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좀 진부한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학문의 뿌리이자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이를 감성적으로 표현해 보면, 어머니의 품이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그 중요성이 잊혀져 있다가도 불현듯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존재가 어머니와 고향이듯,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면 너 나 할 것 없이 인문학적 소양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문학, 역사학, 철학을 핵심분과 학문으로 삼고 종교학, 미학, 고고학, 민속학 등을 포함하고 있는 인문학은 인간의 본성과 정신, 자기표현과 문화를 두루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처럼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인문학에 대해 요사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인문학의 고사(枯死) 내지는 빈사(瀕死) 현상이 벌써 여러 대학에서 비인기학과의 신입생 정원 감축 혹은 폐과 조치로 그 모습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인문학 관련 학과의 재학생들도 생존과 취업을 위해 전과(轉科)를 신중히 고려하거나 각종 고시 준비에만 열중하고 있다.
강타를 맞은 인문학계는 여러 가지 원인분석을 내놓았다. 실용성, 효용성, 유용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사회에 팽배해 있는 현상을 우선 외부적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경제성에 따른 손익계산만을 중시할 때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게 됨은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물신숭배, 배금주의적인 경향이 지배하면서 인류의 정신문화적 산물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졌고, 사람들은 자연과학이나 경제 등 실용학문을 선호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의 위세도 인문학 분야를 변두리로 밀어내고 있다. 맹목적인 진보 이데올로기에 따른 기술적 발전은 인간의 소외와 가치관의 전도라는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인간의 빛나는 정신은 점점 그 그늘 속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질 무렵에야 하늘을 난다”는 헤겔의 말처럼 인문학은 이런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문학은 일찍부터 인간의 감성과 이성의 조화, 참과 거짓의 분별, 행복한 삶을 위한 가치관 형성 등 인성과 관련한 교육을 담당해 왔고, 이를 밑바탕으로 반성과 성찰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문학은 우리의 행복한 삶에 가장 필요한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인문학 본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현대화의 과정에서 기술과 자연과학의 발전이 낳은 소외화 과정을 인문학이 다시 인간적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으므로, 현대사회가 더욱 현대화할수록 인문학이 더욱더 필수불가결하게 된다는 테제(These-정치, 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는, 인문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공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제기된 ‘도전’에 대해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인문학계의 ‘응전’ 자세는 이런 보상적 정당성만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인문학의 본질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도덕적인 기준과 반성적인 사고와 비판정신에 있다는 점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급변하는 사회발전과 기술발전, 학문분야의 지형도와 학문풍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연구방법의 확대, 교육현장에서의 교육내용과 교수법의 질적 변혁, 그리고 일반 대중과의 만남과 소통의 확장을 위해 인문학계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들은 인문학계 내부에서 나온 자기반성과 성찰의 결과로서, 인문학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앞으로 인문학자에게 요구될 다음의 몇 가지 방향과 맞물려 있다.
첫째, 학제적 연구의 활성화가 인문학에 필요하다.
그동안 인문학계는 분과 학문 분야의 전문화를 고수하는 경직성을 보여 왔다. 한 우물을 깊이 파고들면 지하수에서 만나리라는 확신을 고집해 왔지만, 학문 분야의 세분화는 오히려 깊이 있는 통합적 연구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위해서는 인문학 분야 분과 학문의 경계를 허물 필요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 분야를 넘어서서 자연과학 분야와의 협력도 과감히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학제적 연구는 서로 상이한 방법론에 근거해 이룩한 연구 성과들을 상호 보완하면서 좀더 통합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둘째, 다(多)문화시대에 다(多)언어교육이 필요하다.
인문학 분야의 기초가 되는 것은 언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정서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화하는 세계에서 문화 간 충격을 완화하고, 인류의 정신과 문화에 관한 다양한 업적을 깊이 있게 비교연구하기 위해서는 다언어 습득이 필수불가결하다. 더 나아가 자국어 및 외국어의 글쓰기 훈련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창작으로서의 글쓰기는 공학적 기술과 결합된 콘텐츠를 개발할 때 내러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수준 높은 멀티미디어 활용 능력이 필요하다.
웹2.0 시대에 인문학은 활자 텍스트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인문학의 연구가 종이와 펜만으로 이루어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핵심 표현매체인 이미지와 영상까지도 연구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동안 컴퓨터를 대하면서 수동적인 소비자의 입장에 그쳤다면, 이제는 컴퓨터가 자신의 생각을 글뿐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물로도 표현하고, 자신의 상상을 가상현실로도 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창작도구라는 인식을 지녀야만 한다. 활자 중심의 연구에서 매체 중심의 연구로의 전이를 위해 인문학 연구자도 각 개인의 컴퓨터 활용 능력을 일정 수준으로 향상시켜야만 한다. 수준 높은 멀티미디어 활용 능력을 지니게 되면 영상세대의 학생들이 쉽게 접근하고 학습할 수 있는 교육매체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비판적으로 비교 검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와의 학제적 연구에서도 상호 소통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넷째, 멀티미디어 매체를 이용한 인문학적 문화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인류 문화에서 축적된 인문학적 자료는 그야말로 방대하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이 주로 활자 텍스트 형태로 도서관에 쌓여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에서 좋은 소재를 발굴함은 물론, 이를 멀티미디어 매체와 접목시켜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는 기획에 적극 동참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일반 대중은 인문학 교수들의 '인문학의 위기' 선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반 대중으로서는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지만, 그것을 충족시켜 줄 만한 적당한 콘텐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상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교수의 위기'로 치부되고 있기도 하다. 인문학은 일부 전문가나 소수 계층만을 위한 학문연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반 대중과 직접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또한 일반 대중을 위한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개발 작업에도 인문학자들이 적극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인문학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가 필요하다.
사이버상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인문학자들은 사이버상의 정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이버에서 제공되는 정보들 중 '쓰레기'로 취급되어야 할 것들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정보화 시대에 사이버 공간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면, 인문학 관련 정보에 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축적된 인류의 문화유산들과 인문학적 연구결과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사이버상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정희(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








최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