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학술
학술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금기를 넘어서라
제 911 호    발행일 : 2016.10.10 

1.jpg


영화를 매개로 금기를 말하다

  낯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친한 사람들 사이에도 대화 주제로 피하거나 꺼리는 주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성’(sex), ‘정치’(politics), ‘폭력’(violence), ‘종교’(religion) 등을 들 수 있다. 위 주제들은 매우 일상적이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주제로는 기피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위 주제로 한 대화는 대부분 생산적인 대화나 토론보다는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말싸움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논쟁으로 치닫지 않을 만한 연예, 스포츠, 날씨, 여행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끝난 뒤에는 왠지 조금 공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이런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즉 우리는 의식적으로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미 금기를 넘지 말라고 내면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은 ‘과감하게’ 이런 금기를 넘어서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금기를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역설한다. <30금 쌍담>(민음사, 2016)은 그들의 과감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원래 그들의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4가지 금기 주제, 즉 ‘섹스’, ‘폭력’, ‘정치’, ‘종교’를 피하지 말고 당당하고 과감하게 맞서라고 역설한다. 그들의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는 각 주제와 연관된 영화, 즉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 피에르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5), 루이스 브뉴엘의 <비리디아나>(1961)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주제도 접근하지 쉽지 않을뿐더러 이 주제들을 감싸고 있는 영화들 역시 만만치 않다. 아니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아주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래도 무척 힘들다.
  <30금 쌍담>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우리들 스스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지, 성은 무엇인지, 폭력은 무엇인지, 종교는 무엇인지, 너와 나는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예술을 넘어 우리의 삶에 대해 “재질문하고, 재사유 하게 한다.” 이 짧은 글에서 네 편의 영화를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주로 성과 정치에 관련된 영화인 <감각의 제국>과 <살로, 소돔의 120일>을 중심으로 성과 정치, 그리고 폭력과 종교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2.jpg


‘성’을 말하는 슬픈 영화 <감각의 제국>

  먼저 살펴볼 주제는 ‘성’이다. 언급된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감각의 제국>은 원래 “집에서 몰래, 홀로 조심스럽게 보는, ‘은밀한 음지’의 영역에 속해 있는” 영화다. 주지하듯, <감각의 제국>은 “남녀의 섹스를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담은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는 1936년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감각의 제국> 뿐만 아니라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실록 아베 사다>(1975)라는 영화도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본에서 촬영하고 편집과 후반 작업은 프랑스에서 하며 검열을 피했지만, <감각의 제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따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 나라의 검열 기준에 따라 다른 판본으로 상영되었다. 즉 <감각의 제국>은 각 나라의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의 양상과 정도를 살펴보는 시금석과도 같다.
  <감각의 제국>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러브스토리다. 사랑 가운데서도 금기된 사랑, 즉 불륜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김기덕의 <섬>(2000)이 그렇듯이, <감각의 제국>은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도 점점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감각의 제국>에서 사다는 기치초가 아내와 정사를 나누자 질투와 살기를 느끼고, 결국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감각의 제국>은 보기 전에는 ‘야한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보고 난 후에는, 특히 여러 번 보고 나면(여러 번 보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사랑의 ‘허무함’ 또는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즉 “섹스로 허무를 달랠 수 있지만 없애지는 못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영화 <감각의 제국>은 섹스는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수많은 사랑 행위 중 하나일 뿐”이고,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섹스보다는 진정한 사랑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제국>은 야한 영화라기보다는 슬픈 영화다.

