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배 심리학과 교수
 

생활 속의 법심리학
법심리학은 법의 이념, 제정, 적용, 집행과 관련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응용분야다. 그런데 법과 관련되지 않은 인간의 행동과 마음은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입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법과 관련된다. 심지어는 새로운 인간이 잉태되는 방식과 죽어서 사체로 처리되는 방식도 법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법심리학의 연구는 일반 심리학 연구와 내용 및 방법에서 차이가 없다. 다만 법심리학은 일반 심리학 연구들보다 더 명시적으로 법의 이념, 제정, 적용, 집행을 연구의 적용영역으로 설정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한 달 전에 경험한 사실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정도는 심리학의 연구주제다.  그런데 법심리학은 범죄목격자가 한 달 전에 본 범죄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정도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특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은 심리학의 연구주제다. 그런데 법심리학은 특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범죄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다. 또 다른 예로, 인간이 후회하지 않을 옳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하고, 불필요하거나 틀린 정보는 없어야 한다(젊은이가 결혼상대를 결정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여기서 심리학자들은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틀린 정보가 주어졌을 때, 인간이 어떤 종류의 결정오류를 왜 범하게 되는지, 그러한 결정오류를 줄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그런데 법심리학은 검사가 피고인이 유죄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변호인은 무죄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판사가 어떤 오판을 왜 범하게 되는가, 그러한 오판을 줄이거나 없애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와 같이 법심리학은 전통적인 심리학(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임상심리학 등)과 구별되는 별개의 이론, 별개의 방법, 별개의 지식으로 구성된 별개의 학문분야가 아니다. 법심리학 연구는 법과 관련성이 명시되는 상황 혹은 인간이 법과 직접 접촉하는 상황(법정, 검찰, 경찰, 교도소 등)에서 이루어지고, 해석되고, 적용되는 일반 심리학 연구다.

현대 법심리학의 발전
역사적으로 법심리학의 원조로 알려진 연구들은 증언의 정확성에 관한 것들이다. 맥킨 카텔(McKeen Cattell)은 1895년에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생들이 보거나 경험한 것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확인한 결과 대학생들의 실제 경험과 그들의 증언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경험과 증언이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증언에 대해서 대단히 높은 확신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이후에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증언이 왜 불일치하는지, 그리고 틀린 증언을 하는 사람이 왜 자신의 증언을 굳게 믿는지에 대해서 미국의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와 빌리암 슈테른(William Stern) 그리고 유럽의 알버트 폰 슈렌크-노칭(Albert von Schrenck-Notzing)과 같이 널리 알려진 저명한 심리학자들에 의해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이 연구들에 기초해서 후고 뮌스터베르크(Hugo Munsterberg)는 1908년에 ‘On the Witness Stand(증언대에서)’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였는데, 이 책의 출판을 법심리학의 효시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와 같이 시작된 법심리학 연구들은 1916년에 루이스 터만(Lewis Terman)이 경찰관 선발을 위해 지능검사를 사용하고, 1917년에 윌리엄 마스턴(William Marston)이 혈압을 측정하여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방법(폴리그라프)을 고안하면서 법심리학 연구들이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로부터 범죄수사 과정과 관련된 심리학 연구들로 확장된다. 윌리엄 마스턴은 1923년에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과학적 증거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한 소위 프레이(Frye) 기준(지문분석, 혈흔분석 등의 과학적 증거는 학계에서 그 타당성이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기준)이 판례로 정립될 때, 대법원에서 프레이 기준의 부당성을 증언하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거짓말탐지기는 당시로서는 최신의 첨단장비인데, 그 성능과 정확성에 대해 학계가 아직 잘 모르고 있어서 프레이 기준으로 과학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결정하면 자신의 거짓말탐지기는 그 고도의 과학성과 첨단성에도 불구하고 증거능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즉, 프레이 기준으로 과학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결정하면 최신의, 첨단의, 획기적인 발명이나 발견은 언제나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과학자들의 과학발전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미국연방대법원은 윌리엄 마스턴의 이 주장을 무시하고 프레이 기준을 천명하였다(과학적 증거의 증거능력 여부에 대한 프레이 기준은 1993년에 새로운 대법원 판례에 의해 바뀐다).

현재진행형, 법심리학 연구
증언(목격)의 정확성, 거짓말탐지, 과학적 증거의 타당성 판단 등에 관해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법심리학 연구들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 법심리학은 방대한 연구들에 기초해서 목격자나 피해자가 어떤 경우에, 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지, 어린 아동의 진술이 질문자가 질문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유가 뭔지, 윌리엄 마스턴의 거짓말 탐지기를 왜 맹신하면 안 되는지, 혈압뿐만 아니라 뇌파나 피부온도 등에 의해서도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는지, 판사는 법정에 제시된 증거들을 보거나 증언들을 듣고 어떻게 유무죄 판단을 하는지, 배심원의 유무죄 판단과 판사의 유무죄 판단이 정확성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범죄자의 재범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범죄자들은 왜 반복해서 범죄를 범하는지 등에 대해서 매우 많은 지식을 축적하였다. 

법심리학 발전을 위한 지원 필요
한국에서는 1995년 전후에 법심리학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법심리학은 법원, 검찰, 경찰, 교도행정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법심리학은 국민참여재판의 도입과정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배심재판의 구체적인 형식을 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고, 재판의 사실인정 (유무죄 판단)과 증거평가, 그리고 합리적인 양형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의 형을 정하는 것)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법관을 조력하고 있으며, 검찰과 경찰의 과학수사와 이상적인 교도행정을 위하여 학문적 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전문인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법심리학이 성숙된 실증사회과학 분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법심리학 연구에 전념하는 연구자 층이 두껍지 않고, 법심리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이 빈약한 형편이며, 법심리학 연구자가 사회에 진출하여 계속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화된 환경, 법심리학의 역할  
그러나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법조인 선발과 양성, 그리고 재판의 형식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광범위한 변화를 겪고 있다. 사법시험이 폐지될 예정이고, 사법연수원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지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이미 출범하였고, 공판중심주의가 도입·강화되었고,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었으며, 법관임용제도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반면에, 법조인 선발과 양성을 위한 학문적, 실무적 콘텐츠는 관념적, 규범적 법이론 위주의 주입식, 암기식 내용과 방식에서 달라진 바가 거의 없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이 모호한 상황이다. 변화된 사법제도와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법조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소양은 지식과 기술,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신뢰감과 권위, 의사결정 능력, 전문성과 도덕성, 효율성 그리고 리더십과 관리능력이다. 이러한 필수소양을 갖춘 법조인의 선발과 양성을 위한 학문적, 실무적 콘텐츠는 법학자들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없다. 법심리학은 새로운 법조인 선발과 양성 그리고 새로운 재판형식에 부응하는 학문적, 실무적 콘텐츠를 제공하고, 과학자로서의 법관 모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합리적인 사법제도의 구축과 운영을 위해 기여할 수 있고, 한국에 아직 정립되지 못한 정교한 증거규칙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