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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10.19 월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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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예원
말이 된 시대, 시대가 담긴 말
제 996 호    발행일 : 2026.10.19 
  새로운 말이 생겨나는 방식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에서는 긴말을 줄이거나 익숙한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자신의 취향이나 생활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기도 하며, 하나의 밈이 유행하면 이를 변형한 표현이 잇따라 등장한다. 이렇게 탄생한 말들은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에 웃고 관심을 두며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신조어에는 어떤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을까. 몇 글자로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전하고, 취향과 삶의 방식에 이름 붙이는 사람들의 언어를 따라가 보자.

줄여서 만든 말

  온라인에서는 긴 문장이나 단어를 모두 적지 않고도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SNS와 메신저에서는 같은 표현을 아는 사람끼리 몇 글자만으로 상황을 공유한다. 줄임말은 곤란한 처지를 드러내거나 취향과 일상을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을 요청하는 데도 쓰인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표현 네 가지를 살펴봤다.

▶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용한다.
예) “시험 전날 밤새 게임을 했더니 졸려서 집중이 안 돼. 이건 스불재야.”

▶ 완내스: ‘완전 내 스타일’의 줄임말. 자신의 취향에 잘 맞는 대상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예) “이 카페는 음악도 인테리어도 완내스야.”

▶ 오운완: ‘오늘 운동 완료’의 줄임말. 그날의 운동을 마쳤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예) “퇴근하고 5km 달렸다. 오운완!”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 상대방에게 상황에 맞게 일을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예) “발표 자료는 핵심만 담아서 알잘딱깔센으로 정리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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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기자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줄임말.

  줄임말은 쓰이는 상황이 다르지만, 긴말이나 문장을 압축해 간결하게 의미를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빠른 소통을 돕는 동시에, 같은 표현을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원래 있던 말의 의미 변화

  신조어가 반드시 새로운 단어의 탄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말이나 전문 용어가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면서 일상적인 반응 표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긁?’, ‘뇌절’, ‘코르티솔’, ‘도파민’은 단어를 줄이거나 쓰임을 넓혀 감정과 상황을 전하는 사례다.

▶ 긁?: ‘긁혔어?’를 줄인 표현. 상대방이 특정 말에 발끈하거나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일 때, 이를 놀리거나 떠보는 뜻으로 사용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표현인 만큼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예) “농담 한마디에 그렇게 화내는 거야? 긁?”

▶뇌절: 같은 말이나 행동을 지나치게 반복하거나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
예) “그 농담은 이제 그만해. 계속하면 뇌절이야.”

▶코르티솔: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호르몬의 이름. 온라인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되는 상황을 농담조로 표현할 때 쓴다.
예) “과제 마감이 세 개나 겹치다니, 코르티솔 올라간다.”

▶도파민: 보상과 동기 등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이름. 재미있는 콘텐츠나 자극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흥분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예) “경기 종료 직전에 역전골이라니, 도파민 터진다!”

  기존 단어에 새로운 쓰임이 더해지면 긴 설명 없이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다만 일상에서 쓰는 ‘코르티솔’과 ‘도파민’은 느낌을 빗댄 표현으로, 실제 분비량이나 생리적 변화를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용법은 정확한 설명보다 공감과 재미를 중시하는 온라인 소통의 특징을 드러낸다.

취향과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말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SNS를 통해 관심사와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취향을 쉽게 접하면서, 지향하는 모습과 생활 방식을 간단하게 나타내는 말들도 생겨났다. 다음 네 가지 표현은 외모에 대한 기대부터 건강 관리, 취미와 독서 문화까지 다양한 관심사를 담고 있다.

▶도달가능미: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아름다움이나 외모의 기준을 가리키는 말.
예) “과한 꾸밈보다 일상에서 따라 해 볼 만한 도달가능미가 좋아.”

▶저속노화: 노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실천하려는 태도나 방식을 가리키는 말.
예) “저속노화를 위해 식단을 바꾸고 규칙적으로 잠을 자려고 해.”

▶디깅: 자신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며 탐구하는 행위.
예) “요즘 재즈에 빠져서 연주자별 음반을 디깅하고 있어.”

▶텍스트힙: 독서나 글쓰기, 기록 등을 멋지고 매력적인 취향으로 여기는 문화를 나타내는 말.
예) “마음에 드는 책 구절을 필사해서 공유하는 것도 텍스트힙의 한 모습이야.”

  이러한 말은 개인의 관심사를 소개하는 동시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한다. 외모나 건강을 관리하는 방식, 좋아하는 분야를 탐구하는 깊이, 독서와 기록을 즐기는 태도에 이름을 붙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의 밈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말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은 하나의 표현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익숙한 문구에 다른 말을 붙이거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바꾸며 새로운 표현을 만든다. 원래의 맥락을 함께 안다는 공감대가 변형의 재미를 더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밈은 여러 형태로 확산한다.

▶피에로 밈: 피에로로 일하는 남자 친구에 관한 온라인 사연이 확산되며 등장한 밈이다. ‘선배삐’, ‘신입삐’처럼 말에 ‘삐’를 붙여 사람이나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삐바삐’는 ‘사람 바이 사람’을 변형한 말로,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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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로 밈을 활용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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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로 밈 원본.

▶영크크 밈: 아이돌 그룹 코르티스(CORTIS)의 노래 〈YOUNGCREATORCREW〉로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영크크’는 ‘영 크리에이터 크루(Young Creator Crew)’를 줄인 말로,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나타낸다. 이에 대비되는 ‘늙크크’와 ‘올크크’도 파생돼 유행에 익숙하지 않거나 옛 감성을 보이는 사람을 장난스럽게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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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크크 밈을 활용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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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방송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늙크크 밈.

▶‘하겠습니다/안 하겠습니다’ 표현: 참여나 거절의 의사를 짧고 단호한 문장으로 답해 웃음을 주는 표현이다. 일상적인 제안에 격식 있는 말투로 반응하는 대비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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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겠습니다/안 하겠습니다 밈을 활용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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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겠습니다/안 하겠습니다 밈 원본.

  밈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표현을 만드는 참여자가 된다. 특정 어미를 붙이거나 반대말을 만들고, 문구를 다른 상황에 적용하면서 온라인 언어의 범위를 넓힌다.

  신조어에는 지금 사람들이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짧은 말로 뜻을 나누고, 익숙한 단어를 달리 쓰며, 취향과 생활방식에 이름을 붙이고, 밈을 변형하는 과정이 그 예다. 빠르게 사라지는 말도 우리가 무엇에 웃고 공감했는지, 어떤 삶을 지향했는지를 남긴다. 오늘 사용하는 신조어 역시 훗날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다.


박예원 기자
2023009028@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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