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의 철조망을 넘어 자식을 넘기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비행기에 매달리는 절박함. 2007년 탈레반 한국인 납치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 건 처음이다. 그러나 관심의 이유는 달랐다. 증오와 분노가 아닌 슬픔과 안타까움이었다. 우리에게 아프간은 9.11 테러 이후 가끔 뉴스나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나라 정도로만 알려졌다. 그래서 아프간에서 일어난 비극의 배경에 대해 알아봤다.
역사가 낳은 아프간의 비극, 탈레반
동서문화 교류의 요충지인 아프간은 여러 정복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18세기 중엽에야 카불을 중심으로 지금의 아프간이 형성됐다. 아프간은 1839년부터 자국을 세력 하에 두려는 영국과 3번에 걸쳐 전쟁을 치렀고, 결국 독립을 인정받고 1926년부터는 비교적 안정된 왕정을 40년간 이어나갔다. 이 시기 수도 카불은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 후 1973년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쿠테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다우드 칸은 아프간의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를 바꾸고자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친소련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자국 내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물론 이슬람 원리주의자도 탄압해 국내의 불만을 키웠다. 결국 1978년 좌익계 군인들과 아프간 최대의 공산주의 정당인 ‘아프간 인민 민주당’의 쿠데타에 의해 5년의 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공산정권인 ‘아프간 민주 공화국’은 급진적인 공산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특성이 보수적인 이슬람 지도자들의 반감을 키웠다. 결국 아프간 전역에 이슬람 수니파 부족 집단을 중심으로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내전이 시작됐는데, 이때의 저항군을 ‘성전을 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무자헤딘’이라 불렀다. 내전이 시작되자 정부군 중 17사단이 저항군으로 돌아섰는데, 17사단에 와있던 소련군 군사고문단, 간호사, 군인 가족 등 500여 명이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련은 이를 명분으로 1979년 12월 24일 새벽 아프간을 침공했고, 3일 만에 아프간 정부를 무너트린 후 새로운 공산정권을 수립시켰다. 당시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 실제 목적은 부동항 획득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아프간뿐만 아니라 이슬람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받아들여져 해외의 무슬림까지 무자헤딘에 가세해 소련에 저항했다.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산악지대를 활용한 무자헤딘의 게릴라 전술이 먹히면서 1989년 결국 소련은 철수하게 된다.
소련 철수 후에도 무자헤딘과 나지불라 정부군과의 내전은 계속됐고, 1992년 무자헤딘이 카불을 점령하면서 내전은 종식됐다. 하지만 여러 무장군벌과 파벌의 연합체였던 무자헤딘였기에 권력을 놓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학생이란 뜻으로, 이슬람 교리를 정치.사회 질서의 기본으로 삼는 이슬람 원리주의 신학자들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발생한 고아들을 모아 교육하면서 조직됐다.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아이들이 무자헤딘이 되고, 이들이 중심이 돼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인 탈레반이 탄생한 것이다. 텔레반은 신앙을 앞세워 아프간의 질서를 다시 세웠고, 내전에 지친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1996년 카불을 장악해 ‘아프간 이슬람 토후국’을 세운다. 이후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으로 아프간을 통치하며 ▲언론 탄압 ▲대중 매체와 문화 금지 ▲비이슬람 종교 금지 ▲여성 권리 박탈 등의 악행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미국, 아프간 늪에 빠지다
2001년 9월 11일 역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다. 바로 9.11 테러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알카에다’와 그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였던 빈 라덴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격분해 이슬람 의용군으로서 무자헤딘에 참여했다. 1988년 무자헤딘에 참여했던 무슬림 청년을 모아 ‘근거지’ 또는 ‘본부’란 뜻의 알카에다를 결성했고, 걸프전을 계기로 미군이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에 주둔한 것에 반발하여 반미 테러 활동을 전개한다. 미국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처럼 이슬람 세계를 침범한 침략자로 본 것이다.
9.11 이후 빈 라덴의 행방을 쫓던 미국은 그가 아프간에 피신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됐고, 아프간 탈레반에 빈 라덴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알카에다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이에 미국은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을 카불에서 몰아냈지만, 빈 라덴을 찾지는 못했다. 이후 미국은 10년 동안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계속했지만 빈 라덴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5월 2일 아프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이 사살됐다.
그 사이 아프간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지원 아래 2004년 총선을 통해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이 출범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었고, 조직을 재정비한 탈레반은 게릴라전과 테러로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에 맞섰다. 탈레반의 영향력은 아프간 남부와 동부의 교외 지역에서 확대됐다. 이처럼 탈레반이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간이 북부와 남서부의 평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게릴라 전에 유리하고, 파슈툰인(42%), 타지크인(27%), 우즈베크인(9%), 하자라족(8%) 등 다양한 부족으로 구성된 사회여서 수도와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빈 라덴 사살로 전쟁의 명분을 잃은 미국은 아프간에서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군은 지난 5월 아프간 철수를 시작했고,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카불에 무혈입성해 재집권했다.
달라진 탈레반 2.0, 주변국의 반응
재집권에 성공한 탈레반은 이전의 탈레반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여성 인권 보장을 약속하며 국제 사회에 자신들이 정상 국가임을 호소하고 있다. 서강 유로메나 연구소의 박현도 교수는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 여성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존중과 탈레반만의 정권이 아닌 여러 종파세력을 아우르는 통합정부 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탈레반 내부도 불안정해 보이기에 정상 국가를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보인다”라며 “탈레반 정권 취임식 초청장을 ▲중국 ▲러시아 ▲이란 ▲카타르 ▲터키 ▲파키스탄에 보낸 것으로 보아 아프간 주변 여섯 국가가 자신들을 정상 국가로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성공회대 이희수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탈레반 집권 시기에 이미 아랍에미리트와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인정한 적이 있고, 현재는 카타르가 중재 역할에 나서며 터키와 함께 인정할 것이라는 움직임을 보인다. 주변국가인 이슬람 사회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는다면 서서히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8월 19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영국의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프간에 들어설 새 정부에 대해 국제 사회가 압박할 것이 아니라 더 격려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카불에 대사관을 열어놓고 있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중국 CGT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거대한 경제와 능력을 가진 큰 나라”라고 평가하면서 “아프간의 재건과 부흥, 복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도 교수는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탈레반 2.0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현재 이들이 첫 번째로 내세우는 것이 경제 재건이다.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당연히 중국과 손을 잡고 싶겠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도 신장.위구르 지역에 아프간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영향을 주면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에 유화적인 자세로 탈레반을 대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등 주변국 대부분이 탈레반의 원리주의가 자국에 영향을 줄까 봐 신경을 쓰고 있다. 결국 아프간 주변국들은 당분간 탈레반에 유화적 자세를 취하면서 그들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향후 아프간 정부 형태에 대해 박현도 교수는 “기본적으로 아프간이라는 나라가 다민족으로 구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정부가 힘든 나라이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은 스위스 형태의 연방정부로 가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기자는 아프간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동안 서구사회가 만든 선악의 프레임에 갇혀 이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우리의 시각에서 아니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시각에서 탈레반은 악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탈레반이 생겨 난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들을 악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이슬람은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사막과 아랍 문화에 영향받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탄생한 종교다. 또 이슬람뿐만 아니라 인간을 종교의 틀에 가두려는 원리주의는 어떤 종교든 존재한다. 선입견을 버리고 세상을 볼 때 보다 명료하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 년 전에는 백정이라는 이유로 학교 입학이 거부됐다. 그리고 50여 년 전에는 남녀 차별이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프간의 미래도 우리처럼 달라질 수 있길 바란다.








전우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