가 되었고,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겪으면서 인생을 조금은 더 배웠다. 나는 타인에게 나와 같은 여행으로 인하여 삶의 목적을 찾으라고 권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떠한 계기로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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