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학술
학술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35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간
제 936 호    발행일 : 2018.11.19 

1.jpg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2018)으로 글을 시작하자. 이 드라마는 신미양요(1871년)때 미국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조선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노비의 아들이었던 유진(이병헌 분)은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미국 군함에 승선한다. 그는 미군에 입대해 미서전쟁(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미해병대 대위이자 미공사관 영사대리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에서 그는 조선의 정신적 지주인 고사홍의 손녀 애신(김태리 분)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애신은 비밀리에 의병활동을 하고 있고 유진은 그녀의 의병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간단히 요약해 <미스터 션사인>은 애신과 유진의 ‘러브스토리’인 동시에, 1900년부터 1905년 사이에 벌어졌던 수많은 의병의 활동을 그린 ‘역사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드라마 속 모든 사건과 등장인물이 실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 허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뭐가 실제이고 뭐가 허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드라마를 감싸고 있는 역사적 맥락, 즉 스러져 가는 조선을 어느 한 쪽은 일으켜 세우려 하고, 다른 한 쪽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스터 션사인>에서 애신과 의병들은 나라를 배신하고 오직 일신의 영달을 좇은 수많은 변절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예컨대 유진의 부모를 죽게 만든 친일파 외부대신 이세훈과 신미양요 때 통변이었다가 나중에 외부대신에 오르는 이완익은 각각 유진과 애신에 의해 처단된다. 그런데 그런 ‘악질’ 친일파가 제거되면 또 다른 친일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예전의 악질 친일파들보다 더 교활하고  잔악무도하다.

2.jpg

  솔직히 말해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을 꼼꼼히 챙겨 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결말이 유진과 애신의 사랑이 완성되는 ‘해피엔딩’ 혹은 둘 중 한 사람 혹은 둘 모두 죽는 ‘새드 엔딩’으로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나중에 찾아보니 애신을 제외한 모든 주인공들이 조선을 위해 또는 애신을 위해 죽는다), ‘조선의 멸망’이라는 역사적인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적으로 조선의 대신 중 일부는 강제로 일부는 자발적으로 1905년 일본과 ‘을사늑약’을 맺고, 1910년에는 ‘한일병탄’ 조약에 서명해, 결국 조선은 멸망한다. 누군가는 을사늑약과 한일병탄으로 부와 명예를 누렸고, 누군가는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그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우리는 전자를 ‘친일파’로 부르고, 후자를 ‘의병’ 또는 ‘독립운동가’라고 부른다. <미스터 션사인>은 다른 건 차치하고, 친일파와 의병의 대립 구도를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역사적 고증이나 드라마의 완성도보다도 이 점이 더욱 인상적이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친일파와 의병 중 누가 이겼는지 이미 알고 있다. <미스터 션사인>에서 애신의 아버지 상환은 친일파를 처단하는 의병 활동을 하다가 동지에게 배신당해 총에 맞아 죽는다. 애신을 낳은 지 얼마 하루 밖에 안 되는 애신의 어머니 희진은 몸을 피하라는 동지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오히려 그들에게 애신을 맡기며 친일파 이완익을 처단하려한다. 하지만 그녀의 암살 시도 또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완익은 희진에게 “내 하나 죽인다고 조선의 운명이 바뀔 것 같니 … 니년 뒤 니년 앞 조선의 운명에 기대 먹고사는 자가 이리 많지 않니?”라고 말하며 그녀와 그녀의 동지들을 조롱한다. 하지만 희진은 “당신은 우리 하나, 조직 없앤다고 당신의 운명이 바뀔 것 같나 (…) 오래 걸려도 그들이 갈거야”라고 일갈한다. 실제로 애신은 이완익을 처단하기 직전 말한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내가 조금 늦었소. 늦었지만 왔소. 당신을 죽이러.” 그러나 이완익은 “내 하나 죽인다고 다 넘어간 조선이 구해지니?”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애신은 “적어도 하루는 늦출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이완익을 처단한다. <미스터 션사인>에서 희진과 애신이 이완익에게 하는 이 말은 의병과 이후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정신을 함축한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주와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한일병탄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의 그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뜻을 굽히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또는 상황에 절망해 변절의 길로 들어섰다.
  마지막회에 유진이 죽음을 맞는 시점이 정확히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정미의병이 일어난 1907년부터 1910년 한일병탄 사이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퇴위 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로 해산된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들은 다시 봉기하는데, 그들이 바로 ‘정미의병’이다. 정미의병은 해산된 군인들의 가세로 예전의 의병과는 달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전면항일전을 벌이며 서울진공작전까지 계획했지만 일제의 야만적인 대공세로 예기가 꺾이고 말았다. 1910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의 의병활동은 수그러들었지만, 의병들은 활동무대를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옮겨 항전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독립군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역사 만화가 박시백은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이야기가 끝나는 1910년 부터 멸망한 조선의 역사를 이어 쓰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시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2005)으로 조선의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1910년 한일병탄부터 192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다룬 <35년>(비아북, 2018) 1.2.3권을 출간했고,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까지 전 7권을 출간해 해방까지의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조선인은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겪으며 본의 아니게 근대인으로 변모했다. 예컨대 조선인은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 하에서 내적 갈등을 한 피식민으로서 근대적인 신분제도와 토지 제도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조선인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보듯이 누구는 일제 식민 통치에 동화되어 적극적으로 동조했고, 누구는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35년 내내 지속된 이런 극과 극의 대결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암살>(2015)과 <밀정>(2016)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35년이라는 일제강점기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다.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은 해방, 그리고 이어진 끝모를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뒤틀려졌다. 즉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로 인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대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35년’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원형’이다. 박시백의 <35년>은 이 원형의 시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생생히 복원하려한다. 그가 복원하는 역사는 ‘단순히 박제된 정보를 전시하고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호흡하는 소통으로서의 역사’다. 다시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역사는 ‘과거와 소통하고, 현재를 비추고, 미래를 내다보는 역사’다.
  <35년>의 제1권부터 제3권까지는 강압적인 을사늑약과 한일병탄 이후 가혹한 탄압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조선총독부와 경찰,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나라와 동족을 팔아넘긴 친일파, 민중의 들끓는 저항이 폭발했던 3.1혁명의 순간들과 그 이후의 대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분열, 식민지 경성에서 벗어나 간도.연해주.상하이.하와이를 넘나들며 해외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이들,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열단의 의거,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이르쿠츠크파.상하이파.고려공산당 등 수많은 인물과 단체를 생생하게 역사화한다.

