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소나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옛 영화들이다. 그 시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배우의 사진을 방에 걸어두거나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더 값싼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듯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그때 그 시절의 영화들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없을까? ‘어르신 전용 극장’에서라면 가능하다.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있는 서울의 낙원상가. 그러나 건물 4층에서는 또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는 그곳은 바로 어르신 전용 극장의 시발점이 된 ‘실버영화관’이다. 2008년 4월부터 운영한 이 영화관의 관람객은 55세 이상의 어르신들인데, 평일에는 500여 명, 주말에는 무려 700~1,0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실버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주 대표는 “갈 곳 없이 떠도는 종로의 어르신들을 보며 항상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르신 전용 극장’이었다. 요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최신 영화는 전개가 빠르고 내용보다 시각적인 효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영화관에 발길을 끊은 어르신들을 위해 눈높이에 맞는 영화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운영 계기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 영화관이 어르신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곳에서는 어르신들이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영화를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추억에 젖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지난 영화기 때문에 필름을 구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영화 관람료를 높게 책정하지 않았다. 단돈 2천 원에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고, 일주일 단위로 상영되는 영화가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일까. 영화관을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 향수,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모두 뒤섞여 있는 듯했다.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는 남금희(75) 씨는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니 옛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또 관람객끼리 연령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생겨 새로운 인연을 쌓기도 한다”며 이 영화관을 ‘노인의 낙원’이라고 표현했다. 또 박동훈(79) 씨는 “젊을 때는 많은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는데 오히려 지금 이렇게 좋은 곳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 기쁘다”며 “갈 데가 마땅치 않은 우리 노인들에게 이런 공간이 있어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그래서 이곳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내게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뿌듯함과 자긍심을 느낀다. 사회와 세대차의 갈등으로 상처받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단순히 영화만 제공하지 않는다. 월요일마다 통기타 팀이 공연하는 ‘월요시네마 콘서트’가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어버이날에는 곧 개봉하는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의 시사회도 열렸다. 어르신 전용 극장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실버영화관’에서는 앞으로도 어르신들과 관련된 영화가 있다면 시사회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또 바리스타를 어르신으로 구성하고 관람객들에게 저렴하게 커피를 판매하는 다방사업도 시작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더욱 더 노력해 어르신들의 생활과 여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실버영화관’의 성공적인 사례를 벤치마킹해 2010년 10월, 구 화양극장에 ‘청춘극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호텔 건립으로 인해 올해 1월, 연신내로 위치를 옮겼다. ‘청춘극장’ 설립에 관해 서울시청 문화정책과 직원 장선덕 씨는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수가 늘어났지만 그들의 공간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마음편히 있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계기를 밝혔다.
‘청춘극장’ 역시 2천 원의 관람료로 옛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 하루에 외화 1편과 국내 영화 1편을 각각 상영하며 5일 간격으로 영화가 바뀐다. 그리고 매주 노래 교실, 역사 강좌, 마술 강좌, 라인 댄스 등의 프로그램과 건강 상담을 요일별로 진행한다. 또 토요일 및 공휴일에는 문화공연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뿐 아니라 극장 내에 음악 부스를 설치해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하며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영화를 보신 어르신들에게 상품을 증정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업무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 박연순 씨는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영화뿐 아니라 문화생활도 함께 누려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곳도 하루 평균 관람객이 400명을 웃돌며 그 인기가 뜨겁다. 친구와 함께 영화 <하이눈>을 관람한 이현숙(69) 씨는 “옛 영화를 지금 이렇게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에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은 차이가 있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친구인 홍정강(69) 씨는 “지금 영화를 보니 예전에 공감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게 돼 내용이 더 재밌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또 오고 싶다”고 밝혔다. 다른 관람객인 문복자(74) 씨는 “기발한 발상이다.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 떠올릴 수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고 전했다.
이 두 곳의 영화관은, 55세 이상의 어르신 분들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55세 이상의 어르신을 한 분 이상 동반한다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젊은 세대들의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어르신 전용 극장의 인기와 더불어 다른 곳에서도 속속 이런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 양천구는 올 2월부터 양천·신목·한빛·목동·신정 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영화를 월 1회 이상 상영한다. 송파구에서는 작년 3월 ‘청춘극장’을 개관했는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같은 해 12월, 거여, 마천, 오금동 지역 어르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감안해 송파체육문화회관에 100석 규모의 제2관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과천시는 문원도서관을 방문하는 시민들 중 어르신들에게 ‘청춘극장’을 운영한다. 안동의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올 3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옛 영화를 상영하고 김해도서관에서는 ‘어르신을 위한 청춘극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올해 4월부터 두 달에 한 번씩 국내 영화를 위주로 상영을 진행한다. 광주시 역시 지역 어르신들에게 문화향유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청춘극장’ 시범 운영에 발벗고 나섰다. 충북지역에서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실버영화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따뜻한 햇살과 함께 맞은 가정의 달, 5월. 비록 어버이날은 지났지만 아버지, 어머니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을 잡고 옛 시절을 함께 공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멀어진 세대차를 한 뼘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함께 과거를 추억해 보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그들의 추억과 낭만은 스크린 속에서 빛나고 있다.
박지수 기자 jisu2870@cbnu.ac.kr








박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