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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인
눈앞을 넘어선 세상을 마주하다
제 841 호    발행일 : 2011.11.25 
영화 속에 숨어있는 망막 잔상의 원리
찰나의 순간이 만드는 잠재의식, 서브리미널 효과

<조트로프>                                  <페나키스터코프>

 

지금 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사는 현실을 부정해버리는 방식이다. 또 다른 세상으로의 상상은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손이 만지는 것과 내 눈이 바라보는 것이 정말 실재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논쟁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어 왔다.

우선 우리 눈을 생물학적으로 살펴보면 안구 벽의 가장 안쪽에 망막을 발견할 수 있다. 망막은 빛에 의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시세포들이 위치한 얇고 투명한 막이다. 그런데 이 망막은 잔상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우리의 눈은 사물을 볼 때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응한다. 먼저 빛이 망막에 들어오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후에도 이미지는 잠시 동안 망막에 남아있게 된다. 그 시간은 약 1/8초. 결국 망막이 느낀 자극은 계속 남아있어서 그 형상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형상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상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물은 낱장의 그림을 한 프레임씩 촬영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이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앞의 설명에 따르자면 1초에 약 24개의 그림들이 움직일 때의 시각적 오차는 이어지는 그림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 따라서 1초 동안 영사되는 24개의 그림들이 단계적으로 잔상을 남기고 우리는 그 그림들을 보며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다. 잔상 효과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사진기와 같은 도구의 발달과 더불어 오늘날의 영화를 가능케 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공책의 여백마다 연결되는 그림을 끊어서 그려본 적이 있는가? 그림이 그려진 첫 장부터 페이지를 넘겨보면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망막 잔상의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현재 비슷한 형식의 도구들이 영화의 제작 원리 이해에 많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들이 ‘쏘마트로프(Thaumatrope)’, ‘페나키스티스코프(Phenakistiscope)’, ‘조트로프(Zoetrope)’다. ‘쏘마트로프’는 종이 원판 양면에 그림을 그리고 반대되는 양쪽에 실을 매달아 만들 수 있다. 실을 잡아당기면 원판이 회전하면서 양면의 그림이 합쳐져 새로운 제3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페나키스티스코프’도 한 개의 원판이 사용된다. 같은 내용이지만 단계적으로 다른 그림을 그려 넣고 회전시키면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트로프’는 원통형의 도구다. 종이 띠에 연속된 동작의 그림을 그린 원통을 회전시키고 그것을 구멍을 통해 들여다본다. 마찬가지로 동작이 연결되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들은 모두 잔상 효과에 기초한 초기의 영상 재현 장치들이다. 이름은 생소할 수 있으나 어릴 적 노트 구석에 그림을 그리며 페이지를 넘겨봤던 장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10월 말에 열렸던 <춘천애니메이션포럼>에서는 참가자들이 ‘페나키스토스코프’와 ‘조트로프’를 직접 제작해보면서 애니메이션의 제작 원리를 체험해볼 수 있게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박물관에서도 지속적으로 <영화야, 놀자!>라는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여기서도 ‘페나키스토스코프’가 사용되며 ‘조트로프’를 직접 만들어보는 코너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화의 제작 원리를 알려주고 있다. <영화야, 놀자!>프로그램의 담당자는 “대상 연령이 유아, 청소년이라 깊이 있는 내용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통해 간단히 망막 잔상의 원리를 설명해주는데 다들 흥미 있어 한다. 일반적인 박물관보다 더 재미있어 하고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간단하면서 익숙한 도구를 통해 과학 원리와 영상 제작 원리를 알 수 있는 까닭에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학교나 학생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강한 불빛이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등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른 곳을 바라봤을 때 계속해서 불빛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같은 망막 잔상의 원리는 우리를 착시 현상에 빠지게도 만든다. 이미 인터넷이나 도서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착시 효과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잔상은 부의 잔상(어떠한 자극을 제거한 후에 자극의 반대가 되는 것이 남아서 보이는 현상)과 정의 잔상(자극으로 생긴 상의 밝기와 색이 똑같은 느낌으로 계속해서 보이는 현상)으로 나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착시 효과 이미지들 또한 보색(색 상환에서 서로 대응하는 위치에 있는 색), 색순응(조명이나 색을 오래 쳐다보면 그것에 익숙해져 지각이 약해지는 현상)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이 모든 정보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식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임스 비커리(James Vickery)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그는 실험자들에게 영화 한 편을 관람하게 했다. 그리고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순간노출기를 사용해 1/3000초 길이의 메시지를 총 5초간 투영했다. 그가 화면에 비춘 메시지는 ‘콜라를 마셔라.’, ‘팝콘을 먹어라.’는 내용이었다. 실험을 종료한 후 통계를 내보자 놀랍게도 콜라는 18.1%, 팝콘은 57.5%의 소비가 늘어나 있었다. 실험의 결과가 알려지면서 서브리미널(Subliminal)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실험의 조작 여부가 의심되면서 그 진실은 아직까지도 많은 의문에 쌓여있다. 하지만 이 실험이 서브리미널 효과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로 남아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서브리미널이란 서브(Sub)와 리멘(Limen)의 합성어로 ‘식역하(識閾下)’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리멘, 즉 식역이란 의식과 잠재의식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밤에 잠잘 때 언제 잠들었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모호한 경계선이 식역이다. 이에 사람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특정화면이나 특정소리를 반복해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한 음악이나 광고들이 등장하게 됐다.

