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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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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륜휘
입시 대신 삶을 배우는 곳, 제천 간디학교를 엿보다
제 991 호    발행일 : 2025.12.01 
지금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시절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특성화고 출신도 있겠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왔을 것이다. 최근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 학생 주도형 수업, 프로젝트형 수업처럼 새로운 학습 방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안 교육이 먼저 시도해 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대안 교육의 실험들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하루 수업으로 구현되고, 어떤 커리큘럼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고자 제천의 ‘간디학교’를 찾았다.

학교를 슬쩍 살펴보자

  충북 제천시 덕산면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간디학교에 도착한다. 간디학교는 중.고 통합 6년제 대안학교로, 한 학년이 20명 남짓한 작은 규모다. 이곳은 대안 교육을 지향하며, 졸업하더라도 학력 인정은 받지 못한다. 대신 학생들은 ‘삶과 연결된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탐구하고, 경쟁보다는 공동체를 배우며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기자를 반긴 것은 재치 넘치는 학생회장 선거 포스터였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유명 영화 대사와 함께 후보들의 얼굴을 조선시대 왕의 초상에 합성해 만든 포스터였다. 교내 카페로 들어가니, 직접 그린 그림과 손 글씨로 만든 대자보가 눈길을 끈다. 잠깐 걸었던 복도에서도, 학생들이 재생지에 직접 작성한 크고 작은 대자보가 빼곡하다. 주제도 ▲패스트패션 문제 ▲디지털 성적 괴롭힘 ▲라면이 몸에 해로운 이유 ▲무오사화 ▲잃어버린 USB를 찾기 등 아주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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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업 따라가기

  매주 월요일 아침은 ‘주를 여는 시간’으로,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학생 생일 같은 기념일, 주간 날씨, 학사일정 등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황선호 교장 선생님은 “한 주의 시작과 끝을 공동체가 함께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월요일은 주를 여는 시간, 금요일은 가족회의를 진행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시간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손을 들어 개인 발표를 하기도 한다.
  간디학교는 학년별 필수 수업과 선택 수업을 듣는다. 2025학년도부터 전면 시행 중인 고교학점제와 비슷한 구조지만, 국.영.수 중심의 문제 풀이 수업은 없다. 영어를 가르치는 양정호 선생님은 “제가 개설하는 영어 수업은 문제 풀기가 아니라 글을 읽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요. 시험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일상적인 수업 자체가 수행평가라고 보면 돼요”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4학년 필수 수업인 ‘젠더와 사회’를 참관했다. 선생님들이 먼저 <젠더와 사회> 책을 읽고 발제한 내용을 기반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사회에서 많이 화제가 되는 성소수자, 재생산권, 낙태, 군대 등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날은 방송인 사유리 씨 사례를 바탕으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삼았다. Google에 ‘가족’을 검색한 뒤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수업은 시작됐다. 20여 분간 설명이 이어졌고, 남은 시간 학생들은 글쓰기 과제를 하면서 교사와 질의응답을 나눴다.
  수업 중 홍주아(4학년·17) 학생의 발언이 인상 깊었는데, 그는 “저희도 비주류의 특징을 갖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교육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대안학교에 있고, 학력 인정이 안 되니 따로 학력을 취득해야 해요. 그래서 제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주류에 속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비주류의 감정에 공감이 돼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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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학년 '젠더와 사회' 수업 현장.

  수업 후 학교를 둘러보다가 2층 복도에서 학생들이 꾸며 둔 반 이름 종이를 발견했다. ‘슬리데린’, ‘양지바른’ 등의 반 이름은 담임 선생님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정슬아 선생님 반은 ‘슬리데린’, 양진영 선생님 반은 ‘양지바른’과 같은 식이다.
  간디학교는 1~4학년 통합반을 운영하는데, 양정호 선생님은 “고학년이 저학년과 수준 차이를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사회에 관한 관심의 차이죠. 고학년은 그동안 수업을 하며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져서 저학년과 수준 차이를 느껴요. 또 6년 동안 같은 반을 하게 되면, 학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이 바뀌면서 공동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배워요”라고 말했다.
  1층 교내 카페에서는 이예은(6학년·19) 학생이 1학년 학생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1학년 학생은 금세 완성된 초상화를 보곤 “진짜 똑같아요”라며 기자에게 자랑하듯 보여줬다. 이예은 학생은 “졸업 전에 전교생 얼굴을 그리려고요. 학교를 나가기 전에, 모두와 눈 맞추며 대화하고 싶어요”라며 지금까지 그린 초상화를 보여줬다.
  이 외에도 바느질 방에서 조용히 에세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황시우(6학년·19) 학생, 일렉 기타에 반해 밴드부에 들어갔다는 고영서(2학년·15) 학생, 디지털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는 김나현(1학년·14) 학생 등 모두가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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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과 대화하며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예은 학생.

