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13개 단과대학 릴레이 학술강좌 : 경영학
기업윤리(Business Ethics)의 재발견
김찬중
경영학부 교수
기업의 수명
기업의 평균 수명은 얼마일까?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여 년, 한국 기업은 26년, 유럽 기업은 12~13년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기업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그 수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수기업도 존재한다. 개별기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기업은 사천왕사(四天王寺·시텐노지)라는 사찰을 건설하기 위하여 백제인 유중광(柳重光·곤고 시게미쓰)에 의하여 서기 578년에 설립된 일본 오사카의 건설회사인 곤고구미(金剛組)로 이 회사는 무려 1434년 역사를 자랑한다. 세계적으로는 5년 전인 2007년 현재 창립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5586개로 집계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최고(最古)의 기업
그렇다면 한국 최고(最古)의 기업은 어디일까? 세계 최고의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Guinnes Book of Records)에 의하면 1896년 서울의 종로4가에서 동대문에 걸쳐 있던 배오개에서 포목 도산매점인 ‘박승직상점’으로 출발한 두산그룹이 한국의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116년의 역사를 지닌다. 창립 후 ‘박승직상점’은 1907년 일본인과 합작으로 면포를 수입하는 회사를 세웠고, 1920년에는 화장품 제조업에 진출하여 박가분(朴家粉)을 생산하여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1933년에는 일본인 소유 맥주회사인 소화기린맥주에 주주로 참여하였고 해방 후 이를 인수하여 브랜드는 OB로, 회사명은 동양맥주주식회사로, ‘박승직상점’도 두산산업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두산그룹은 현재 33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달 발표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회사 현황 자료에 의하면 국내 재계 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최고(最古) 기업과 페놀
그렇다면 두산그룹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산전자에서 촉발되어 그룹 전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산전자는 인쇄회로기판, 특히 모바일, 컴퓨터 회로기판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1991년 3월 14일 경북 구미공장에서 원액 저장탱크 파이프 고장으로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페놀원액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페놀은 염료, 살균제, 구강마취제의 원료로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과거 나치 독일에서는 안락사용 페놀의 사용 기록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페놀원액이 인근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되어 대구, 부산, 마산, 창원 지역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악취를 유발하였다. 이에 따른 조사에 이어 비상대책수립, 조업정지를 거쳐 4월 22일에 조업이 재개되었으나, 지상 파이프 이음새 고장으로 페놀원액이 추가로 유출되어 4월 23일부터 18시간 이상 급수가 중단되었고 회사도 2차 조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또다시 낙동강 수계 1천만 주민이 심각한 수돗물 악취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신뢰의 붕괴
두산전자 페놀사건에서 국민들을 가장 분노케 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일차적으로는 페놀 방류로 인한 식수원과 환경오염에 있지만, 더 큰 요인은 두산전자의 부적절한 조치와 대응, 특히 신뢰를 저하시키는 비윤리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첫 번째 페놀 방류사고 조사 결과, 사건 이전인 1990년 10월부터 이미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폐수를 낙동강 지류에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나 두산전자의 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과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연이은 2차 페놀 유출사고에 따라 그룹의 회장이 사임하고, 정부에서는 환경처 장차관이 인책, 경질되기에 이르렀으나 이미 윤리성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그룹 제품 전체에 대한 전국적 불매운동 확산으로 두산그룹은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페놀 유출 사건은 기업들의 안일한 환경정책과 비윤리적 기업경영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각인되게 되었다.