3.jpg

잔혹한 교양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

  다음으로는 ‘정치’다. 출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게 가난이라면, 부자들에게는 권태로움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처음 보았을 때 불현듯 이 구절이 떠올랐다. 일단 이 영화는 파시스트들의 엽기담 또는 부자들의 권태 탈출기로 읽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몰락하자, 그 잔당들은 이탈리아 북부 살로에 괴뢰 정권을 수립한다. 어느 날 이곳 살로 공화국을 대표하는 공작, 주교, 판사, 의장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고 권태를 해결할 연회를 준비한다. 그들은 수하를 시켜 마을의 예쁜 소년과 소녀를 잡아들인다. 그들은 인본주의적 가치에 반대하는 규칙을 정하고, 자신들의 파티를 어떤 검열도 없이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 서로의 딸과 결혼식을 올리고, ‘기벽의 장’, ‘똥의 장’, ‘피의 장’을 벌인다.
  <살로, 소돔의 120일>에는 섹스, 정치, 폭력, 종교 등 금기의 주제가 적나라하게 다루어진다. 파솔리니는 이 영화에 파시즘에 저항하는 자신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투영한다. 파솔리니는 영화감독 이전에 시인이자 소설가고, 당대 유럽 사회를 비판한 논객이자 영향력 있는 영화이론가다. 그에게는 “주변부적인 계급과 정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평생 관심사”였다. 파솔리니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작가였고, 영화가 지닌 이미지의 힘을 폭력적으로 극대화시켜 쟁점을” 만들었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파솔리니가 “금기라는 주제를 다룰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드 후작의 <소돔의 120일>을 각색한 영화다. 그는 사드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파시즘의 종말을 고하는 때를 배경”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민중의 삶을 묘파(描破)한다. 즉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파시스트의 권태적인 엽기를 다루지만, 심층적으로는 “소멸해가는 민중 혹은 인간의 삶을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제국>이 단순히 선정적이라면, <살로, 소돔의 120일>은 선정적인 것을 넘어 폭력적이고 정치적이다. 또한 반종교적이다. 당연히 “동물만도 못한 상태로 전락해 버린 인간의 삶을 들여다” 봐야 하기 때문에 <살로, 소돔의 120일>은 <감각의 제국>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몰락해가는, 혹은 몰락이 예정된 살로 공화국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4명의 파시스트들은 ‘극한의 향락’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쾌락과 권력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행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행사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쾌락의 정도를 실험한다. 쾌락이 커질수록 그들은 “권력이 주는 쾌락에 더욱 중독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종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인간이 저항을 잃어버리면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저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노예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감독 파솔리니는 이 영화를 통해 “강요하는 규칙에, 자기도 모르게 순종”하면 경제적 보상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칙이 강요된다고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30금 쌍담>의 두 저자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아주 탁월한 ‘잔혹한’ 교양 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자신을 담단하게 해야

  <30금 쌍담>의 두 저자는 책의 목차를 ‘트랙’으로 나누고, 각 트랙의 끝에 버킷리스트 형식으로 독자에게 당부 또는 충고한다. 예컨대 트랙1의 버킷리스트는 ‘숙제 검사받지 마라’, ‘마음에 들면 일단 자고 보자’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랑 또는 연애를 숙제(이벤트)처럼 하지 말고 본능에 따르라고 충고한다. 즉 눈치 보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트랙3의 버킷리스트는 ‘복수를 생활화하라’, ‘수치심을 넘어서라’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독재 권력이 자신의 무자비한 힘을 행사해 피해를 가했다면, 절대 잊지 말고 그 권력을 징벌해야 한다. … 중략 …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심지를 더 굳건히 다져라. 새로운 길은 우리가 수치심을 넘어설 때 비로소 열린다.” 권력에 굴종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핵심이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의 삶은 “꼭 해야 하는 것”(MUST)과 “해서는 안 되는 것”(MUST NOT)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각 ‘의무’와 ‘금기’로 환언된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거나 금기 사항을 어겼을 때는 처벌이 뒤따른다. 때로는 그 처벌이 상상할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30금 쌍담>의 한 저자는 “착한 사람은 길들여진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서는, 즉 착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기를 넘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금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금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단해져야 한다. 금기를 넘어서는 것과 단단해 지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둘 모두가 필요할 때다. 지금이라면 이런 마음과 행동이 더욱 더 필요하다.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
2024년을 새롭게 열 ‘개화’ 선본 제56대 ...
2024년 우리 학교를 이끌어 갈 제56대 총학...
우리 학교의 요리왕은 누구일까? 장쿱이의 꿈
우왕이와 찰칵, 생협 포토쿱 설치
학술 More
중국은 국제사회의 패자(霸者)가 될 수 있는가?...
35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간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이방인> 다시 쓰기, 읽기
‘혐오 발언’에 저항하라
들뢰즈, 모든 것을 다 거부한 긍정주의자
금기를 넘어서라
그림자 노동과 자급자족 경제의 복원
셰익스피어, 과연 그는 누구인가
아랍과 이스라엘, 그 끝없는 전쟁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