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집, 매섭다, 매몰차다, 바람맞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 말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매’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전시 무형문화재 8호 박용순(54) 응사(鷹師).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고려응방(高麗鷹坊)’의 안내판이 자연과 꼭 닮아있다. 응방은 사냥용 매를 조련하고 관리해 매사냥을 관장하는 곳이다. 번듯한 건물이나 고층 빌딩이 아닌 평범한 가정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미새와 아기새 사진이에요. 어미가 새끼 돌보듯이 정성스레 매들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붙여놓은 겁니다.”
야생의 맹금류들은 길짐승이나 날짐승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매사냥에 이용되는 것이 이 같은 야생의 습성이다. 사람들은 맹금류 중 하나인 매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했던 것이다. 야생성이 남아있는 사나운 맹금류를 길들이려면 오랜 시간 새를 팔 위에 얹어 놓거나 한 방에서 지내며 사람에게 적응시켜야 한다.
“새 종류라면 다 좋아해요. 맹금류의 경우는 자존심도 세고 집중력도 높은 점이 매력이죠. 친화력도 있지만 섬세하고 예민해서 조심히 다뤄야 하기도 하고요. 야생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그냥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요. 일반인들은 10년이 지나도 길들이기 힘들지 몰라요. 그만큼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죠.”
지난 해 11월 16일. 유네스코(Unesco)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서양 11개국의 매사냥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동시 지정했다. 매사냥은 흔히 중앙 아시아에서 비롯됐다고 일반적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등재는 우리나라의 매사냥이 전통적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인증해 준 것이다.
어린 시절 호기심에 새를 주워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처럼 응사가 되었다는 그.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도 매를 혼자 둘 수 없어 줄곧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직장 안에서도 매와 함께 있으니 사장은 싫어하고 그렇다고 매를 떼어놓을 순 없고. 매를 돌보고 훈련시키려면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시간이 허락하지 않거든요.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했죠.”
그가 선택한 것은 당연히 매. 그러나 한 가족의 가장인 그였기에 자신만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결국 매를 위한 공간은 가족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당연히 삶은 좀 고달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돈이니까요. 저 때문에 가족들이 희생한다는 생각도 들고. 꽤나 높은 연봉을 받던 직장까지 관두니 부모님께서도 반대가 심하셨어요. 콘크리트 박스 같은 사무실에서 올가미 같은 넥타이를 매는 일이 안정적일지는 몰라도 매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못했죠.”
매는 현재 천연기념물인 관계로 연구 목적 이외에는 사육이 불가능하다. 그가 무형 문화재가 된 까닭 또한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뿐, 그의 수제자들은 허가를 받지 못해 아직도 매를 직접 만지지 못한다.
“문화재라는건 참 이율배반적입니다. 전통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 문화재인데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요.”
작년 유네스코에 매사냥이 등재된 이후에도 변한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잠시 시끌벅적했던 것은 언론들뿐이었다. 여전히 지원도 관심도 부족한 상황. 매가 나는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매사냥의 현실은 마냥 푸르지 않다.
“농경 이전부터 수렵과 투쟁 및 사냥은 인간의 본능이었어요. 본능은 늘 우리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발전해 총과 무기가 되고 운동이 된 것이죠. 이렇게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맥은 끊겼다고 봐야겠죠. 문화는 연속적이어야 하거든요.”
응사라는 이름으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어렵고 불편했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를 얘기한다.
“제가 좋아하는 말들이 몇 가지 있어요. ‘사람이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지 호흡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가 선택한 일인 만큼 열심히 움직이고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주려 애쓸 겁니다. 호흡은 생물학적 연장에 그쳐 버릴 뿐이에요. 분명히 끊기면 안되는 우리의 전통 문화이고 그저 생각이나 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생업이 목적이었던 선사시대의 매사냥은 삼국시대에 여가로 발전했다. 매사냥은 계속해서 사랑을 받았고 귀족층 최고의 스포츠인 동시에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외세의 침입은 궁중의 전통을 사라지게 했고 후에 매사냥은 일반 백성들의 즐길 거리로 변화했다. 조선말까지도 매사냥은 흔히 이뤄지곤 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문화 역시 서서히 변해가게 됐다. 6.25 사태 이후 신정부가 들어서며 사회는 급변했고, 산업화와 공기총의 대량 보급으로 매사냥은 그 명맥을 잇기가 차차 힘들어졌다. 실제로 매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꿩을 몰아주는 몰이꾼(털이꾼), 매를 다루는 봉받이, 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봐주는 배꾼과 같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하지만 박용순 응사는 매 한 마리만을 데리고 길을 나설 뿐이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렵기술 중 하나인 매사냥. 왕부터 백성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것은 기록만 무성하게 남은 고문서가 되어버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선조들의 기개와 풍류로써 즐겨져 왔던 옛날 얘기들뿐인 것일까? 당당하게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그 뒤, 오늘날 전문적으로 매를 다루고 조련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두 명뿐이다.
박혜인 기자 pie00k@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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