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13개 단과대학 릴레이 학술강좌 : 인문학
한국 근대소설 연구와 주체의 자기 인식
국어국문학과 박진숙 교수
1. 소설, 소설연구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설 원론』 같은 제목을 취하고 있는 책에서도 소설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설들을 모아놓고 그 특징을 귀납적으로 정리하여 얻어낸 답이 가장 적절한 것이라 밝혀놓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소설이 무엇인지를 정의해보자면 ‘소설은 한 시대의 정신을 간파한 작가가 평범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서사적 방법으로 형상화한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 연구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작가론 혹은 주제론. 작가론은 작가의 전기적 사실부터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작가 생애의 모든 사실과 작가의 글쓰기 결과물에 근거하여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하나의 시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연구이고, 주제론은 특정한 주제가 구현되어 있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그 주제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연구이다.
작가론은 한 작가의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그의 내적 고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연구이다 보니, 작가론 한 편을 쓰고 나면 대상 작가에 대한 애정이 무한히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작가론은 들인 시간과 노고에 비해 결과물로 나타나는 수확은 크게 평가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주제론은 주제를 무엇으로 삼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 주제가 중요한 것일 경우 각광받을 확률이 매우 높은 연구이다.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제론의 경우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작품을 모아 연구하다보면, 다른 작가가 각기 다른 시대에 쓴 작품들을 가지고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연구를 진행하는 데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꽤 까다롭기 때문에 예상될 만한 문제점을 차단하며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좋은 연구가 될 수 있다.
2. 한국 근대문학과 일제의 동화정책이라는 주제
필자가 주로 하는 연구는 한국 근대문학 작가론이거나 주제론이다. 특히 최근 주목하고 있는 연구는 ‘한국 근대문학과 일제의 동화정책’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에 착안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하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품고 있었으나 해소할 수 없었던 의문, 즉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는 왜 가장 한국적인 작품인가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사 강의에서 식민사관 즉 정체성론, 타율성론, 일선동조론에 대해 배웠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과 이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제 강점기 문화담론에서의 ‘조선적인 것’의 형성>이라는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일제의 식민정책 중 하나인 고적조사사업에 대한 자료를 검토할 때였다. 그 중에는 무속조사사업에 관련된 논문도 있었는데 이를 보며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한국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맥락을 일제의 동화정책 중 하나인 무속조사사업과의 관계에서 해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논문으로 쓴 것이 「한국 근대문학에서의 샤머니즘과 ‘民族誌(ethnography)’의 형성」이었다.
이 논문에서 주로 밝힌 것은 샤머니즘 혹은 무속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사회 문화적인 담론의 장에서 파악하여 샤머니즘이 어떻게 우리 근대문학에서 민족지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제의 동화정책인 무속조사사업의 문학적 전유가 이를 가능케 한 것이었는데, 일제는 식민지 통치기술로서 민족지를 시작했지만, 김동리는 그에 맞서는 대항 민족지로서 소설을 통해 이를 실현했던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 김동리의 <무녀도>가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납득이 되었다.
