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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단과대학 릴레이 학술강좌: 사회과학 한국 선거에 얽힌 패러독스, 왜곡, 착각
제 845 호    발행일 : 2012.03.31 

13개 단과대학 릴레이 학술강좌: 사회과학
 
한국 선거에 얽힌 패러독스, 왜곡, 착각
 

정태일(정치외교학과 교수)
 

2012년은 선거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에는 제19대 국회의원선거가 있고, 12월에는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선거이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데,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선거하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선거를 정치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선거는 축제라기보다는 온갖 병폐의 집합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선거와 관련하여 한국의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는 선거에 대하여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보여주는 패러독스
한국에 있어 선거는 후보자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을 만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유권자들은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과정에서 유권자나 후보자 모두는 선거법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국민들은 선거 시작과 동시에 적법이냐, 위법이냐 하는 암초에 직면하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는 누가 당선되느냐 하는 것에만 집착한다. 후보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선되어야 하는 것이고, 유권자는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낙선시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선거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패러독스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이다. 말하자면 두 가지의 상반된 것을 말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선거가 있으면 당연히 당선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선거운동에서는 항상 당선을 위한 위법과 적법이 공존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위법이고, 어찌 보면 적법인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논란이 되었던 투표 독려운동에 관한 문제이다. 그 당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일반인이 단순한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는 가능하지만 투표 참여를 권유·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하도록 권유·유도하려는 것으로 의도되거나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정당·단체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에 근거하여 방송인 김제동씨가 고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제동씨는 그 당시에 “퇴근하시는 선후배님들과 청년 학생 여러분들의 손에 마지막 바톤이 넘어갔습니다. 우리의 꿈을 놓지 말아주세요”라는 투표 독려운동을 하였다. 이에 고발인은 “선거일에 김제동 씨가 명시적으로 박원순 후보를 뜻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박원순을 지지하는 김제동 씨가 ‘투표독려’ 글 등을 올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당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처럼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는 투표 독려운동은 어떤 경우이든 가능한 장려되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가 시작되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투표독려를 한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하는 투표독려가 문제라면, 선관위가 하는 투표독려는 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반인이 하는 투표독려는 특정인의 당선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측면이 있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하는 투표독려는 특정인의 당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인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고발된 김제동의 투표독려(좌)와 합법인 선관위의 투표독려(우)


또한, 한국의 선거에서는 끊임없이 현직 프리미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선거에 있어 현직이든, 아니든 똑같은 후보자로 평등하지만 선거운동에 있어서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현직에 있는 후보자는 현직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하여 의정보고회, 각종 회의 등을 통해 유권자와의 접촉하면서 직·간접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정치신인은 각종 선거법에 묶여 현역 정치인에 비해 현격하게 불리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도 선거 패러독스는 존재한다. 당선을 위한 노력에는 누구나 평등하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불평등한 것이다. 마치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고 말한 것처럼 “모든 후보자는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후보자는 다른 후보자보다 더 평등하다”는 것으로 평등 속에 불평등이 존재함이 당연한 것처럼 한국 선거에서는 여겨지고 있다.

 

선거인식에 대한 국민의 왜곡
선거 때만 되면 언론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얼마나 작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양한 예측을 하면서 지역주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마치 한국에서 지역주의가 특정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혹은 그 지역 출신인 사람들에게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갖는 좋지 않은 생각이나 편견인 것처럼 왜곡한다. 그러다보니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은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지역주의가 곧 지역감정이 되어 버리곤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어떤 종류의 선거이냐에 따라 투표양상이 지역에 따라 심하게 쏠림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지역발전에 대한 열망이 중요한 변수이지 국가의 백년대계가 관심사항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선거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정당은 정책과 가치에 기반을 두고 선거를 치루기보다는 지역정서에 기반한 선거에 치르다보니 때로는 국민들을 분열시킨다. 마치 각 정당들은 우리 정당만이 지역발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무조건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당이 정책과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지역 세력기반에 생사를 걸고 있다.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선거에서 우리는 지역주의를 지역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 때 충청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로지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이라는 지역 공약만으로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도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후보에게도 표가 몰렸다. 이는 영호남 지역주의에 비해 이념성이 약한 충청권이 지역발전에 근거한 지역주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에 1995년 김종필은 민주자유당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탈당한 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당시 김윤환은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김종필을 비판했다. 하지만 충청도 민심은 김윤환의 ‘충청도 핫바지’ 발언에 격앙되었다. 이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은 충청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지역발전에 근거한 지역주의가 아닌 지역감정에 따른 결과이다.

 

지역발전과 관련된 지역주의(좌)와 지역발전과 관련없는 지역감정(우)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착각
우리는 당선되기 위해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公約은 空約’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때만 되면 모든 후보자들은 마치 유권자들의 희망을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 불가능이란 것은 없고, 오로지 가능한 것만이 존재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후보자들은 당선을 위하여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에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본질적인 모습에 대해 착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선거 이후에 잘못 뽑았다고 후회를 한다.
물론 우리는 올바른 후보자가 당선되도록 노력을 한다. 선거 때마다 소위 매니페스토운동을 전개한다. 매니페스토운동이란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서 가장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자에게 투표하자는 것이다. 또한 당선자가 임기 동안 자신이 제시한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에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권자인 우리는 선거가 시작되면 후보자에 대해 근거없는 착각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그 유명한 ‘747공약’을 내세웠다. ‘747공약’은 경제대통령이라 자랑하던 이명박 후보자의 핵심적인 공약으로 “연 7% 경제성장으로 3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0년 내 4만 달러 소득을 달성하여, 10년 내 세계 7대강국으로 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4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1%, 물가상승률은 3.6%에 달했다. 이는 지난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5년에 비해 성장률은 1.25%p 떨어지고, 물가는 0.67%p 상승하였다. 또한 연간 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과 달리 4년 동안 86만 8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서 3분의 1 수준에 그쳤고, 5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나 10년 내 세계 7대 경제 대국에 진입하겠다는 약속은 2012년 예상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과 세계 14대 경제국가로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이명박 후보자가 약속한 ‘747공약’은 국민들에게 성공한 경제인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착각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한국의 정치문화는 말 그대로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우리는 선거를 통해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교체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국민은 플라톤이 말한 정치인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 선거와 관련된 패러독스, 왜곡, 착각은 분명히 국민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 각자가 자신이 속한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가 선호하는 가치와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표를 던지는 선거가 되기를 희망하여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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