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중앙도서관이 ‘성추행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등 변태적 성추행을 일삼는 범죄가 매년 수차례 발생해왔지만 범인을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학교 중앙도서관에 설치된 CCTV는 총 25대. 도서관에는 총 9개의 자료실이 있지만 그 어떤 자료실도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 자료실 내 서가(書架) 사이 폭은 약 1미터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인적이 드문 점심시간 및 저녁시간에 이곳에서 범죄가 발생한다면 피해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학교 학생 김모(10)씨는 지난 8월 9일 낮 12시경 3층 어문학자료실을 찾았다. 매번 그래왔듯 그날 역시 라디에이터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0분 쯤 지났을까. 오싹한 느낌에 김씨는 양손에 책을 든 채로 고개만 들어 시선을 옮겼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학교 졸업생 박모(95)씨가 김씨를 주시하며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방이 막혀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다행히(?) 앞에 있던 남성이 황급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상황은 종료됐지만 소름끼치는 공포를 느꼈던 그녀는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김씨는 ‘찝찝’한 기분은 들었지만 ‘설마 오늘도 나타나진 않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읽고 있던 책이 있었던 터라 김씨는 전날과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어떤 성인 남성이 자신에게 “시간 있냐”고 물으며 접근했다. 전날 경황이 없어서 박씨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그녀는 그가 박씨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남자친구는 얼핏 보기에도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도서관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CCTV를 확인해서 범인을 잡고자 했다. 자료실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확인했다. 그나마도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도서관 직원 4명과 김씨 일행은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던 도중 우연찮게 박씨를 발견했고 도망치던 그를 정기간행물실에서 붙잡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도서관 직원들과 학생과 직원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을 주고 받았고, 오는 직원들마다 김씨에게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지만 도서관 2층에 마련된 양성평등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며 마지막에는 항상 “그러나 선택은 너의 몫”이라고 한마디씩 덧붙였다.
 몇 시간쯤 뒤 도서관 관계자는 김씨에게 “박씨가 용서를 구하고 사죄하고 싶다고 하니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단박에 “싫다”고 대답했지만 직원이 재차 “만나보라”고 말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박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박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박씨를 뒤로하고 방을 나온 김씨는 결국 부모와 상의 끝에 ‘제 2의 피해자 방지’를 위해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가 넘어서였다. 백방으로 도와준 도서관 직원들이 고마웠지만 ‘왜 처음부터 경찰서로 가지 않고 시간을 끌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건 이후 김씨는 아직까지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도서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해 보안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CCTV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순찰횟수 확대 및 일반인 출입자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CCTV가 추가 설치되더라도 차후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수백여개나 되는 서고 사이 마다 CCTV를 설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CCTV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선 경찰에 신고 후 동행해야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내에서는 “출입통제기를 재가동해 유사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인 출입자 역시 회원증을 만들어 출입을 허락케 하는 등 근본적인 사고 예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도서관 관계자는 “전국 도서관이 (일반인에게도 이용을 허락하는) 열린 도서관으로 운영하는 추세라서 출입통제기를 다시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장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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