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레슨을 7년 동안 받은 사내가 있다. 사내는 미련할 정도로 성실해서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레슨을 빼먹은 날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코트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순둥이부터 사기꾼까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던 몸이 철인 삼종 경기에 나가도 될 만큼 단단해졌다. 코치를 바꾼 적 없지만 네 명의 코치가 그를 거쳐 갔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서 그가 마침내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됐느냐고? 천만의 말씀, 그는 동네 테니스장 에이스도 되지 못했다.
레슨을 때려치운 뒤 그는 혼자 책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연구하고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7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은 코치를 너무 믿고서 스스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단순한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멍청한 사내가 바로 나다. 나는 아직도 동네 에이스가 아니지만 레슨을 받을 때와 달리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즐겁다. 돈 나갈 일도 없고.
신문 문화상 수필 부문 응모작을 훑어보면서 불현듯 나의 잃어버린 7년이 떠오른 것은 응모자들이 입을 모아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수필이요? 그까이꺼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다보면 어느 날 좋은 글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턱도 없는 소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연구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수필은 붓 가는대로 쓰는 글 아닌가요? 자유롭게 쓰면 된다는데 무슨 연구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속으로 이런 생각하는 거 다 안다. 수필을 잘 쓰려면 그 말부터 의심하라. 수필도 문학이다. 문학적 말하기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문학적 말하기 방식? 그것도 모르면서 좋은 글을 쓰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시나 소설이면 몰라도 수필을 쓰는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부터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시나 소설만큼이나 수필을 제대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수필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좋은 수필을 찾아보기 어려운 거다. 문학적 말하기 방식을 모르는 채로 글을 쓰면 풀어진 칼국수 같은 글밖에 나오지 않는다.
설명하지 말고 알아차리게 할 것, 구체적 경험을 통해서 말할 것, 자기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을 쓸 것,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할 것, 듣기 좋게 말할 것, 돌려 말할 것,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도록 할 것, 등등, 문학적 말하기 방식은 간단하지가 않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느냐고? 작품을 읽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작품을 읽으면서 은연중에 깨닫게 되지만, 무딘 사람은 문학 이론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열다섯 편의 응모작 가운데 <돈 없이 밖에서 살아보기>가 가장 나았다. 주제의식도 깊고 글의 전개도 자연스러우면서 결말이 뻔하지 않다. 이 글의 매력은 글쓴이의 도전의식과 삶에 대한 열정에서 말미암는다. 그는 좋은 수필이 현명한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글 덕분에 신문 문화상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투고자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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