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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13개 단과대학 릴레이 학술강좌: 범죄와 형벌, 그리고 평균인
제 838 호    발행일 : 2011.10.17 

이승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광주인화학교에서 발생한 무정하고 잔인한 성범죄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무서울 정도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도가니법’을 발의하고, 해당 자치단체와 관할 교육청에서는 인가취소를 예정하고 있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이고, 어떻게 처벌하여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필자(筆者)로서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복잡미묘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법이론에 비춰볼 때, 가해자와 피해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정의의 균형점을 찾은 상식적인 법의 모습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호에서 주로 범죄와 형벌에 관한 형사법(刑事法)을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법학과 법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법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따분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벽돌처럼 무거운 법서와 깨알같은 글씨로 새까맣게 쓰여진 법전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아마도 평범한 대학생이 법학을 바라보는 보통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법학(jurisprudentia)은 로마에서 시작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연구된 근대학문이며 지극히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학문이다. 여기서 법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법(法)은 여러 정의가 가능하겠으나, 인간사회에서 올바른 것을 지향하여 정의와 형평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두 이러한 법의 영역 내에서 생활하며,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모두 법적 규율 내에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강제력을 가지는 법은 사람들에게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눈을 뜨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귀가 후 컴퓨터로 트위터를 하는 동안 수많은 공·사법상의 법률관계(法律關係)가 발생한다.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적용되는 수많은 법률 속에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확정짓고, 조화로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법학의 임무(任務)이다. 이러한 법학은 다루는 법현상이 무한한 만큼, 법철학, 법사학, 법사회학 등 기초법학에서부터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행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국제법, 국제사법, 노동법, 경제법 등 매우 방대한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인터넷, 배아복제 등 문명의 이기와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법현상과 법적 분쟁의 해결을 위해 그 영역이 확대, 발전되어 가고 있다.
사회가 있는 곳에는 항상 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10월 5일 기준으로 1개의 헌법과 1211개의 법률에 대통령령 등 기타의 법령을 모두 합하면 4124개가 존재한다. 이처럼 무수한 법령 중에서 형사법(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 등)은 사형, 벌금 등 형벌을 통해서 범죄자를 처벌하고 죗값을 치르게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평온한 공동체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역할을 하는 영역이다. 여기에도 독일의 법학자 라드브루흐(G.Radbruch)가 주장한대로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의 이념이 온전히 반영되어 있다. 법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의 필요가 아니라 정의로운 법을 국민이 얼마나 잘 지키느냐이다. 즉  법이 법으로써 정당한 효력을 갖기 위해서 지향해야 하는 바는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균형적 추구, 공동체의 표준과 가치관을 반영하여 제정·실시되는 법질서, 법 자체의 안정과 그를 통한 사회질서의 안정인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특히 형벌이 규정되어 있는 법률을 위반한 경우 범죄자가 된다. 형법은 이러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연원(淵源)으로 범죄의 성립요건과 그에 따른 형벌 또는 보안처분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며, 형사소송법은 성립된 범죄를 수사하고 재판하여 형을 집행하는 절차를 규정한 법이다. 범죄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보호를 위한 필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형법전에 규정되어 있는 법적 금지가 누군가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살인죄는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라드브루흐가 지적한대로 형법개정과 인간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된다.
