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선선해진 가을 날씨가 성큼 다가왔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에는 산의 정취를 느끼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나즈막하게 자리잡은 고궁에서는 선조의 운치있는 삶을 엿볼 수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고궁으로 지금 떠나보자.
경복궁은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조선 왕조의 정궁이다. 이 궁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 궁궐 중 첫 번째로 지어진 궁이다. 그리고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공간이 조성돼있다. 조선 왕조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됐다. 그래서 현재 궁의 모습은 정전이나 누각 등의 주요 건물과 처음 지어졌던 궁궐터를 바탕으로 흥성대원군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조선의 중심에 위치했던 경복궁은 그만큼 많은 조선의 역사를 품고 있는데, 이러한 경복궁 곳곳에 숨겨진 역사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자.
■ 건청궁(乾淸宮)
이곳은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비극적 사건인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다. 1895년 10월 8일, 향원정 북쪽에 위치해 있는 왕비의 처소인 건청궁 곤녕합에서 일본인들에게 명성황후가 시해됐다. 명성황후는 조선을 지배하려는 일본에 맞서 친러정책을 펼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명성황후가 숨을 거두자, 건청궁 동쪽에 있던 언덕에서 시체를 태우고 재는 향원정 연못에 버리고 타다 남은 시신은 녹산에 묻었다고 한다.
■ 수정전(修政殿)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글자를 사용하도록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훈민정음’은 집현전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을 발명한 장소인 집현전은 바로 경복궁 수정전에 위치해있다. 궁궐 안에 세운 관청인 궐내각사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 자경전(慈慶殿)
이곳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해 흥선대원군이 만든 곳으로, 경복궁의 침전이며 대왕대비가 거처하였던 대비전이다. 또한 현재 경복궁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연침건물이다. 연침건물이란 임금이 평상시에 한가롭게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자경전’이라는 명칭은 1777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덕궁에 자경당을 지은 데서 유래됐다. ‘자경’은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 십장생 무늬 굴뚝
이 굴뚝은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긴 십장생이 굴뚝에 새겨져 있어서 ‘십장생 무늬 굴뚝’이라고 부른다. 십장생 조각 위 아래로는 불가사리와 학이 묘사돼 있고, 굴뚝 옆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박쥐와 당초(식물)도 새겨져 있다. 십장생 무늬 굴뚝은 자경전 뒤편 담장에 있다.
■ 아미산(峨嵋山) 굴뚝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다. 여기서 아미산은 왕비의 후원을 말한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각각 저만의 아름다운 문양들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문양들은 모두 왕비의 안녕과 장수 그리고 건강의 왕자의 잉태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굴뚝은 단순히 굴뚝의 역할을 넘어서 왕실을 위한 기원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모두 갖추고 있다.
■ 장고(醬庫)
이곳은 함화당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궁중 연회와 제례에 쓰이는 간장, 된장 등의 장류를 보관하던 곳이다. 2001년 발굴조사를 거쳐 2005년 복원된 장고는 옹기를 사용했던 지역과 용도별로 구분해 지난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올해는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이럼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인 경복궁은 볼거리가 많은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2만 명 내외의 사람들이 방문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재청 경복궁 관리소 장재혁 주무관은 “경복궁은 조선시대 공식적인 궁궐로, 국가적인 행사를 하던 법궁이라는 점이 다른 궁들과는 다른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며 “경복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의 대부분이 훼손됐지만 복원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관람을 하며 유심히 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경복궁을 직접 찾은 이도연(대전 서구·20) 씨는 “궁이 다른 궁보다 넓어 볼거리가 많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궁에 대한 정보가 없이 궁을 관람하는 바람에 겉모습밖에 보지 못해 아쉬웠다”며 “다시 한 번 경복궁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면 문화재 안내해설사의 동행 하에 관람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렇듯 우리의 옛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고궁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돼 해외뿐만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고궁의 이해와 관심이 더욱 증가하길 기대해본다.
홍지희 기자 ㅣ hjh38124@cbnu.ac.kr








홍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