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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과연 그는 누구인가
제 905 호    발행일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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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다. 아마도 국내외적으로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많은 행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지하듯, 셰익스피어는 영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관련 학자들은 셰익스피어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전기에 대해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썼을까?”라는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단순히 음모론일 수도 있겠지만,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쟁에서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면 프랜시스 베이컨, 크리스토퍼 말로, 셰익스피어의 후견인이었던 사우스햄튼 백작, 혹은 엘리자베스 여왕 자신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을 것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던 중 어떤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 글에 따르면, 몇몇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과연 그 많은 작품의 실제 작가였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옥스포디안’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대필 작가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작가는 에드워드 드 비어, 즉 옥스퍼드 백작이고 그가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37편이나 되는 희곡 작품을 짧은 시기 동안 쓰기에는 교육 수준이 너무 낮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근거를 댔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는 공식적인 학교 교육에 대한 기록이 없다. 또한 그가 남부 영국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한 기록도 없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보건대 그는 극작가가 아니라 단지 배우이자 부동산 투자자였을 뿐이다. 그의 유언에는 작품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다. 심지어는 책을 소유했다는 기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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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에드워드 드 비어 옥스퍼드 백작은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코틀랜드를 포함해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장소를 실제로 여행했다. 드 비어 백작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작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드 비어 백작의 필체를 연구했다. 심지어 그들은 그의 필체뿐만 아니라 그의 성서에 표시되거나 밑줄이 그어진 부분까지 연구하며 드 비어 백작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작가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드 비어 백작이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귀족들이 평민들을 위해 극작품을 쓴다는 것은 귀족의 예법에 어긋난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드 비어 백작은 어쩔 수 없이 스트랫포드 폰 에이본 출신의 무명의(?) 셰익스피어에게 극작품을 건네면서 대신 출판하도록 시켰고,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400년 전이라고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드 비어 백작과 셰익스피어 둘이 서로 비밀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들의 양쪽 지인들, 심지어 연극을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속이는 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 비밀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 가능했을까. 이 모든 질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드 비어 백작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작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또 다른 문제는 작품의 출간 연도다. 실제로 드 비어 백작은 1604년에 죽었는데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많은 작품들은 1604년 이후에 출간되었다. 드 비어 백작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다고 하기에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드 비어 백작이 죽기 전에 작품을 이미 썼고, 그 작품이 나중에 출간되기 전 셰익스피어가 가필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요컨대 셰익스피어 작품을 둘러싸고 한 쪽에서는 당연히 셰익스피어가 실제 작가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드 비어 백작이 실제 작가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어느 한 쪽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거나 모티브로 한 작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이에 대해 논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삶을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언뜻 생각나는 게 톰 스토파드가 시나리오를 쓰고 존 매든이 감독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등과 같은 작품을 쓴 과정에 초점을 맞추지,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아니 셰익스피어가 실제 작가이며, 그가 사랑에 빠지면서 여러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 영화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위대한 비밀>(2011)이라는 영화다. 영화의 원제는 anonymous, 즉 ‘익명’이라는 뜻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제목을 통해, 아마 주인공 드 비어 백작이 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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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시작되면 무대 뒤에서는 배우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고 한 남자가 무대에 선다. 그는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위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영화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위대한 비밀>에는 셰익스피어,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과 같은 극작가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1세를 포함한 윌리엄 세실과 로버트 세실 부자, 그들의 사위이자 처남인 에드우드 드 비어 백작, 그의 숨겨진 아들 사우스햄튼 백작, 사우스햄튼 백작의 친구인 에식스 백작 등 당대 실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주로 벤 존슨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에서는 연극이 실제로 공연되지만 이 영화는 일종의 ‘정치극’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그녀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메리 스튜어트, 즉 나중에 그녀의 왕위를 잇게 되는 제임스 6세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한다.
  전술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이 전해진다. 영화에 따르면, 먼저 셰익스피어는 실제 작가가 아니다. 에드워드 드 비어는 귀족이라는 고귀한 신분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자 재능이 많이 떨어지는 희극 배우 한 명을 섭외해 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출간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는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고귀한 삶을 산 인물로 역사책에서는 기술되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남자를 너무나 좋아하고 심지어는 근친상간을 일삼은 인물로 묘사된다.
  영국의 르네상스 시대라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시대와 영국의 왕정에 자부심을 갖는 영국인이나, 영국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영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심지어 당대의 영국사나 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 영화를 허구라고 폄하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보통 기록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역사 역시 당대의 관점에 따라 기술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건 다른 나라 역사건,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는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박물관 진열장의 ‘전시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과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텍스트’로 바라보는 게 보다 생산적이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그의 개인적 삶은 많은 극작가들에게 예술적 원천이 되어 왔다. 그 중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빙고>(1973)에서 말년의 셰익스피어와 그의 주변을 극화했다. 본드는 이 작품에서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현실적 무지와 무관심, 당시 서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극화함으로써, ‘인클로저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냉혹함과 계층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본드는 영화 <위대한 비밀>에서처럼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극작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당시 기득권층이 피지배층을 억압하는데 일조했다고 비판한다. 즉 그는 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보수적인 셰익스피어의 삶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셰익스피어 신화를 탈신비화한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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