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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제 934 호    발행일 :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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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가든>(2010)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모두 아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이렇다. 액션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길라임(하지원)은 액션스쿨의 감독 임종수(이필립)를 사모하지만, 동시에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에게 푹 빠져 있다. 임종수는 그런 라임의 마음을 알고 있고, 자신도 라임에게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일부러 차갑게 대한다. 오스카의 사촌동생인 백화점 사장 김주원(현빈)은 우연히 만난 라임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그러나 라임은 그런 주원에게 시큰둥하다. 한편 오스카에게는 한 때 사랑했지만 사소한 오해 때문에 헤어진 여자친구 윤슬(김사랑)이 있다. 그녀는 오스카가 자신을 거짓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주원과 선을 본다. 오스카 앞에는 그를 흠모하는 가수 지망생 썬(이종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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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가든>은 등장인물의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서로 얽히고설키어 있지만 멜로드라마의 기본 공식대로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오스카와 윤슬은 오해를 풀고 연인이 되고, 비록 축복을 받지는 못했지만 라임과 주원은 행복하게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잘 산다. 그리고 라임의 친구 임아영(유인나)과 주원의 비서인 김비서(김성오)도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주지하듯 <시크릿 가든>의 여러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관계가 풀리는 과정은 논리적으로 헐겁다. 하지만 멜로드라마에서 이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따뜻하고 소소한 ‘연애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멜로드라마는 논리적 개연성보다는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시크릿 가든>은 멜로드라마의 본령에 충실하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19세기 말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 (1895)을 살펴보자. <시크릿 가든>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등장인물 관계도 너무나 복잡하다. 유복한 런던의 귀공자 알저논은 가끔씩 런던 사회에서 도망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시골에 건강이 안 좋은 번버리라는 친구를 두고 있는 척한다. 그에게는 어니스트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우연히 어니스트가 세실리라는 처녀의 후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저논은 어니스트를 추궁한 끝에 그의 본명이 잭이고, 런던에 오기 위해 어니스트라는 망나니 동생을 두고 있는 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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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은 알저논의 사촌인 궨들른을 좋아한다. 그는 궨들른과 그녀의 어머니 브랙널 부인이 알저논의 집에 찾아온 날 궨들른에게 청혼한다. 궨들른은 단지 이름이 어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브랙널 부인이 잭의 출신이 변변치 않기 때문에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한편 알저논은 잭의 피후견인인 세실리를 만나기 위해 잭의 동생 어니스트인 척하고 잭의 본가가 있는 허트포드셔로 간다. 세실리 역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어니스트에게 관심이 많다. 어니스트인 척하는 알저논은 그녀에게 다시는 망나니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때 잭이 상복 차림으로 허트포드셔로 돌아와 프리즘 부인과 채저블 목사에게 어니스트가 죽었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세실리와 알저논이 갑자기 등장한다. 잭은 알저논에게 화를 내지만, 영문을 모르는 세실리와 프리즘 부인 그리고 채저블은 둘을 화해시키려고 애쓴다. 알저논은 세실리에게 청혼을 하고, 세실리 또한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잭의 약혼녀 궨들른과 알저논의 약혼녀 세실리는 허트포드셔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 자신이 진짜 어니스트의 약혼녀라고 말다툼을 벌인다. 이때 잭과 알저논이 등장해 둘 중 누구도 어니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들의 약혼은 깨지고 만다.  브랙널 부인은 프리즘 부인을 보고 놀란다. 왜냐하면 자신의 조카를 역에 버리고 도망친 사람이 다름 아닌 프리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리즘 부인이 잃어버린 아이가 잭이고, 그가 알저논의 형이며 잭의 본명이 어니스트였다는 사실까지 모두 밝혀진다. <시크릿 가든>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인물의 관계는 해결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다시 말하면 <진지함의 중요성>의 등장인물 관계는 <시크릿 가든>의 등장인물 관계만큼이나 복잡하다. 어쩌면 더 복잡할 수 있다. 그런데 TV 드라마와 희곡이라는 장르의 차이를 떠나, 두 작품 모두 등장인물 관계가 복잡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크릿 가든>과 <진지함의 중요성>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는다. 왜냐하면 두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 즉 ‘내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품의 구조 또는 형식, 예컨대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각 관계, 혹은 4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두 작품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대체로 멜로드라마를 내용이 ‘빤한 이야기’로 폄하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랑 이야기는 절대 없다. 왜냐하면 시대와 장소, 사람이 다르면 내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 같은 사랑이야기는 없다.