기업윤리의 재인식
그러면 이러한 두산전자 페놀 방류사건은 구체적으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고 당시 두산그룹은 페놀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련 임직원 처벌, 220억 원의 지역사회 기금 출연, OB맥주의 하이트맥주에 대한 시장점유율 선두 허용 등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국내기업의 기업윤리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다시금 고조된 점은 주목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국내 대기업보다도 일찍이 기업윤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한 두산그룹은 적절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기사회생하였고, 그로 인해 IMF 구제금융 시기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국내 기업들도 기업의 장수와 지속가능경영의 필수 요인으로 기업윤리에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윤리와 국제표준
기업윤리는 이제 국제 상거래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이는 국제 상거래에서의 윤리적 가치를 중시하는 각종 국제표준이 제정·적용되고 있는 점만 보아도 자명하다. 대표적으로 OECD의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행위 방지를 위한 협약’은 외국에서의 뇌물제공행위가 현지법에 의해서는 처벌되지 않아도 국내법으로 처벌토록 규정함으로써 해외 기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ISO 26000’은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으로서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계와 정부 등 7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거래, 소비자 이슈, 공동체 참여 및 개발 등 7대 의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실행지침과 권고사항을 정하고 있어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러한 국제표준의 영향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기업윤리의 본질
기업윤리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한다면 ‘기업 활동에 관계되는 의사결정에 적용되는 선악·시비(善惡·是非)의 구분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업윤리는 응용윤리로서 기업경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구분해 주는 규범적 판단기준과 도덕적 가치와 관련된 의사결정의 기준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업윤리에 대한 초기의 시각은 기업윤리는 그 말 자체가 하나의 모순어법(oxymoron)이라는 힐난이 있어왔으나 최근에는 기업윤리는 결코 일시적 유행(fad)이 아닌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처럼 기업윤리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으로 인하여, 기업경영에서 이러한 기업윤리를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윤리경영(Ethical Management)이 많은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다.
기업윤리의 효과성
기업윤리는 과연 기업의 성과와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업윤리의 실천은 일반적으로 비용을 수반하는데 과연 기업윤리가 기업의 가치를 높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척도로 주가를 꼽을 수 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주가는 그 기업의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윤리적 기업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주장이 사회적 책임성 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SRI) 이론이다. 이 이론이 지지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실증연구결과에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 1976~1989까지 13년간 미국 다우존스공업평균 수익률은 174% 상승한 반면 30개의 윤리적 기업으로 구성된 착한기업공업지수(Good Money Industrial Average: GMIA) 수익률은 무려 647%의 상승을 보였다는 분석결과는 윤리적 기업의 가치 증대를 반증한다.
기업윤리의 학문적 접근
그렇다면 기업윤리에 대한 학문적 접근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규범적 접근과 실용적 접근의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규범적 접근은 전통적 윤리분야의 연구성과를 기업경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접목시키면서 행동, 태도의 판단기준 자체에 초점을 두는 접근법으로 이러한 방법에서는 윤리의 본질, 기업 목적과 윤리, 윤리의 주체, 윤리적 가치판단의 기준 등을 강조한다.
실용적 접근은 전통적 윤리분야 연구에 기초하면서도 조직이론 또는 행동과학의 연구 성과를 흡수하여 경영자의 도덕적 가치관과 기업경영에서의 의사결정에 초점을 두는 접근법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나 전체 사회에 이익을 주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의사결정에 연구의 초점을 두며 기업윤리를 기초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거시수준의 영역에까지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 경우 기업은 그 효율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사회로부터 경제적 기능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그 위임받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가 그 바탕에 존재한다.
경영학과 기업윤리
기업윤리는 학문적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점증하고 있는 시대적 요구와 학문정립의 필요성에 따라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기업윤리가 연구되기 시작하였으며, 학문적 영역으로 보면 신학, 철학,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경영학 내에서 기업윤리는 이제 경영의 하위 기능에 이르기까지 연구영역을 확장하면서 학문적 체계가 세밀하게 정립되어가고 있고, 더불어 국내 각 대학에서는 그 중요성과 학문적 위치로 인하여 기업윤리 과목을 주로 경영학 4학년 전공으로 편성하여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영학의 주된 연구 대상인 기업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공감(consensus)의 형성과 기업윤리의 국제표준(global standard)화로 인하여 이제는 기업 윤리가 국제적인 상관례 및 기업경영의 핵심요인으로 정착되어가고 있음을 반영한 경영학 교과 편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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