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확보를 위한 학문적 도전」 그것이 곧 농학 !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정주 생활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자연에서 얻던 식량을 안정적으로 재배하여 수확하기 시작한 농경 산업이고 이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발상하게 되었다.
인류의 영리한 조상들은 단순히 식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사냥을 통해 힘들게 얻던 고기를 집에서 동물을 길러 편하고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야생 동물을 경종(야생 동물을 순화하여 이용함)과 축산을 함께하는 복합영농을 하였다. 이와 같이 순치된 동물 즉 가축의 힘을 농경에 적절히 이용하며 인류 최초의 산업인 농업을 약 10,000년 전부터 시작 하였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세계 4대 강(Tigris-Euphrates, Nile, Indus, Yellow Rivers) 유역인 것은 농업과 물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상이 약 4000년 전의 일이니 농경 시작으로부터 문명의 발생에는 약 6,0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을 만큼 발전 속도는 대단히 완만하였다.
농업이란 인류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오래된 산업으로 인류의 문명을 잉태시키며 인류 역사와 함께 발달하기 시작한 기술이다. 또한 인류가 생존하는 한 그들의 가장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식량 생산 산업인 농업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필수 산업일뿐만 아니라, 항시 시대를 앞서가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발전시켜야 될 산업 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산업인 농업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모든 학문적 도전을 총칭하여 농학이라 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농업을 단순히 하나의 산업으로만 본 것이 아니다. 농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신 즉 농심을 정치의 근본으로 보았다. 그러기에 학문에 입문하기 전 글자를 익히는데 사용한 교본인 천자문에 이르기를
‘치본어농(治本於農 : 다스리는 것은 농사로 근본을 삼고)하고, 무자가색(務玆稼穡 : 심고 거두는데 힘써라)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농업이 하늘 아래 가장 큰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였고, 가장 양심을 지키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인이라 하여 ‘장이’나 ‘장사치’보다 우위에 놓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순위로 인간의 삶을 분류하였던 것이다.
농학의 발달은 Multhus를 무색하게 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직면하게 되자, 1798년에 Multhus는 그의 인구론(Essay on population)에서 식량 생산 증가 속도는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어서 인류가 식량 부족에 허덕일 것이라고 전망하였고, 근년인 1968년에도 생태학자 Paul Ehrlich는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이라는 저서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로 인해 인류들은 기근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예측은 모두 기우임을 농학자들이 증명하였다. 19세기 이전에는 식량 증산의 방법을 주로 재배 면적의 확충에서 찾았지만, 20세기 이후의 농업은 농학의 발달로 얻게 된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여 재매 면적당 수확량의 증가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농대를 비롯한 농업연구기관의 농학 발달을 위한 괄목할 만한 기여가 있었다.
인류는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인 Mendel 이전에도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형질이 전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의 속담과 “좋은 것에서 좋은 것을 얻는다(like begets like)”는 서양 속담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Mendel 이전에는 사물을 개체 단위로 보았지 이를 분해하여 볼 줄을 몰랐다. Mendel의 유전 법칙이 1900년에 재발견된 이후 유전학은 급속하게 발전하였으며, 이 유전학을 농학에 응용하여 모든 생물(작물․가축)을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육종․개량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농업에 이용되던 축력도 기계 동력으로 대체되며 농업 생산의 효율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농학이 농업이라는 산업에 접목됨으로 인해 1850년에는 한 명의 농부가 4명의 식량을 생산하였고, 1990년에는 한 명의 농부가 80명의 식량을 생산하였으나, 1995년에는 한 명의 농부가 95명의 식량을 생산하는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단위 면적당 생산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인 쌀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세계의 가장 중요한 식량인 주요 국가의 밀 생산량은 (그림1)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20세기 중반 이후 약 2.5배 내지 4배의 수확을 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각 농업 분야에서 이룩한 이러한 변화는 종자의 육종과 같은 생물학적 변화, 농기계의 도입과 같은 공학적 변화,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과 같은 화학적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를 전 세계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 칭하고 있다.
가축의 경우에도 그 생산량이 획기적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데(표1), 우유 생산을 예로 들면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도에는 한 마리의 젖소가 2,000kg 내외를 생산하던 것이 20세기 후반에는 6,500kg을 생산하여 반세기 만에 1만년 동안 이룩한 개량량과 비교하여 3배 이상의 개량을 이룩하였다. 현재의 우수한 젖소는 연간(305일 기준) 약 2만kg을 생산한다. 이는 한 마리의 소가 매일 성인의 체중인 70kg의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니 놀랍지 아니한가?
축산학과 교수 김내수








최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