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기획에서는 우리 학교 13개 단과대학의 각 학문적 전망과 미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 호는 그 두 번째로 사회과학의 재구조화 방향에 대해 다뤄본다.
세계 금융공황과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파산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관점에서, 향후 이루어져야 할 사회과학의 진보적 재구조화의 큰 방향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경제이론의 위기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1929년 발발한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로서 목하 진행중인 세계금융공황은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한 시카고학파의 시장근본주의적 주류경제학이 첨예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정부개입의 최소화와 자유방임 즉 시장자율성, ‘작은’정부, 규제완화, 민영화,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 인하, 사회복지 축소 등을 핵심 경제노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시대에 미국사회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겪었고, 마침내 미국 국민의 대다수가 재앙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덫에 빠졌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진행중인 공황은 지난 30년간 케인즈주의를 누르고 헤게모니를 행사해 온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였다. 신케인즈학파의 대표적 이론가 폴 크루그먼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예고해 주듯이, 공황의 결과 케인즈주의가 얼마간 부활할 것이고 신자유주의의 위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규제의 영역 등에서는 대수술이 있겠지만, 그 결과 공황 이후 단기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인간적인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대중의 힘, 사회운동들이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기에는 취약하고 변혁적 운동들을 위한 이론과 이념도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공황을 초래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뉴딜 등 케인즈주의적 실천에 의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소되었다. 오늘날 케인즈주의는 현단계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정하게 해소하는 데에서 과거보다 훨씬 더 무력하다. 크루그먼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케인즈주의는 시장만능주의는 비판하지만 자유주의의 핵심 이념인 시장주의 자체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데, 현재의 위기의 학문적 기원에는 시장주의 내지 경제적 자유주의 그 자체가 있기 때문이다.
중도 자유주의인 케인즈주의뿐만 아니라 좌파 자유주의인 사회민주주의도 오늘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모순의 해결자가 될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는 노자간의 계급타협 체제인데, 이러한 계급타협이 과거 서유럽에서는 대공황과 전쟁의 끔직한 경험,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등장으로 인하여 가능했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 노자 계급타협의 조건은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계자본주의제의 긴장은 계속 누적되어 갈 것이고, 자본주의의 위기와 혼란은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우리는 종래와는 다른 형태로 새로운 해방적 사회운동들이 발전해 가는 것을 보고 있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사회과학 재구조화의 필요성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이데올로기인 것이 아니라, 경제ㆍ정치ㆍ사회적인 총체적 이데올로기이다. 더욱이 현시대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국면적 위기, 신자유주의의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시대이다. 현재의 위기는 경제학만이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을 위시한 사회과학 전체의 위기이며,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 자체의 위기이다.
세계체계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al Wallerstein)에 따르면 지금은 세계사적 이행기로서, 지난 500년간 존속해 온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수명을 다했고, 향후 30년 내지 50년간 혼란기를 거쳐 지금과 전혀 다른 어떤 체계로 이행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종래의 체계보다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체계로 나아가는 경로와 더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체계로 나아가는 경로의 분기점에 서 있으며, 전자로 나아가기 위한 학문적 실천에서 극히 중요한 것이 지식체계 일반, 특히 사회과학의 ‘재구조화’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회과학들의 ‘분과학문’화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는 4개의 학부, 즉 신학, 의학, 법학, 철학이 있었다. 신학은 19세기에 이르러 거의 사라졌고 의학과 법학은 더 좁은 전문분야가 되었다. 이후의 지식체계의 편성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것은 철학부의 진화이다.
대학 제도는 철학부 안에 오늘날 분과학문이라 불리는 일련의 전공과목들을 만들어내었다(한 예로 애덤 스미스는 1752년 이래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이 대학 도덕철학 과정은 자연신학, 윤리학,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정부학jurisprudence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과목들은 단일한 철학부가 아니라 인문학부(또는 철학부)와 과학 학부에 분리 소속되었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분리된 인문학과 과학 사이에 낀 지식영역으로 등장하였다. 19세기 전반까지 오늘날 사회과학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활동한 학자들은 누구도 자신이 후에 분리된 분과학문으로 간주된 틀 속에서 활동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과학들의 분과학문화는 19세기 후반에야 이루어졌다.
사화과학들 중에서 주요한 ‘법칙정립적’ 분과학문들로는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을 들 수 있는데, 경제학이 종래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879이며(Alfred Marshall), 경제와 구분되는 정치에 대한 과학으로서의 정치학 즉 political science는 19세기 말에야 대학 분과학문으로 자리 잡았고, 사회학이 분과학문으로 제도화된 것은 역시 19세기 말의 일이다. 이 사회과학 분과학문 체계는 1945년 경에 와서야 명료해졌다. 이러한 사회과학의 구조가 그동안 자본주의 세계를 지탱해 왔지만, 현시기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는 이 구조가 오늘날 전면적으로 의문시되고 있고, 따라서 그 재구조화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재구조화의 방향 ‘탈자유주의, 국제주의, 페미니즘’
‘법칙정립적 학문’ 즉 ‘과학’을 자임한 사회과학들은 처음에는 자신을 ‘개성기술적’인 역사학과 구별하고자 하였고, 자신들 내에서 이어 주제와 방법에서 서로 분리된 영역을 구획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의 구분은 사회생활 영역을 시장(경제), 국가(정치), 시민사회로 구별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운용을 연구하였고, 정치학자들은 관심을 정부구조에 국한하였으며, 사회학자들은 경제학, 정치학이 무시한 새롭게 대두한 ‘사회적’ 영역을 연구하였다.
19세기 말 이전에 통용된 것은 경제/정치/시민사회의 3원론이 아니라 경제/정치의 2원론이었다. 사회가 경제와 정치라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나뉘어 있고, 경제영역은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의 영역으로서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의 자동성(自動性)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는 경제 영역에 존재하는 이해대립으로부터 중립적인, 즉 초계급적인 기구라는 이데올로기는 계급대립을 은폐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최고의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의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경제와 정치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기는 하지만 경제는 정치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국가의 기능은 궁극적으로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고, 계급관계가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을 관통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역시 경제/정치 2원론의 제물이 된다). 경제학이 대표하는 2원론이 비판 앞에 유지불가능하게 되자 경제/정치/시민사회 3원론이 등장하였고, 경제, 정치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사회적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학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 3원론적 이데올로기는 2원론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 내에서 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이러한 2원론 내지 3원론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정치로부터 자율적인 경제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경제학, 경제적 대립에 초월적인 정치ㆍ국가에 대한 연구로서의 정치학, 경제와 정치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영역에 대한 연구로서의 사회학이라는 서로 분리된 학문분과 체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사회과학을 재구조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국민국가 체제와 불가분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의 해소를 위해서는 이론에서 일국주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국제주의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일국주의 및 따라서 민족주의에 포섭된 것이 사회주의 파산의 주요 요인이거니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를 규정한 가장 큰 요인 역시 이론에서의 일국주의이다. 사회과학은 분석단위가 일국사회가 아니라 세계체계이어야 한다는 이론적 관점과 국제주의적인 정치적 입장에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 없이 작동하지 못하며, 각시기 각국의 자본주의의 야만성의 정도는 가부장제의 강도와 정확히 비례한다. 가부장주의는 일국주의에 이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운동들을 좌초시킨 두 번째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제약이다. 계급모순의 해소는 성별 모순 내지 차이의 문제의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사상 처음으로 탈자유주의적, 국제주의적,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사회과학을 재구조화시킬 이론적 조건들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 사회과학의 이러한 재구조화는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해방적인 학문적 실천의 핵심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최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