간디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간디학교는 학년마다 고유의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교외 체험을 단기간 나가는 ‘무빙’, 1년간 작성하는 3학년의 자유 주제 논문, 약 14주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인턴을 경험하는 6학년의 사회체험학습 등이 그것이다. 3학년 자유 주제 논문으로 ‘팟캐스트’를 선정한 이정빈(3학년.16) 학생과 사회체험학습으로 공동체 IT분야 인턴을 한 조예준(6학년·19) 학생을 인터뷰했다.

Q. 작성하신 논문 소개와 주제 선정 이유를 듣고 싶어요.
정빈  저는 ‘고민 상담 팟캐스트 제작 및 기획’을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가장 큰 목적은 팟캐스트라는 매체의 특성과 장점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제가 기획한 고민 상담 팟캐스트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과 효과를 주는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온압착들기름’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팟캐스트를 직접 진행했어요. 어릴 때 라디오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라디오가 힘이 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제 목소리로 말하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방송’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었어요.

Q. 팟캐스트에서 ‘일기장 코너’가 특히 흥미롭던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정빈  저는 원래 일기 쓰기를 자주하고 또 굉장히 좋아해요. 다이어리 일기나 핸드폰 일기 앱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속상하거나 화날 때는 따로 일기를 써요. 이번 팟캐스트를 기획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면, 나만 이런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 일기에도 여러 경험과 고민이 담겨있으니 제 일기를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만들었어요.

Q. 혼자서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정빈  음향 장비를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어서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음향 장비를 잘 다루는 선후배들이 장비 설치를 도와줬고,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들이 해결해 주시기도 했어요. 또 저는 게스트를 초청하는 방송 형식이라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아요. 논문 통과 소식을 듣고 기숙사로 올라가면서 문득 ‘내 노력과 능력만으로 된 게 아니구나, 정말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Q. 6학년 사회체험학습을 어디로 다녀왔나요?
예준  ‘공동체 IT’라는 곳에서 인턴을 했어요. 사회에 나갔을 때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선택한 곳이었어요. 이곳에서는 IT 기기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돕고 교육해요.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여러 종류의 IT 기기도 배웠어요. 인턴을 받아주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데, 친구마다 선택이 정말 다양해요.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장으로 간 친구도 있었고,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서 초등 대안학교에서 교사 체험을 한 친구도 있었어요.

Q. 사회체험학습에서 어려웠던 점과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예준  소통이 가장 어려웠어요. 제가 평소에도 말을 돌려서 하는 편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또 공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을 예시로 설명하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강의 돕는 활동을 하다 보니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하는지가 중요했어요. 이런 경험 덕분에 앞으로 사회 구성원이 됐을 때, 인간관계나 직장 생활에서 필요한 ‘눈치’가 생겼어요.

Q. 학력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예준  저는 초등학교도 대안학교를 다녔어요. 졸업 후 공교육 학교로 진학하기 전, 방학 동안 간디학교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때 너무 좋고 행복했어요. 그래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도 여기서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물론 가끔 ‘공교육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학교에서 배운 인간관계, 가치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10~20대에 가치관이 형성되잖아요. 결국 공부를 먼저 하냐, 가치관을 먼저 세우냐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간디학교에서 만난 ‘배움’의 모습은 학생마다 달랐다. 한국 1세대 대안학교의 출발점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불행하다,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이었다. 학생을 중심에 두되 최소한의 규칙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며, 한 사람을 충분히 인정하는 교육. 시간을 학생에게 돌려주고, 그 시간을 스스로 활용하며 책임을 지는 환경. 그 속에서 배움은 자연스레 일어난다. 지금의 공교육이 고교학점제와 학생 주도 수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배움을 학생들에게 건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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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휘 기자
rhwwww@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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