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노어노문학과 교수
            러시아 - 알타이지역연구소 소장

우리 <러시아-알타이지역 연구소>의 ‘중국-러시아-몽골 알타이지역 연구’를 아젠다로 한 연구과제가 한국연구재단의 ‘2007년도 인문한국사업(HK사업)’에서 선정되었다. 이에 HK전임 연구교수 2명과 일반연구원 6명이 2007년부터 이 지역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몽골 알타이지역 연구’는 중국의 동북3성-내몽고-신강, 러시아의 북방-시베리아-극동지역 그리고 몽골공화국을 ‘중-러-몽 알타이지역’으로 명명하고, 이 지역에 대한 총체적이고 인문학적인 기반연구를 통해 중?러?몽 알타이지역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정치적 시각에서는 주변부에 해당하나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고, 현재는 일련의 블록화 경향을 보이며, 국가 간 접경지역에서 언어와 문화, 예술과 종교, 그리고 사회와 관습 등에서 다양한 융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국가단위로 지역을 설정하여 정치적 중심부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 지역학 연구방식과는 달리, 연구지역을 초국가적 단위로 설정하고 지역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동안 본 연구소는 이 지역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개최하며, 많은 연구 성과물을 배출하였다. 여기에서는 최근 수행한 ‘러시아 알타이지역의 소수민족어 문제’에 관한 연구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절멸위기의 소수민족어 보존을 위한 노력 필요
소수민족어 연구자인 바흐찐(Mikhail Bakhtin, 러시아, 1985~1975)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6900여 개이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것이 빠르게 소실되고 있고 계속 이 속도로 진행된다면,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 600여개의 언어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바벨 탑 이전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고, 이것은 인류에게 결코 유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위기감에서 절멸위기의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절멸언어에 대한 연구가 인간의 삶과 직접 연관된 ‘의무를 다하는 언어학(『Language』1992, Vol.68, No.1)’의 한 축이 되었고, 유네스코가 ‘문화다양성 선언’을 채택(2001년)하며, 문화의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다양성에 의해 보장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유럽연합은 ‘지역어 및 소수민족어’에 관한 유럽헌장을 채택(1992년)하였고, 러시아도 이 헌장을 비준하며, 러시아연방 내에 분포하고 있는 소수민족어를 보존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소수민족이란 인구수가 5만 이하인 종족을 일컫는데, 현재 러시아 내의 민족 수는 180여 족이고, 이중 60여 족이 소수민족에 해당한다. 소수민족의 토착어를 소수민족어라 하며, 소수민족어는 50여 개이다. 이중 우리의 연구대상 지역인 러시아 알타이지역에 30여개가 분포하고 있다.
알타이지역 30여개 소수민족어의 생명력을 ‘유네스코의 언어 생명도 6단계 체계’에 가늠해 보자면, ‘I.절멸언어’ 단계에는 2개, ‘II.절멸임박 언어’는 3개, ‘III.심각한 절멸위기의 언어’는 23개, 그리고 ‘IV.절멸위기의 언어’ 단계에는 1개의 소수민족어가 해당한다. 즉 알타이지역 모든 소수민족어의 소실상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어, 소수민족에 대한 지배언어로써 작용
러시아의 소수민족어를 이와 같이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한 원인과 동기는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은 20세기 소련의 언어정책이다. 1917년 볼쉐비키 정권은 타민족들을 통합하여 다민족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을 창설하며, 러시아어와 타 민족어 간의 관계를 설정하여야 했다. 레닌 시기에는 러시아어와 타 민족어의 평등권을 인정하였으나, 1940년대부터 소련의 언어정책이 ‘타민족도 러시아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러시아어로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어는 소련의 전 영토 내에서 실질적인 유일한 국가 공식어로 기능하며, 사회의 상층부로 진입할 수 있는 언어이며, 타 민족어에 대해 권위를 갖는 상위어로 자리 매김되었다. 반면 소수민족어는 변방어, 노년층어, 비문명어로 인식되며, 사용영역이 급속도로 축소되었다.
러시아어가 상위어로 인식되며, 러시아어를 습득하여 사회의 주류집단인 러시아 문화에 편입하려는 심리적 동기도 소수민족어의 절멸을 가속화시켰다. 부모는 자녀만이라도 완벽한 러시아어 사용자가 되기를 바라고, 이에 자녀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주위에서 울려 퍼지는 민족어를 간단히 무시하고 차단한다. 자녀는 ‘나는 소수민족이 아니라,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규정하고자 한다.
 