일제의 동화정책 중 하나로 행해졌던 무속조사사업과 고적조사사업에 관한 논문을 쓰고 나니 일제의 동화정책과 한국 근대문학이라는 주제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식민사관이라는 것을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구현하고자 하여 어떤 부분은 그대로 행해지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은 다른 반작용들을 낳기도 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검열이 혹독하게 이루어지던 식민지였다고는 하나 지식인 혹은 작가들의 시대 인식이 어떻게든 소설 텍스트 속에 나타나 있지 않았을까. 주체의 자기 인식이란 지배와 피지배의 형태를 띠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더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또 소설이야말로 이러한 길항작용을 담기에 가장 적절한 장르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책 한 권을 써보리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 주제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저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반드시 책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이 한 군데로 집중되다 보면 소설 텍스트가 다 그렇게만 보이는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덤불속>과 김남천의 소설 <장날>을 비교분석하는 논문을 쓰던 중 예기치 않았던 수확을 얻게 되었다. ‘텍스트로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개최될 학술대회의 주제 발표를 하기 위한 논문을 쓰고 있던 중이라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의 동화정책과 관련된 어떤 것을 얻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텍스트 분석을 위해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이 작품이 일제의 동화정책 중 하나인 조선 농회 확대과정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김남천의 소설 <장날>은 193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소설 끝부분에 “이 한 편을 芥川龍之介의 靈에 바치는 것은 나의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라는 부기가 쓰여 있기도 하고, 이 부기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 작품을 읽어보면 누구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덤불속>은 살인사건 하나를 둘러싸고 주요 인물 세 화자가 모두 자신이 남자를 죽였다고 하는 방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부수적인 인물의 자기 고백적인 내용까지 모두 저마다의 입장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결론은 그래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귀결된다. <장날>은 한 남자가 죽었고 살인자는 누구인지 이미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각각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덤불속>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동일한 것은 복수초점화라는 소설의 기법이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7명의 화자가 각기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복수초점화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수초점화에 대한 이론적 서술은 제라르 쥬네트의 『서사담론』(권택영 역, 교보문고, 1992)에서 이루어지고 있거니와 서사의 빈도(Frequency) 부분과 복수 초점화 두 군데에서 영화 <라쇼몽>을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영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속>과 <라쇼몽>에 근거하여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만든 작품이다. 물론 시나리오는 무명작가 하시모토 시노부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에게 가지고 온 것이었다. 1951년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제라르 쥬네트에게도 복수초점화의 적절한 예로 포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복수초점화의 예로 거론될 만한 다른 한 편의 소설을, 김남천이 써서 한국 근대문학사에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복수초점화를 재현하면서 김남천이 굳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처럼 불가지론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음은 소설을 읽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장날>에서 서두성을 죽인 자는 축산기수 김종칠로 명시되어 있다. 축산기수란 당시 농회를 운영하는 주체였다. 서두성은 농민으로서의 존재 기반인 소를 팔겠다고 장날 우시장에서 소 거간꾼을 만나 헐값에 팔고는 축산기수를 죽이려다 살해된다. 그 과정을 묘사하는데 농회 사무소의 역할과 농회 서기에게 소 시세를 묻는 장면 등이 그려진다. 그리고 서두성의 농민으로서의 불안의식을 강조라도 하듯, 예쁜 아내 보비가 축산기수 김종칠과 모종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서술자의 전략이 드러나 있다.
일제는 1932년 7월부터 농촌진흥운동을 정책적으로 펼쳤는데 농촌 재편성을 위해 조선 농회, 축산협동조합, 삼립조합 등으로 나뉘어 있던 기존 농업단체의 통합 정리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소작인이라 하더라도 가축을 사육하는 자는 농회원으로 하며 농회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당시의 농회령은 겉으로는 사회적이고 자치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강제 징수로 인해 소작인의 원망을 사고 있었던 것을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김남천의 소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장날>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속>과 유사한 구조를 취해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장날>을 쓴 김남천의 문제의식은 조선 농회의 횡포와 농민의 뿌리뽑힌 삶을 드러내는 데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7명의 화자를 통해 복수초점화하는 구도를 취하여 사건을 조각조각 끼워맞추게 한 후, 사실은 축산조합이 조선 농회에 해체 통합된 사정과 그 가운데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뿌리뽑힌 농민의 삶 재현이 이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인 것이다.
김남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4. 소설과 주체의 자기 인식
소설은 허구이지만, 진정성을 표방한다. 사실은 아니지만 세계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 근거한 진실을 말한다. 필자가 여기서 제시한 글의 흐름은 자칫 필자의 연구 과정을 서술한 듯하지만, 연구자라는 주체, 소설을 쓰는 주체인 소설가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펼쳐놓기 위한 서술적 전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제의 동화정책과 한국 근대문학이라는 주제는 필자가 지금 갖고 있는 문제의식의 투영이라는 점에서 연구자라는 주체의 자기 인식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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