음반사 ‘스톰프뮤직(Stomp Music)’에서는 ‘뮤직 2 라이프’라는 기능성 음반 전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스톰프뮤직’에 따르면 서브리미널 음반은 서브리미널 프로그래밍이라는 특수 기법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사람의 청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빠른 속도, 그리고 작은 음을 노출하여 듣는 사람의 잠재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이로 인해 행동이나 사고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이에 ‘스톰프뮤직’은 자회사의 레이블 ‘뮤직메디신’을 통해 국내 최초로 서브리미널 음반을 소개한 바 있다. 담당자는 이에 대해 “일본 BANDAI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00년도부터 <Subliminal Effect Series>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매했다”고 답변하며 <Subliminal Effect Series>’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서브리미널 음반 시리즈임을 강조했다. 서브리미널 효과에 대한 검증을 위해 ‘스톰프뮤직’에서는 ‘뮤직 2 라이프’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들을 기재해 놓았다. 특히 이들의 <Subliminal Effect Series>는 6년 정도의 제작 기간과 2년 동안의 임상 실험을 거쳤다고 한다. 서브리미널 음악에는 특정 메시지가 50분 동안 3천 6백만 회에 걸쳐 반복된다. 사람이 듣기 어려운 음량, 주파수, 속도로 삽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듣는 이들이 보다 빠른 시간 내에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뮤직 2 라이프’에서는 숙면,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 등 현대인의 웰빙 생활에 발맞춘 여러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서브리미널 효과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리학과 정우현 교수는 “서브리미널 효과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공식적 결론이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상에서 접하는 형광등은 사실 항상 깜빡이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의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는 기계처럼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역치 이하의 자극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전혀 못 본다고 할 수도 없고, 역치 이상의 자극을 모두 다 받아들인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은 확률적인 얘기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A영상이 1초에 50개의 장면을 연속해서 내보내는데 이 중 한 장면에만 콜라의 이미지를 삽입했다. A영상을 본 사람이 콜라를 사서 마셨을 때, 그 원인을 완전히 서브리미널 효과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것이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다. 정 교수는 덧붙여 “이처럼 서브리미널 효과가 사람의 암묵기억(특정 사건의 기억에 대한 개인의 의식은 없으나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브리미널 효과를 이용한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서브리미널 효과의 실제성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충분히 비윤리적이며 공공성에 반하거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의 눈과 귀는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무심코 감각기관에만 모든 것을 의존해왔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인식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일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박혜인 기자 pie00k@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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