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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석
인간과 동물, 그 동반자적 고민 ‘수의학’
제 803 호    발행일 : 2009.04.13 
반려 동물 문화ㆍ생명 존중 사상 보편 가치로…
수의학 청사진의 전제 ‘의학자 역량 강화’

수의학의 유래

 ‘수의’를 의미하는 veterinary는 ‘짐을 운반하는 동물(우마)’을 의미하는 라틴어 veterina에서 유래하였다. 수의학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정확히 재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미 수의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3,000년의 역사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소나 말이 농경생활 뿐만아니라 교통, 전쟁수단으로써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수의학의 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리라 추측된다. 동양의학은 음양오행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인체의 장부론이 발달해 왔으나 서구 의학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물질로서 장부의 형태와 기능을 밝히는 해부학을 기반으로 그 체계가 성립되었다. 현대 수의학은 서구 의학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지만, 초창기의 인체해부학 연구에 동물의 사체가 자주 이용되었다는 여러 기록들을 보면 수의학이 의학과 동반자적 관계에서 학문적 진보를 이루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수의학의 진료 대상이 되는 동물은 수의사법에 의하면 소·말·돼지·양·개·토끼·고양이·가금·꿀벌·어패류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동물로 매우 광범위하지만 초기의 수의학에서는 소와 말이 주요 관심사였음은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원형료마집(元亨療馬集), 사목안기집(司牧安驥集),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醫方), 신편집성우의방(新編集成牛醫方)과 같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수의학 서적을 보더라도 동양에서도 소와 말에서 수의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의학의 시작은 마의학 혹은 우의학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처럼 마의학 혹은 우의학이 수의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물질문명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개인주의와 물질 숭배로 윤리 의식이 타락하고 인간성의 상실, 사회의 도시화, 산업화, 핵가족화로 한층 공허해지고 삭막해진 내면세계를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하였고, 여기에 애완동물이 적절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애완동물(pet animal)은 처음에 애완이라는 말 그대로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이제는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는 반려동물(companion animal), 즉 동반자적 의미를 갖는 존재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최근 발효된 동물보호법으로 대표되는 동물에 대한 복지와 윤리 문제의 부각은 문화적 충격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동물의 생명을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하도록 계몽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려 동물 문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보편적 문화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였기에 수의사는 고급 전문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방수의학

 반려 동물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고 해서 산업 동물의 중요성이 저하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구 증가와 더불어 경제적 생활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과거보다 한층 풍요로워진 식탁을 책임질 산업 동물은 수요가 훨씬 늘어나게 되었고, 관련된 산업은 경제의 일정 부분을 맡게 되면서부터 이들 동물의 질병 관리가 나라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이 광우병(일명 광우병을 수의학에서는 소해면상뇌병증이라고 한다)이나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사태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고대 문명의 융성과 몰락이 전염병의 창궐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두는 잉카문명을 문 닫게 하였고, 페스트는 중세 시대를, 20세기 초엽의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료시킨 바 있다. 전염병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농경문화의 시작과 더불어 소를 비롯한 가축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설이 비교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면에서 동물 유래 질병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니실린 혁명으로 상징되는 현대 의학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의 감염에 의하여 발생되는 전염병의 제압이라고 볼 수 있다. 항생제의 발명으로 인간을 괴롭혀 왔던 전염병에 대하여 어느 정도 해결책이 제시되면서 암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이 중요한 정복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가축에서는 여전히 전염병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자연 방목이 아닌 밀집 사육을 통한 대량 사육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에 의한 질병발생으로 귀결되는 까닭이다. 산업 동물은 경제 논리에 따라 집단 사육되므로 병든 개체에 대한 치료보다는 집단에 대한 질병 관리 즉, 예방의 개념이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구제역은 치명성은 낮지만 전염성이 강하고 경제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발생 시 근처에 있는 감염 대상 동물을 개체의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모두 도태시킴으로써 반드시 근절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만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건강과 관련하여 동물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의 관리가 더 중요한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우유, 계란, 치즈, 햄, 소시지 등 축산식품을 동물의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의무는 모두 수의사의 몫이다.

