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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과 자급자족 경제의 복원
제 908 호    발행일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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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언급되는 칼 폴라니는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화두로 19세기 자본주의의 성장과 고대 원시 사회와의 관계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거대한 전환>에서 근대의 산물로 알려진 ‘경제’와 ‘시장’을 고대로부터 전승된 보편적인 산물로 규정하고, 오히려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이 상품화되고 인간사회의 전통적 기능이 박탈되었다고 파악했다. 따라서 그는 토지.노동력.화폐라는 추상에 바탕을 둔 19세기의 시장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고대 경제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거대한 전환을 통해 사회적인 완결성을 유지하면서 생산과 분배가 가능하다. 이처럼 폴라니는 경제.사회과학 전반에 반성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폴라니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또는 반성적 성찰은 이반 일리치에 의해 보다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양상을 띤다. 그렇기에 일리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 ‘가장 인간적인 래디컬리스트’ 등으로 불린다. 일리치는 원래 가톨릭 사제였으나 교회에 대한 잦은 비판으로 인한 교회와의 마찰로 결국 사제직을 버린다. 그 후에는 여러 대학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연구와 저술에 전념한다. 그의 연구와 저술은 주로 역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철학, 언어, 여성, 의료 등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종횡한다. 최근에 다시 번역되어 출간된 <그림자 노동>(사월의 책, 2015)에서도 경제, 노동, 발전, 언어, 교육, 읽기와 쓰기, 과학, 기술, 가족, 서비스, 가난, 제도, 가치 등 광범위한 주제가 논의된다.
  전술했듯이, 일리치는 폴라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즉 일리츠는 폴라니와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사를 시장경제가 자급자족 경제로부터 ‘뽑혀 나온(disembedded)’ 과정으로 보았다. 바꿔 말하자면 전근대 자급자족 경제가 붕괴되면서 근대 시장경제가 등장했고,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노동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임금노동과 비자급자족적 가내 공간에서 주부의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그림자노동으로 분화된다. 일리치가 <그림자 노동>에서 주요 논제로 삼고 있는 게 바로 이점이다. 그는 노동의 문제를 근대화와 발전과 연동시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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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적으로 근대는 편익, 전근대는 불편함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근대는 발전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일리치는 발전을 환상이라고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발전이 겉으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설과 기관을 통해 편익을 가져왔지만,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외부효과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역생산성이 초래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지은 병원, 학교 및 복지 제도의 경우 그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특권층이 수혜자가 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공평한 발전이 생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전 또는 성장을 지향함에 따라 시장 경제 하에서 인간의 노동은 유급이건, 무급이건 획일화되고 관리된다. 반면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공생공락’의 도구를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노동의 산물인 재화와 서비스가 강제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라 창의적인 활동의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임금노동과 그림자 노동 모두 쇠퇴한다. 아니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의 경계가 무화된다. 결국 자급자족 경제하에 있는 사람들은 발전을 거부한다. 바꿔 말하자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발전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즐기는 삶을 가져올 수 있는 발전을 추구한다.
  일리치는 고대, 중세로부터 시작된 발전의 역사적 뿌리를 탐색하면서 발전은 곧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는 기획으로 규정하고 이는 생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신 자급자족 경제, 즉 토박이 노동에 바탕을 둔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토박이 노동이란 생계를 꾸리고 향상시키는 무급 노동을 가리킨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토박이 노동을 통해 ‘빼어난 미적 감각, 기쁨에 대한 각별한 체험, 다른 집단이 이해하기는 해도 반드시 함께할 필요가 없는 특정 집단만의 고유한 인생관’을 추구하는 삶이다. 순환논리 같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삶에서 토박이 영역을 확대할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하고, 그럴 때 비로소 자신만의 토박이 삶을 살 수 있다.
일리치는 근대에 들어 토박이 삶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파악했는데, 그 과정을 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언어’로 접근하고 추적한다. 그는 논의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492년, 즉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역사에서 말하는 해에서 시작한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도움으로 신대륙의 꿈, 즉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꿈을 실천하려 할 때, 스페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려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네브리하라는 인물로서 여왕에게 새로운 언어의 문법책을 헌사한다. 그가 여왕에게 문법책을 헌사한 목적은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근대화에 봉사하기 위함이다.
  네브리하는 살아있는 언어를 인쇄되는 책의 형태에 맞게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의 표준화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네브리하가 주장하는 언어의 표준화는 오늘날의 그것과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그의 주장은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는 토박이말을 금지시키고 대신 언어를 표준화함으로써, 가르치는 공식 언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리치는 토박이말을 버리고 공식적으로 모어(모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네브리하의 주장을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다. 역사적으로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기준점을 ‘왕권의 확립’이라면 왕권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요소는 경제와 통치의 효율성이다. 그리고 통치의 효율성은 언어, 즉 공식어의 확립에서 비롯된다. 근대 국가의 형성을 자본주의의 확립과 연동해서 파악하는 것은 공식적인 연구였다. 그러나 네브리하의 예에서 보았듯이, 서구의 근대화를 모어의 확립으로 본 일리치의 사유는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하다.