3.jpg

  그런데 <35년>을 읽으면서, 특히 제3권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조선희의 <세 여인>(2017)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 여인>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세 여인인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와 그들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가 ‘20세기 초 경성, 상해, 모스크바, 평양을 무대로 꿈꾸었던 지옥 너머 봄날의 기록’이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는 ‘각각의 무게감은 다를지언정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가 늘 그들 곁에 있었다. 아니 반대로 세 여인 곁에 늘 세 남자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세 여인>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 남자들의 삶을 흥미진진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파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 세 여인을 비롯해 ‘이름 석자로 언급되는’ 모든 이들은 실존인물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에 관한 역사기록을 기본으로 했고, 그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웠다.’
  개인적으로 <세 여인>에서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세 여인과 그들 주변 인물의 신산한 삶보다도,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부분이다. 소설은 허정숙을 중심으로 1920년 상해에서 한국 공산주의운동이 시작돼서 1955년 주체사상의 등장과 1958년 연안파 숙청으로 한국에서 공산주의가 소멸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처럼 역사에도 실수가 있고 착오가 있고 우연이 있고 행운도 있다.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가 빚어지고 우연한 실수가 운명을 바꾸기도 함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는 출판사 리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개인 간의 성격적 차이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그 오해는 자존심과 결부되어 이념의 차이를 가져왔고, 이념은 불신을 낳았고, 불신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었고, 그 비극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됐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역사를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듣는다. 이 질문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누군가는 ‘살아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도 답한다. 여기에 <35년>의 작가는 ‘후대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자신만의 이유를 추가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항일투쟁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던 반면 친일 부역의 길은 안락과 평화의 길이었다. 후자처럼 사는 게 역사에서 얻는 게 지혜가 되어버리고 만다면 역사를 배우는 건 너무나 참담한 일이 된다.” 박시백 작가는 후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더 나아가 후자처럼 살았다면 혹은 살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35년> 각 권 부록의 등장인물 인명사전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생애를 아주 촘촘하게 설명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역사에도 당연히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역사에서 빛은 더욱 밝혀야하지만 어둠은 빛으로 덮거나 지워서는 안된다. 어둠은 어두운대로 남겨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에서는 가장 밝게 빛나던 인물뿐만 아니라 시대의 어둠 앞에서 자신의 안락과 영화만을 좇았던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듯이, 일제강점기의 인물들과 시공간을 통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슬프고 아픈 역사를 배우고 기록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참담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배워야 하는 교과서적 설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재는 미래의 역사다. 미래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교훈삼아 현재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설령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었어도 상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국가의 역사만 그렇겠는가.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개인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이 보여준 것처럼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이름 모를 수많은 의병들을 우리는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더불어  흔들리는 조선을 더욱 흔들면서 일신의 영달을 꾀한 친일파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그와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35년>의 작가 박시백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
2024년을 새롭게 열 ‘개화’ 선본 제56대 ...
2024년 우리 학교를 이끌어 갈 제56대 총학...
우리 학교의 요리왕은 누구일까? 장쿱이의 꿈
우왕이와 찰칵, 생협 포토쿱 설치
학술 More
중국은 국제사회의 패자(霸者)가 될 수 있는가?...
35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간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이방인> 다시 쓰기, 읽기
‘혐오 발언’에 저항하라
들뢰즈, 모든 것을 다 거부한 긍정주의자
금기를 넘어서라
그림자 노동과 자급자족 경제의 복원
셰익스피어, 과연 그는 누구인가
아랍과 이스라엘, 그 끝없는 전쟁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