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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인
젊음이 만들어 낸 페이지, 오늘도 마감중입니다!
제 840 호    발행일 : 2011.11.11 

디자인을 찾아 나선 유목민들의 이야기

그는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학도였다. 때는 2009년, 그는 논문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위해 무작정 맨몸으로 밖을 나섰다. 하지만 한낱 학생인 그가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전박대를 당한 그는 곧 생각한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된 기자였더라도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대했을까?’

2011년 10월 초, 대학생 디자인 잡지 <디노마드(D.NOMADE) Vol.6>가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의 <디노마드>가 완성되기까지 걸린 약 2년의 시간은 디렉터 이대우(명지대·03)씨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논문을 준비하며 직접 돌아다녔던 그 날 저녁이 시작이었다. 집에 돌아온 이대우 씨는 그의 전공을 살려 건축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건축이라는 분야는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건축을 포함하면서도 또 다른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분야, 그래서 그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우선 온라인에 ‘아트진(artzine)’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그러나 가입자는 1명, 게시물은 0건. 홍보가 절실해진 그는 커뮤니티의 주소를 대학생들이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만드는 디자인 잡지에 대한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살고 있는 학생들도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경제적인 부분과 구체적인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에 대해 많이 걱정했었다. 그들은 정말로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마음으로 서울에 모인 학생들이 60명이었다. 모두가 제작진인 상황에서 진행된 첫 회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체계가 정리됐고 잡지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계속됐다. 그들의 땀방울은 2010년 3월에 이르러 <디노마드 Vol.0>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이 때 당시만 해도 <디노마드>는 20쪽 남짓한 웹진이었다.

이대우 씨는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얘기했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려면 더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했어요. 그러려면 웹진을 잡지의 형태로 만들어야했죠. 처음으로 만들었던 <디노마드 Vol.1>은 출판 과정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권당 1만 5000원에다가 소규모로 발행했었어요.”

몇 번의, 또 여러 가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디노마드>는 점차 발전해왔다. 지금은 후원을 해주는 곳도 생겼고 정기구독자도 200명이 넘는다. 한 달 전에는 부산지부가 생겨나 또 다른 형태와 내용의 리플렛 매거진(leaflet magazine)을 제작하고 있다. 웹진에서 계간지로, 계간지에서 격월 제작으로 발전한 <디노마드>는 내년부터 잡지를 매월 발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더불어, 한 때 <디노마드>의 편집장이었던 이대우 씨는 이제 ‘디노마드 네트워크’의 디렉터가 됐다. “잡지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아요. 지금은 <디노마드>라는 이름 안에 잡지, 강연, 전시, 공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컨텐츠를 운영하고 있죠. 아무래도 맨 처음 시작했던 잡지라는 매체가 확실히 다리가 됐던 것 같아요. 대학생들을 묶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생긴 셈이었으니까요.” 이 디렉터는 더불어 이와 같은 활동들로 얻는 수입의 일부를 디자인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디렉터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디노마드>가 가져다주는 수익이 아니다. “대학생들을 위한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이 디렉터는 <디노마드>가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디자인 교류의 장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나아가서는 웹진 형태를 활용해 외국에서도 <디노마드>를 읽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디노마드>란 디자인(design)과 노마드(nomade)의 합성어로, 디자인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정착되지 않은 대학생들, 어쩌면 사람들의 눈엔 그저 유목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방황 아닌 방황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광고와 마케팅, ‘콤마에 귀 기울이자’

조금 쌀쌀한 주말 저녁, 충무로역 인근 카페에서 대학생 광고·마케팅 잡지<콤마(comma)>의 편집장 박송미(서울여대·09)씨를 만났다. 당차면서도 밝은 미소가 <콤마>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작년 7월부터 <콤마>를 만들 준비를 했어요. 9월부터 온라인에서 기사를 배포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인터넷으로만 발행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독자들이 늘어나기 힘들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미흡해지더라고요.” 그 결과 올해 1월부터는 잡지 형태의 <콤마>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창간 예비호였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도 잠시, 박 편집장을 비롯한 동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재질, 디자인, 인쇄와 같은 여러 부분들이 공들인 노력에 비해 흡족하지 않게 나왔던 것이다. 그림이나 글씨가 깨진 부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콤마>의 커뮤니티 클럽에 기사를 게재했었어요. 잡지를 발행하는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고요. 온라인도 좋지만 직접 만질 수 있는 잡지를 만드는 일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콤마’가 다룰 수 있는 범위도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실수와 실망을 딛고 지난 10월, 계간지 <콤마>는 가을 호를 발행할 수 있었다.

평소 광고와 마케팅 쪽에 관심이 많던 박 편집장은 대학생들이 이러한 분야에 대해 실질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미 관련된 기존 매체들은 많았지만 정말로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관심 있는 학생들의 모임이라 할지라도 그 수는 제한적이고, 비전공 학생들은 쉽게 다가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박 편집장은 직접 그러한 매체를 만들어냈다. <콤마>는 ‘오라’는 뜻의 영어 단어 'come'과 마케팅(marketing), 광고(advertise)를 조합해서 만든 말이다. <콤마>가 마케팅과 광고를 다룬다는 뜻과 더불어 대학생들이 다가오길 바란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콤마>는 수도권 지역의 카페에 비치하거나 커뮤니티 클럽을 통해 신청자에게 배송하는 무가지다. 잡지에 실리는 광고를 통한 수익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에디터들이 작은 돈을 매달 모아 인쇄료를 충당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콤마>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 하나 불만이 없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우선임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이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독자의 입장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해보면서 <콤마>의 범위가 넓어졌으면 해요”라며 박 편집장은 자신과 <콤마>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콤마>에서는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일반 학생들의 신청을 받고, 그 학생들과 함께 인터뷰에 동행하는 등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잡지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콤마>는 공익광고제 세미나, ‘NHN 서치 마케팅’과 함께한 강연회 등 활동의 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점점 더 발전해야겠죠. 나중에 <콤마>의 영역이 더 커지면 해외로도 진출했으면 싶고요. 우선은 대학생들이 <콤마>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직접 체험해보면서 많은 도움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대학생의 시선이 듬뿍 담겨있으면서 재미도 있는 잡지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창간 예비호 50부로 기초를 다지고 300부의 창간호로 출발한 <콤마>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가지인 탓에 수익은 적은데 그것을 기준으로 낮은 품질의 잡지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잡지의 질마저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 여름 호에서는 재정 곤란으로 발행면수가 줄어드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허리띠를 졸라매며 만든 여름 호를 받아든 에디터들의 결론은 한 가지, ‘돈을 더 들이더라도 제대로 된 잡지를 만들어보자’였다. 이들에게는 모든 인원이 모일 수 있는 마땅한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박 편집장의 표정에는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늘 나쁜 것은 아니예요. 더 나아가려는 시도니까 충분히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에게도 마침표라는 것이 존재할까? 오히려 마침표조차 쉼표로 바꾸어버릴 것만 같은 젊음, <콤마>는 오늘도 마감 중이다.

박혜인 기자 pie00k@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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