  오늘날 모어는 아이가 처음 배우는 언어, 국가 당국이 제1언어로 쓰기로 정한 언어를 의미한다. 모어는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인지되는 언어라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체득되는 언어다. 그러나 근대에 모어는 가르치는 언어, 또는 배우는 언어를 가리킨다. 가르치는 모어에 사람이 종속된다는 것은 인간의 필요를 상품으로 정의하는 시대에 인간이 처한 모든 종속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네브리하는 이런 종속의 이데올로기를 처음으로 정식화했다. 근대와 전근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일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산업화 이전의 문화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근대의 가르치는 모어는 토박이말을 ‘구축(驅逐)’하고 말에 대해 근원적 독점을 ‘구축(構築)’했다.
  일리치는 근대의 또 다른 키워드로 ‘민중’을 꼽았다. 그는 12세기 사상가 생빅토르 위그를 예로 들어 ‘민중에 의한 연구’와 ‘민중을 위한 연구’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일리치는 위그를 전통적 사상을 소화해 새롭게 자신의 사상으로 만든 새로운 유형의 천재로 간주한다. 위그는 인간의 ‘기계과학이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치료해주는 철학의 한 부분’이라고 정의했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심지어 인간이 과학 기술에 의존하는 현대의 조류에 비추어보았을 때 위그의 예지력은 놀랍다. 그는 인간의 나약함을 치료하는 세 가지 수단으로 ‘테오리카’ ‘프락티카’ ‘메카니카’를 꼽았다. 위그는 자신들이 훼손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운명에 처한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부족함을 낫게 할 치료제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일리치가 위그의 예를 통해 역설하고자 하는 점은 과학기술에 대한 경계다. 즉 인간이 과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대신 과학 기술은 인간이 삶을 보다 나은 쪽으로 이끄는데 필요한 도구적 기능을 수행해야함을 역설한다. 그는 “‘인간이란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며 이들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의 임무’라는 생각을 뒤집어야만 한다. 이를 깨닫지 않으면 타락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위그의 경고, 다시 말하면 일리치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할 자본주의의 대안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에서 일리치는 ‘산업 경제의 가려진 측면’으로서의 ‘그림자 노동’을 논한다. 그림자 노동이란 저임금 노동이나 실업이 아닌 무급노동을 가리킨다. 노동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는 일리치가 마르크스주의자, 노동조합주의자, 일부 여성주의자와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가 임금노동을 하려면 발탁되어야 하지만, 그림자 노동은 배정받는 것이다. 또한 그림자 노동에 들어간 시간, 수고, 수모에 대해서는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림자 노동은 이런 무보수의 자기 규율성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임금 노동보다 더 중요성을 띠게 된다.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임금 노동의 역사를 살핀다. 오늘날에는 노동하면 당연히 임금 노동을 떠올리지만, 중세에 임금 노동은 비참함의 상징이었다. 임금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임금 노동자였던 게 아니라,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삶의 토대가 되는 가정이 붕괴되고, 자급자족을 영위할 수단을 박탈당하고, 배고픈 사람을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해 결국 임금노동자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면서 임금 노동은 그림자 노동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 즉 “임금 노동은 궁핍의 증거가 아니라 쓸모의 증거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성별의 경제적 구분, 경제적 개념으로서의 가족, 가정과 공공 영역 간의 대립 같은 전례 없는 현상들로 인해 임금 노동은 삶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임금 노동의 가치 상승으로 집 밖에서 임금 노동하는 남성은 집 안에서 가사 노동, 즉 그림자 노동하는 여성을 관리하고 통제하기에 이른다. 또한 남성은 자신의 임금에 대한 가족의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자신이 사회의 정당한 노동을 모두 책임지고 있으며 비생산적인 여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회와 남성들은 여성이 하는 일을 ‘노동이 아닌 것(non-work)’으로 규정하며 임금 노동이 그림자 노동에 대해 승리했다.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이 함께 등장했다고 보았다. 그림자 노동에 굴레가 처음 씌워진 것은 주로 양성 간의 경제적 결합을 통해서였다. 즉 임금 노동자와 그에게 의존하는 식구로 구성된 19세기 부르주아 가족이 자급자족 중심의 가정을 대체하면서부터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이 대립되고 최초로 여성이 지위가 박탈되는 과정은 가정을 넘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박탈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화는 한마디로 차별의 역사로 규정될 수 있다.
  일리치는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자급자족 경제가 붕괴되었고 그에 따라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으로 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은 주로 임금 노동을 담당하고 여성은 그림자 노동을 담당하는 서로 대립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남성은 임금 노동에 종속되고 여성은 그런 남성에 종속됨으로써 여성은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사회에 감상적인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급자족 경제를 복원하는 것이다. 일리치의 주장의 핵심 또한 ‘자급자족 경제의 복원’으로 귀결된다. 그에 따르면, ‘자급자족에 부여된 가치야말로 성장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이고, 따라서 자급자족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파괴한 사회에서는 자급자족의 대체물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때로는 눈에 보이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자급자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양산한다. 이런 가부장적 속임수는 억압받는 자들의 대표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억압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일리치의 답은 간단하다. 개인이 타인에, 사회에, 혹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좋은 사회란 좋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답은 늘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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