소수민족권 지역에 외부인 대거 유입, 소수민족은 대도시로
경제적 동기도 소수민족어 소실의 주요 기제로 작동한다. 1950년대 한띄족, 만시족, 네네츠족이 거주하던 시베리아 지역이 석유?가스 산업의 요충지로 부상하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산업인들이 각 지방에서 이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어가 급속히 확산되고, 새로운 산업현장의 주요 소통어가 된 반면, 소수민족어는 가족?친족어로 사용이 제한되었다.
경제적 동기와 관련하여, 공간이동의 동기도 언급할 수 있다. 소수민족권으로 외부인이 대거유입하며, 소수민족의 비율이 점차 감소(예로, 1930년대 말 외부인에 대하여 31%를 차지했던 한띄족이 1980년대 말에는 1%이하로 감소)하거나, 반대로 소수민족이 대도시로 이동하며 민족어를 사용하는 환경과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동기에 의해 소실된 소수민족어의 복원 및 보존의 중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와 함께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의식과 정체성이 형성되면서였다. 그러나 문제는 러시아 사회에서 소수민족어가 그 어떤 ‘프레스티지(prestige, 위신)’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신의 민족어만으로는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러시아 사회에 융합하여 살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인류의 소중한 자산을 보존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명목 하에, 그 언어를 습득하여 사용할 것을 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수민족어 유지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그 언중(言衆)의 견해와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용 영역 확장을 통한 소수민족어 보존
그렇다면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소수민족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수민족 사회를 ‘이중언어 사회권’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민족어가 단지 인류 문화의 다양성, 혹은 민족적 자의식이라는 상징적 의미 이외에, 실제적인 가치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민족어의 사용영역을 러시아어에 버금갈 만큼 활성화하여, 최소한 해당 지역에서만이라도 소수민족어가 러시아어와 동등하게 공용어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최고령층 2~3명뿐인 유그어부터 2만 5천명에 이르는 네네츠어까지, 민족수와 민족어 사용자수, 민족어의 생명력, 그리고 타 민족어와의 접촉환경에 따라 민족어의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소수민족권에 ‘이중언어 사회화’ 정책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에 우리 연구는 각 소수민족권의 특성을 고려하여, 러시아어와 민족어 사이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분배할 것을 제안하였다.
 
언어생명도 단계에 따른 복원 방법
유네스코 언어생명도 ‘I.절멸언어’와 ‘II.절멸임박 언어’ 단계에 해당하는 소수민족어를 복원하여 활성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므로, 여기에서 가장 시급한 작업은 소실된, 혹은 소실되고 있는 언어를 기록하고, 문서화하여 보관하는 일이다.
‘III.심각한 절멸위기’의 언어, 예컨대 민족수가 600여 명이고, 민족어 구사자가 200여 명인 네기달어에 러시아어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고 하여, 실질적으로 러시아어가 수행하는 기능을 행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 가족?친족어로서의 기능을 복원하고 안정성을 획득하여, 아주 친밀한 사적 공간에서는 네기달어를, 공적 영역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여, 두 언어가 상보적 분포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IV.절멸위기’의 언어에 해당하는 네네츠어는 민족수가 3만 5천여 명이고, 민족어 구사자도 전체의 70%로, 알타이지역 소수민족어 중 생명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언어는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사용되고 많은 영역에서 러시아어와 같이 공식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언어이다. 따라서 네네츠족권 공공기관은 네네츠어-러시아어 이중언어자 우대 제도를 도입하고,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네네츠어 변이형들을 통일하고 정제하여, 표준적 규범을 만들고, 이것을 학교 교육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보급한다면, 네네츠 소수민족권은 ‘네네츠어-러시아어 이중언어 사회’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교육’, 소수민족어 기능의 활성화 방법
소수민족어의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교육이고, 교육은 모든 언어정책의 핵심이다. 구체적인 소수민족어 교육 방안으로는 소수민족학 전문가 양성, 소수민족어 교과서와 교구제작, 초등 교육과정에서 교육매개어로 소수민족어 사용, 중?장년층에 대한 소수민족어 교육, 비문자 민족어의 경우 문자제정, 소수민족의 문화 전승 메커니즘 구축 등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 정부와 해당 공화국, 그리고 소수민족학 전문가와 토착 소수민족들 스스로 이러한 방안을 검증하고 실행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러시아 알타이지역 소수민족어의 생명력은 제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