  

임상수의학

 도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병원은 대부분 반려 동물을 진료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려 동물이라고는 하나 개, 고양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하등동물은 인간과 높은 수준의 교감을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개념상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요사이는 햄스터나 기니픽과 같은 설치류, 금붕어와 같은 어류, 조류, 파충류까지 다양한 종류의 애완동물이 내원하는 사례가 많아서 이들을 다루는 전문 병원도 생겨나고 있다. 이외에도 미니 돼지, 담비, 토끼, 저빌, 새앙쥐, 고슴도치, 이구아나, 뱀, 도롱뇽, 곤충, 달팽이, 게, 해파리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동물이 애완동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동물이 애완용으로 사육되다보니 이들의 진료를 도울 수 있는 학문적 연구는 더욱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고 필요한 전문 인력의 공급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동물 병원의 관심은 개체의 치료에 있다. 개체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분야를 임상수의학이라고 한다. 임상이란 ‘병상에 임한다’는 뜻이므로 건강한 동물에 대한 예방보다는 현재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가 중요한 문제이다. 동물 병원에서 주로 다루는 개와 고양이는 전염병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사람에게서 발생되는 만성 질환과 유사한 암, 당뇨병, 신장 질환 등이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진료 기술이 사람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많다. 임상수의사의 가장 큰 가치이자 기쁨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데 있을 것이다. 경제적 수입은 부수적인 것이다. 수의과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분야가 바로 임상분야인데 우리나라에서 동물 병원 수의사가 선진국처럼 더욱 대접받는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반려 동물 문화의 올바른 정착이 선행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전염병 및 인수공통전염병 관리

 아직 우리나라에 발생하지 않은 악성 전염병이 해외에는 매우 많다. 인적, 물적 교류가 한 국가에 머물렀던 시기에는 이러한 전염병이 사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었으나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으로 날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해외 전염병의 유입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검역 기술의 개발과 정책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보루이다. 이러한 악성 전염병은 동물끼리 감염시켜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 전염되어 건강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는 인수공통전염병도 있다. 전자는 구제역, 후자는 소해면상뇌병증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하는 질병으로 볼 수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대부분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므로 동물의 질병 관리를 통하여 사람의 건강을 지킨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해면상뇌병증, 브루셀라, 탄저병, 광견병, 인플루엔자, 페스트 외에도 100여 가지 이상이 알려져 있고, 지구환경 변화, 기후변화, 급격한 인구 이동 등으로 인한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전염병이 발생한 국가에서 들여오는 축산물은 엄격한 가이드 라인에 따라 철저히 통제, 관리되고 있다.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축산물도 엄격한 검역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일례로 10년 전 북한으로 공급된 1,500마리의 한우도 사전에 모두 건강 검진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이다. 해외 전염병의 문제는 국제적으로 공동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는 전 세계에서 발병하고 있는 전염병 정보를 실시간으로 발표하며 질병 예방을 주도하고 있다. OIE는 동물의 질병을, WHO는 사람의 질병을 퇴치하려는 목적을 가진 국제기구이다. 이들 국제기구에 진출해서 세계를 상대로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수의사!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앞에서 우리는 수의학의 학문적 광범위함과 역할의 다양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동물의 질병을 진료하기 위함에 있지만 동물 질병의 특성과 사람과의 관계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동물의 질병을 예방하는 분야가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목적을 띠고 있다는 것이 수의학의 특징이다. 세계적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노출된 가운데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마냥 밝지 만은 않은 현실이지만 국민소득의 향상과 더불어 반려 동물 문화, 생명 존중 사상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되는 미래의 우리 사회에서는 수의학의 장래는 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밝은 미래에 대한 그 모든 전제는 나 자신의 계발을 통한 역량 강화라는 점을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 병 우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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