과거 실증주의의 대표학자인 롬브로조(C.Lombroso)는 범죄인은 생래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들에 대한 처벌은 무의미하다고 역설하였다. 예컨대 강간범들은 반짝이는 눈과 뚜렷한 인상, 부푼 입술과 눈꺼풀, 빈약한 체격, 아주 검은 머리색 등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롬브로조의 이러한 귀납적 분석은 범죄의 원인 규명에 과학적 접근을 요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범죄가 단순히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원인에 의해 복잡한 기제를 통해 발생한다는 점을 간과하여 이제는 극복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사정책적 접근 외에 이론적으로 형법을 바라보면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린다. 법학은 실정법을 토대로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한다. 형법은 제129조 제1항에서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행위에 대해 수뢰죄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누가 공무원인지, 직무의 범위는 어디인지, 선물과 다른 뇌물의 기준은 무엇인지, 대가관계가 필요한 것인지 해석상 해결되어야 한다. 형법이론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전에 규정되어 있는 금지행위를 실행하여야 하며, 그러한 행위가 정당방위처럼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범죄행위가 아닌 합법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구조에서 형법의 대원칙들이 도출된다. 국가의 형벌권이라고 하더라도 범죄로 법전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만 발동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범죄자의 행위에 상응하는 법적 비난으로서의 형벌이 가해져야 한다. 이것이 형법을 관통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와 책임주의 원칙이다. 여기에 불구속재판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등 절차법적 원칙이 보장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러한 형사법의 대원칙들이 외견적으로는 범죄자들을 마치 ‘비호’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강호순, 정남규가 검거되자 얼굴을 공개하라는 항의가 경찰에 빗발쳤으며 결국 중대사건에 한정하여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언론도 공개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죄형법정주의와 책임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문제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형벌은 범죄에 대한 법효과로써 범죄자에 대한 법익박탈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형벌이 국가가 범죄자에게 가하는 ‘해악’으로 이해되기도 했으나, 형벌의 근본적 목적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법적 비난을 통해 개선과 교화를 이루고, 범죄자를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데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범죄와 범죄자들을 대할 때, 형벌의 의의와 형사법의 대원칙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명국(文明國)의 형사법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법의 총체적 체계, 법체계는 사회통제, 부의 재분배, 개혁, 교육기능 등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우리 대학생들의 올바른 법의식이 확립과 성장이 요구된다. 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한 정당한 법률의 개정과 제정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정당한가’이다. 그리고 그 정당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이제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다. 후진적인 형사법체계에서 범죄자의 인권보장, 형사사법절차상 피해자의 위상 확립, 과도한 특별형법의 축소 등을 통해 우리도 선진 형사법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바람직한 모습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청년들의 건전한 법의식을 통해서이다.
형법은 사회 평균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국민의 준엄한 위임을 받아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들도 결국에는 편견없는 평균인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형사법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법률의 개정 내지 특별법의 제정이 이루어져 왔다(대표적으로 이른바 혜진·예슬법, 사회보호법).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자신의 형사책임의 상한을 넘어서는 형벌과 사회적 낙인을 받아온 범죄자들도 적지 않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만들었던 그 악명높던 청송감호소는 자신이 받아야 할 형벌의 상한을 넘어 보호감호를 받은 13413명 중 수많은 이들의 무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폐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형법의 영역에서 법률이 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징 입법’은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인들의 여론몰이에 마녀사냥식으로 형사제재를 강화하는 식의 조치는 의미가 없다. 이성적(理性的)인 형사정책은 사후적 형사처벌과 교정이 아닌 사회구조적 시스템의 변화에 기초한 사전적이고, 거시적인 형사정책이지 대증적(對症的)인 범죄대책이 아니다. 범죄자를 희생하는 ‘법익침해를 통한 법익보호’ 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경도(傾倒)된 형법의 위험성과 범죄기준의 상대성을 인혁당사건, 5·18특별법 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경험해 왔다. 범죄자는 ‘전쟁과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형법은 최초수단(prima ratio)가 아니라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이어야 한다.
63빌딩에 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엇이 보일까? 법학자의 입장에서 답하자면 ‘권리와 의무의 주체와 객체가 보인다’이다. 즉 무수한 사람과 동산, 부동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이웃, 평균인이 서 있다. 불행한 형법의 시대를 벗어나 문명국의 형사법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평균인, 즉 건전한 법의식을 가진 국민들이 감시·견제자가 되어야 한다. 정의로운 법, 공정한 법은 국민들의 올바른 법의식과 고양된 법문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법률만능주의가 아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건전한 법의식을 소유한 국민들의 관심과 행동을 통해 예측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역할은 미래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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