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일상복이었던 한복.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복은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됐고 심지어 그때마저도 잘 입지 않게 됐다. 우리의 옷이지만 한복은 불편한 옷, 입기에 어려운 옷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렇게 사람들과 멀어져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20세기 초 무렵부터 점차 일상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한복이 21세기에 일상복으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복,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을 사로잡다
한복을 입는 젊은 층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한복을 오마주로 한 ‘2016 샤넬 크루즈 컬렉션’ 이전부터 시작된 변화였다. 언제나 앞서 유행을 제시하는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커펠트’도 우리의 옷, 한복 열풍에 있어서는 한발 늦었다.
한복 열풍이 시작된 것은 SNS에 등장한 여러 장의 한복 사진 때문이었다. 특히 한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다니던 권미루 씨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색적인 해외 풍경 가운데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 입고 여행하기’, ‘한옥에서 한복 입고 데이트하기’ 등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고 올해 초부터는 한복이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이 담긴 한복 사진은 SNS를 통해 한복 열풍을 더욱 빠르게 확산시켰고 이제 막 생겨난 신생 한복 브랜드의 제품이 매진되는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한복의 열풍은 시작됐다. 2011년 덕성여대에서는 한복의 인식 개선과 대중화를 목표로 한복문화 나눔 동아리 ‘꽃신을 신고’를 창설했다. ‘꽃신을 신고’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매년 학교축제와 함께 개최하는 한복 파티다. 다소 획일화된 대학 축제 문화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축제문화와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꽃신을 신고’ 홍보팀 이동연(덕성여대 사회학과.13) 학생은 “기성복 못지않게 예쁘고 편안한 한복을 입는 것이 더욱더 보편화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한복의 인식 개선과 대중화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학교 문화기획 동아리 ‘Meet걸음’에서는 지난 4월 1일에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한복을 대여해주는 ‘한복 입고 소풍갈래?’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를 주최한 안승준(경제학과.12) 학생은 “만우절이라는 외국의 행사를 무조건 좇아가기보단 우리의 것을 알리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며 “평소에 접하기 힘든 한복을 학생들에게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기획의도였다”고 밝혔다.
한복 개량,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한복이 지금과 같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에는 생활 한복의 힘이 크다. 그렇다면 생활 한복은 전통 한복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한복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천이 다르다. 전통 한복은 옥사 원단, 홍두깨다듬이 원단, 견방 원단 등 대부분 실크 소재의 원단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생활 한복은 면, 린넨 등 일반 기성복에서 많이 사용하는 원단으로 제작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생활 한복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긴 고름을 짧게, 풍성한 치마폭을 좀 더 짧고 좁게 만드는 등 생활 속에서 착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만든다. 또한 관리가 까다로웠던 전통 한복에 비해 보관과 세탁 모두 용이해 더욱 실용성이 높아지며 다양한 디자인을 접목시킬 수 있다는 점도 생활 한복이 지니고 있는 특색이다.
그러나 생활 한복의 다양한 시도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어느 수준까지 한복의 변형을 인정해야 하는지 모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 학교 이나은(행정학과.13) 학생은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한복을 과연 진짜 한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에서 지켜야 할 부분은 지키면서 대중화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복진흥센터 유수정 연구원은 ”한복이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보지만 생활 한복을 새롭게 만들 때에는 전통 한복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변화를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간혹 도를 넘는 변형까지 시도한 한복이 보이는데 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숙제”라고 전했다.
한복 열기가 식지 않기 위해
한복 열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9일, 홍대에서는 한복 편집샵(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한 데 모아 판매하는 곳) ‘하플리(HAPPLY)’가 주최한 생활 한복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약 3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문한 이 행사에는 ‘이제(IYJAE)’, ‘르벙(Levent)’, ‘에스키스(Esquisse)’ 등의 생활 한복 브랜드가 참여해 다양한 디자인의 생활 한복을 선보였다. 팝업스토어를 방문했던 김은정(대전 중구.32) 씨는 “평소에도 차분한 색상의 한복을 즐겨 입는데 팝업스토어가 열린다고 해서 한 번 방문해봤다”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걸 보니 한복의 인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한복을 생활 속에서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10대에서 30대가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 ‘한복놀이단’에서는 한복 패션쇼, 지하철 플래시몹, 화보 촬영, 한복문화 놀이기획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한복놀이단 권미루 단장은 “전국적으로 한복 관련 동호회가 생겨나면서 한복을 생활 속에서 입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며 “한국인 스스로가 한복을 자연스러운 의복으로 생각하고 누구나 한 벌쯤은 가져야 하는 옷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정부에서도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복진흥센터에서는 한복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일상 속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대중적 한복을 개발하는 ‘신한복 프로젝트’와 지역의 특색과 산업을 살린 ‘지역 한복 축제’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달 9일부터 11일까지는 ‘제19회 한복의 날’ 행사를 열어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그저 예뻐서, 좋아서 다시 입기 시작한 한복. 이제 한복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입어야 하던 의복에서 벗어났다. ‘자유’라는 새로움을 더한 한복이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청 기자
echung77@cbnu.ac.kr
한복을 사랑하는 그녀, 이지언
지난달 19일 홍대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한복 편집샵 ‘하플리(HAPPLY)’의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운영하는 임시 매장)가 열렸다. 한복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었던 그곳에서 누구보다 한복을 사랑하는 이지언(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10) 학생을 만났다.
그녀와 한복의 만남은 한 장의 스냅사진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전통 한복을 입은 스냅사진을 한 장 보게 됐어요. 그 사진에 반해서 저도 한번 입어봤는데 한복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런 단순한 이유로 한복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이를 평상시에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한복을 평소에 입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간편하지만 한복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있는 생활 한복을 입기 시작했어요”
한복과의 만남은 그녀가 힘들었던 시기에 크나큰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녀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복은 그녀의 내면을 변화시켰다.
“처음 사진을 접했던 2년 전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자존감도 굉장히 많이 낮아졌을 때였죠. ‘나’라는 존재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부분도 부족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복을 입으면서 제 자신이 내적으로 많이 성장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한복이 드러나지 않았던 저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저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였어요”
한복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대단했다. 그녀의 자신감을 찾아준 것은 물론 한복을 입는 것을 특이하게 보던 시선도 그녀로 인해 이제는 그녀처럼 당당하게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한복을 입고 화보촬영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길거리에서는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생활 한복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러나 생활 한복을 알릴 수 있는 마땅한 창구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직접 한복 편집샵을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평소에 그녀가 좋아하던 마케팅과 한복을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하플리는 한복의 특색을 일상 속 스타일에 적용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점점 한복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생활 한복 브랜드는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추세거든요. 팝업스토어를 연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에요. 많은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생활 한복 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한복을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한복을 불편한 전통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복이 예전보다 사람들에게 많이 가까워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복은 사람들에게 ‘전통의 옷이니 우리는 이 전통을 지켜야만 해’ 혹은 ‘한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조건 제대로 갖춰서 입어야 해’라는 인식이 강해요. 물론 그런 인식을 하는 건 당연한거죠. 하지만 그런 생각을 조금만 바꿨으면 좋겠어요. 한복을 아주 심하게 변형하지 않는 선에서 저고리랑 청바지, 혹은 저고리랑 테니스 스커트 등 남녀노소 누구나 정말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새로운 한복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정말 멋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지언 학생. 한복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피어난 그녀의 행복한 에너지가 팝업스토어가 열린 작은 카페를 가득 채웠다. 그녀의 바람처럼 한복이 우리 생활에 점점 더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최영은 기자
choyouneu@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