  여기 또 한편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2018)은 <시크릿 가든>과 <진지함의 중요성>과 비교하면 밋밋하고 특별할 것 없는 연애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공상수와 박경애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특별한’ 연애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자 주인공 상수는 <시크릿 가든>의 주원처럼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머리도 좋지 않으며 얼굴도 그저 그렇다. 그는 한 때는 아주 뚱뚱했지만, 지금은 곱슬머리에 그냥 키가 크고 마른 그냥 ‘평범한 보통 남자’다.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업무 능력은 보통사람보다 처지고, 심지어 대인 관계에서 종종 회사 안팎으로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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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수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회사에 들어온 일명 ‘낙하산’이다. 그의 아버지는 교수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이고, 그의 아버지와 그가 다니는 회사의 회장은 고등학교 동창도 아닌 재수학원 동기다.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회장과 뭔가 특별한 관계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결국 그는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 채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름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했지만 (…)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 안팎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상수가 일으킨 문제는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동료 직원, 사실은 그가 짝사랑하는 김유정의 맞선 현장을 급습해 생짜를 놓고, 그 자리를 만든 거래처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어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의 새어머니와 직장 상사 남부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회사 입장에서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하지만 언젠가 터지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팀장대리인 상수가 팀원을 충원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벌어진다. 회사는 상수의 요구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상수 못지않게 회사에서 ‘트러블 메이커’인 박경애를 팀원으로 붙여준다. 그리고 파업 때 퇴사한 조선생이 상수의 팀에 합류한다. 남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지만, 그들은 ‘큰 건’을 터트릴 것이라는 기대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보통 멜로드라마에서는 이런 오합지졸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과 예기치 않은 능력으로 기적 같은 ‘큰 건’을 터트리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행운과 능력도 없다.
  사실 상수와 경애는 여러 모로 닮았다. 상수는 TV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으로 죽자 어머니의 간병인이었던 여인과 재혼했다(사실은 어머니가 죽기 전 아버지와 간병인은 그렇고 그런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상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경애 또한 아버지를 모른 채 어머니와 둘이 살아왔다. 따라서 한 쪽 부모의 사랑만 받은, 다시 말하면 한 쪽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수와 경애는 성장하면서 늘 외로웠고, 늘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그들에게 삶과 사랑은 ‘시소’가 아니라 ‘그네’였다.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사실 상수과 경애는 고등학교 때 만날 뻔 했다. 아니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다. 그들은 각각 ‘E, 또는 은총’이라는 아이로 매개되어 있다. 경애는 E와 인터넷 영화동아리 모임으로 묶여 있고, 상수와 은총은 단편 영화로 묶여 있다. 결국 당시 떠들썩했던 인천 화재 사건으로 E 또는 은총은 목숨을 잃고, 상수와 경애는 한 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E 또는 은총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또 상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8년 동안 젊은 여성들에게 연애 상담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경애는 대학 때부터 사귄 산주에게 실연을 당한 후 두문불출하며 ‘언니는 죄가 없다’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고, 언니, 즉 상수의 연애 상담 덕분에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상수와 경애는 조선생과 한 팀이 되어 베트남 현지에서 미싱 판매 영업을 의욕적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현지 지사의 불법과 탈법으로 그들은 제대로 영업 실적을 내지 못한다. 아니 눈앞에서 자신들의 실적을 회사의 다른 팀에게 빼앗긴다. 결국 현지의 불법 행위를 넌지시 언급한 경애는 회사 물류 창고로 좌천되고, 상수는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니는 죄가 없다’ 사이트가 해킹당하면서 상수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그는 사이트 운영진을 만나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직접 책임을 지겠다고 하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나서서 해결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는 경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본사로 찾아가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지으려 하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수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경애에게 자신의 집 열쇠를 건네며 집에 있는 은총이 만든 영화를 보라고 권한다.
  상수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이사들에게 속은 사장의 분노 때문인지 경애는 영업팀으로 복직해 상수가 한때 흠모했던 유정과 함께 일한다. 상수는 회사를 그만두고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다. 그는 “썩 좋지 않은 영어 실력과 감상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는 작문실력 그리고 글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대화능력”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들어간다. 그가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방대하게 읽고 관람해온 연애소설과 영화 때문”이었다.
  상수는 새 직장을 얻고 나서 문득 두 사람, 국회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해 시름에 빠져 있는 그의 아버지와 경애를 떠올린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온 세계에 비하면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란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측량되지 않고 가시적이지 않은 것들에 열을 올리고 헛수고가 분명한 일에 봉사하는 백일몽에 빠진 인간들이 있는 세계에 불과하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술에 취한 그의 아버지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상수는 아버지와 통화를 한 뒤 은총이 남긴 8밀리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놓고 앉아 있다가 잠이 든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을 덮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 들어와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커피포트로 물을 데우고 있고, 자신의 방을 둘러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책장을 채운 문고판 소설들과 비디오테이프들과, 이미 죽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포스터에서는 웃고 있는 배우들과 잘 말린 수국과 레이스를 덧댄 커튼과 언니들의 편지를 인쇄한 종이들과 물기를 잘 짠 행주와 손으로 메모한 자동차세 납부기일 같은 것들을” 말이다. 상수가 사랑했던 사람은 유정이었지만 마지막에 그의 집에 들어와 그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그의 집을 둘러보는 이는 결국 경애다. 사실 상수는 언젠가부터 이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했었다.
  <경애의 마음>은 이렇게 끝나지만, 사실 상수와 경애의 사랑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다시 말해 책을 덮으면 이제 둘만의 사랑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예컨대 상수가 일어나 경애가 끓인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아니면 함께 밖에 나가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데이트를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경애의 마음>의 상수와 경애가 비록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던 것처럼 첫 눈에 반해 불꽃같은 사랑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가까이 가는 사랑’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아픈 데를 감싸주는 ‘애틋한 사랑’일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 아픈 사랑’을 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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