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일본 혹은 왜(倭)는 언제나 적(敵)이기만 했을까?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이 부여에서 백제 역사속의 양국관계를 살펴보았다.
 부여는 백제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사비시대의 수도이다. 때문에 국립부여박물관에는 충남 서부지역의 선사문화를 비롯해 다양한 백제의 문화유산이 보존·전시 되어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2전시실 '백제실'에 들어서면 기이한 형태의 한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칼 '칠지도'가 그것이다. 전시된 것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일본 나라현(縣)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돼 있다.
 이 칼은 양면에 새겨진 글자 내용으로 보아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에 백제 왕실에서 제작하여 왜 왕실에 준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무렵 백제는 지금의 서울에 도읍을 두고 고구려와 경쟁하면서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칠지도'를 통해 이 시기 백제가 중국 동진 및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었으며, 제철기술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칠지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일본인 대학생 마키코씨는 "단순히 일본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지 몰랐다. 두 나라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표시라고 생각한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현재 양국의 역사학자들은 '칠지도'에 새겨진 글자에 대한 해석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후손들이 서로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기 전 이 칼을 만든 우리의 선조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연꽃무늬 수막새, 벼루, 비파형 동검 등은 각각 일본의 류우카쿠지 출토 기와, 헤이조쿄 출토 벼루, 후쿠오카 요시카케다카기 고분 출토 동검 등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연꽃잎의 파도가 그치는 곳에서 푸른 연못의 물결이 이어진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이자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옛날 백제의 왕들은 궁남지에 배를 띄워 노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너른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연못의 빛깔과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은 백제인의 풍류와 멋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백제의 장인들은 후손들에게 궁남지의 푸른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를 만든 백제의 노자공이 일본에 건너가 아스카시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는 내용이 남아있는데 이는 백제의 조경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해주는 기록이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네에 몸을 싣고 궁남지를 전망해보면 누구나 그 푸름이 가슴 가득 안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도 그네가 있지만 이처럼 높은 그네는 처음이라는 엔도씨는 일행이 자리를 뜬 뒤에도 그네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삼국사기에는 ‘무왕 35년(서기 634년) 국의 남쪽에 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어 한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탄생 설화와도 관련 있다. 설화에 따르면 법왕의 시녀가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龍神)과 통하여 '서동'을 낳았다. 그 아이가 자라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했으며, 후에 그가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어 무왕이 됐다고 한다. 정원의 아름다움부터 탄생 설화와 국경을 넘는 사랑이야기까지 궁남지에는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백제 성왕은 도읍을 옮기기 위해 사비도성 안을 중앙과 동서남북의 5부로 가르고 그 안에 거주지를 조성했다.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부소산성, 남쪽에는 궁남지가 위치해 있는데, 이러한 입지는 정림사지가 사비도성을 조성할 때 일정한 계획 하에 지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정림사지 석탑의 1층 탑신 표면에는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기념하는 내용이 새겨져있는데, 이것은 정림사지가 백제의 명운과 직결된 상징적인 공간으로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수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절이었던 만큼 정림사지는 건축학적, 예술적 완성도 또한 높다. 백제의 전형적인 1탑1금당 형식의 가람배치 구조는 고대 일본 사찰 건축의 모태가 됐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최고(最古) 사찰인 사천왕사(시텐노지. 四天王寺)의 가람배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호류지, 센코지 등 많은 일본의 유명한 사찰들이 정림사를 비롯한 백제의 사찰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정림사지 박물관을 관람한 후 절터로 나오면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석탑이 보인다. 백제의 장인들은 목탑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만들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한계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탑을 완성한 것이다. 엔도씨는 "탑의 웅장함과 더불어 안정되고 섬세한 균형미가 놀랍다"며 백제 예술의 수준에 감탄을 표했다. 또한 일본의 사찰과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하며 "과거 선조들이 예술적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니 한국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에 한자를 전파하고 각 분야의 장인을 보내 기술과 문화를 전파했다. 그 흔적들은 칠지도와 궁남지 그리고 정림사지 등에 남아있다. 이 역사적 사료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려줬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 속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큰 상처를 남긴 나라로 강조돼 왔다. 하지만 역사이래로 양국은 지리적 근접성을 토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생들은 함께 부여에 찾아가 다양한 문화재를 직접 봄으로써 열린 사고방식으로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받아들이는 작은 계기로 삼았다.

홍선녀 수습기자
angelhong@cbun.ac.kr
 
각주-탑, 금당(金堂), 강당(講堂) 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를 일컫는 말로써 종파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