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었으며 조선시대의 정궁이 아닌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순종이 즉위하고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명칭을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다. 또한 1897년 대한제국이 설립되고 고종이 황제즉위식을 행한 후 정궁이 됐다. 아기자기한 돌이 쌓여 만들어진 돌담길처럼 묵묵히 역사를 쌓아온 덕수궁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 석어당(昔御堂)
고종황제가 직접 쓴 현판이 걸린 석어당은 ‘옛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석어당은 임진왜란 중 경복궁이 불타버려 지낼 곳이 없게 된 선조가 죽을 때까지 지낸 임시 거처였다. 따라서 후대의 임금들은 국란으로 고생한 선조를 이곳에서 추모했다. 또한 석어당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감금했던 곳으로, 인조반정 때는 인목대비가 광해군의 죄를 묻는 자리가 되었다.
한편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중층 건물로 다른 덕수궁의 건물과는 달리 색을 칠하지 않아 소박한 민간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정관헌(靜觀軒)

정관헌은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로 고종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건물을 짓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나타내지만 나무로 만든 기둥과 한국 전통문양(소나무, 사슴, 박쥐, 덩굴) 등을 활용해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때 태조, 고종, 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했으며 고종이 외교 사절단과 연회를 즐기거나 커피를 마시는 등 휴식을 취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광명문(光明門)

광명문은 덕수궁 침전이었던 함녕전의 정문으로 1919년 고종의 운구행렬이 지났던 문이다. 그러나 1938년 덕수궁 중앙공원화사업 중 석조전 서관을 미술관으로 개방할 당시, 흥천사 종과 자격루 등을 전시하기 위해 현 위치(석조전 맞은편)로 옮겨졌다.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광명문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를 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현재 광명문에는 신기전기화차, 흥천사 종, 자격루가 전시돼 있다.
매년 약 100만 명이 관람하는 덕수궁. 관광객들은 궁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아이들과 함께 덕수궁을 관람하러 온 이지희(경북 김천시 아포읍·40) 씨는 “대부분 궁의 앞쪽만 많이 관람하고 가는데, 사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덕수궁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며 “특히 대한제국의 중심에 있던 궁궐이라 그런지 전통과 서양의 미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궁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덕수궁 관리소 이상희 안내실장은 “근대화라고 하면 서양 문물의 수용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시기에 맞춰 궁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석조전, 정관헌 같은 서양식 건물들이 동양적인 건물들과 공본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궁궐들과의 차이점이다”며 “고종황제가 우리나라 근대화를 위해 했던 여러 가지 노력들을 생각하며 덕수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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