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
교수 이찬희
 
 

지난 4월 9일 인천 강화에서 발행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여 요즘 길목마다 방역에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제역은 발생한 농가뿐 아니라 인근의 죄 없는 농가에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 내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강화에서 발생한 구제역에서 전파되었는지 알아보는데 사용한 방법이 유전자 지문 검색(genetic fingerprinting)이다. 유전자 지문 검색은 대상 개체들 간의 염기서열을 비교하는 방법인데, 이러한 염기 서열 분석은 대상 개체들 간의 유사성이나 진화적 연관성 등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게놈의 염기서열, 나아가 이로부터 추론된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리하거나 분석하기 위한 도구를 개발하는 것을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이라 한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바이러스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분야가 바이러스 게놈의 생명정보학적 연구로 이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에이즈 병원체인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의 유전자 중 nef와 vif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분리된 HIV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 2007년 자료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HIV 감염자는 약 3320만 명으로 매년 250만 명이 새로 감염되고 210만 명이 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9월 현재 총 6680 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이중 1183 명이 사망하여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감염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 간의 HIV 감염 경로 등 역학적 연구를 위해 국내 감염자의 HIV 유전자 서열을 분석하는 연구는 nef 유전자를 사용하여 1998년 처음 시도되었고, 이후 국내 여러 실험실에서 후속 연구가 이루어졌다. 본 연구실에서도 2003년부터 국내 분리 HIV 염기서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6편 발표하였는데, 다른 연구와의 차이점은 본 연구에서는 공개된 모든 국내 분리 HIV 유전자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개되었다는 것은 미국의 국가생물공학센터(NCBI) 유전자은행(GenBank)이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과 같이 공인된 웹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에 염기서열이 등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우리 연구실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내 환자들에게서 분리한 HIV의 염기서열을 외국 분리주들과 함께 분자계통분류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분석해본 결과, 국내 분리주들 중 대다수가 외국 분리주와는 섞이지 않는 별도의 집단을 형성하였다. HIV는 여러 개의 서브타입(subtype)으로 나뉘는데 국내 분리주들의 대다수인 80~90%가 서브타입 B이고 이 중 약 80%가 한국 분리주들만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이를 한국형 집단이라 한다(아래 그림1에서 Korean subtype B).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내 분리주의 2/3 이상이 한국형인 셈이다. 이는 국내에 전파된 HIV가 소수의 선조로부터 유래하였거나, 아니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에 맞게 진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한국형 집단은 외국에서는 그 사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특징적이다. 이러한 것은 백신을 만들 때 고려해 볼 사항이 된다. 우리 연구에 의하면 한국형 HIV 서열로부터 얻어진 컨센서스서열은 국내 분리주들과의 유전적 변이율이 낮으며, 나아가 한국인을 위한 맞춤형 백신으로 개발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림 1. 국내에서 분리한 HIV nef 유전자 서열에 의한 분자계통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HIV를 분리한 것은 1985년이다. 따라서 국내에 HIV가 유입된 것은 그 이전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우리는 HIV의 nef, vif, 그리고 pol 유전자를 사용하여 최근공통조상(most recent common ancestor)을 유추하고, 이것이 언제 기원하였는지 추정하였다. 유전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981년에서 1984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는 어린 아이에 수두를 일으키고, 이후 체내에 잠복하여 있다가 어른이 된 뒤 몸의 저항성이 떨어지게 되면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 수두는 전신의 피부·점막 등에 작은 수포(물집)가 생기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수포창(水疱瘡) 또는 작은마마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B형 간염, 일본뇌염 등과 함께 제2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고, 생후 12~15개월의 모든 건강한 소아 중 수두를 앓은 적이 없거나 예방접종력이 없는 경우 접종을 권장하고 있는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수두 백신은 약독화된 생백신으로 전세계적으로는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오카(Oka)주로부터 유래한 바리박스와 바리릭스가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4년 (주)녹십자에서 세계 두 번째로 개발에 성공하여 ‘수두박스’라는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 WHO 산하기관인 PAHO(범미주보건기구)에 2010년 공급분으로 미화 1040만불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수두박스 백신 바이러스의 체계적인 학술 연구가 필요한데, 본 연구실에서는 (주)녹십자의 의뢰로 수두박스 백신 바이러스인 MAV/06주의 전체 게놈 서열을 분석하고 있다. 모든 결과가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MAV/06주는 전체 xxx개의 염기를 가지고 있으며, 74개의 유전자를 암호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를 분리하면 그 유전자형을 알아보는데, VZV의 유전자형은 세 가지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적용하여 보았을 때 MAV/06주는 오카 유래 백신주인 바리박스나 바리릭스와 같은 유전자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MAV/06주가 한국인에서 분리된 바이러스임을 감안한다면 일본 유래주인 오카주와 같은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설명될 수 있다(그림 2).

 
그림 2. 수두백신바이러스 MAV/06주의 유전자형

수두백신은 사백신이 아니라 약독화된 생백신이다. 생백신은 환자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사람세포와 기니피그세포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계대배양에 의해 얻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백신바이러스는 병원성바이러스와 구분되는 돌연변이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병원성바이러스와 백신바이러스의 염기 및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하면 어떠한 돌연변이가 약독화의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21개의 병원성바이러스와 MAV/06주를 포함하는 4개의 백신바이러스의 전체 염기서열과 74개 유전자의 아미노산서열을 비교하는 작업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예를 들어 ORF0 유전자에서 모든 병원성바이러스는 TGA 정지 코돈(stop codon)을 가지고 있는데 백신바이러스는 4종류 모두 T가 C로 돌연변이 되어 정지 코돈이 없어진 것을 알 수 있다(그림 3).

그림 3. 수두바이러스의 ORF0 염기서열 비교

 이외에도 200군데 이상에서 MAV/06을 포함하는 모든 백신바이러스끼리는 서열은 같지만 병원성바이러스와는 다른 곳이 발견되었다. 이 때 20종의 병원성바이러스들끼리는 모두 또는 대부분이 같은 서열이었다. 따라서 이런 부위를 좀 더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 유전자의 기능을 연관시키면 어떤 이유로 백신바이러스의 약독화가 이루어졌는지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백신주인 MAV/06주와 일본 오카 유래 백신주의 차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백신주만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부위가 약 100군데 발견되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국내,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로 허피스바이러스의 일종인 인체세포거대바이러스(human cytomegalovirus)를 환자로부터 분리하여 총 235477bp의 염기서열을 획득하여 분석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염기 및 아미노산서열을 분석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