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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의 초대
제 855 호    발행일 : 2012.11.19 

현재 대학교육과 인문학 소외현상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은 학문 연구 기관에서 취업과 연관된 기관으로 의미가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등학교 이후 진로를 선택할 때 우리는 각자가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보다는 앞으로 찾아올 취업 기회를 바탕으로 선택하는 경향이다. 과거의 명문이 오랜 학문 전통과 우수한 교육 기회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유인했다면, 이제 새로운 ‘명문’은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인하고 있다. 이런 모든 판단에서 우리는 당연하게도 높은 보수가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보수가 항상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삶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돕기 위해 인문학이 존재한다.
인문학 중에서도 문학은 최근 들어 더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문학이 기피 대상이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이 언어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가 가진 보편성만 의존한 나머지 언어의 특수한 사용을 다루는 문학에 대해서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특히 국어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일상에서 의사소통에 불편만 없으면, 그걸로 언어 습득을 마친 걸로 여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의 이면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강압적인 독서 경험과 문학 체험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학은 배워야 하는 것이었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정답이 존재한다는 점이 문학을 더 낯설게 만든 것이다. 또한 이런 판단과 반대로 문학은 여가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학은 재미와 오락성에 기반을 둔 ‘가벼운 것’이거나, 혹은 시대의 고증을 받느라 현재와 긴 격차가 난 다소 낯선 것 둘 사이에서 방황하곤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는 트라우마이거나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고등학교의 문학 교육은 실은 대학에 진학한 후 우리가 현재의 새로운 문학을 만나기에 앞서 전례로써 경험을 주기 위한 고전의 습득에 가깝다. 이는 고전을 통해 일반적인 문학관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문학교육의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는 문학에 일반적인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가장 보편적인 ‘길’을 알려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익혀야만 좀 더 독자적인 자신만의 길도 개척 가능한 것이다.

 

대학생이 현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독서는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독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수행 과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독해와는 다른 고도의 종합적인 지적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메시지를 수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맥과 문장을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그 메시지는 다양한 문학적 도구로 암시와 상징과 비유를 통해서 숨어 있다. 이런 숨어 있는 메시지를 읽는 연습은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강화한다. 이는 갈수록 원초적이고 단편적인 사고를 하고 감각에만 의존하는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문학 역시 독서를 통해 갈고 닦아야 한다. 독서를 통해 습득하는 사고력 강화는 그 활용이 더욱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문학 독서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사고 그 자체를 단련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무엇이 현대 문학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배경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내용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많은  문제가 이 부근에 숨어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 문학을 통해 우리가 재미 외에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저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현대라고 부르기 때문에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들을 현대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막연한 시대 구분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면과 정신의 차이가 현대 문학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다른 문학이 아닌, 현대 문학을 강조하는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건 바로 현대 문학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 정신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근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짙은 현대성을 느낄 수도 있고,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작가에게서도 강한 현대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현대 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대 문학은 우리에게 쉽게 공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기의 작가와 같은 시기의 작가가 같은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우리는 같은 시대에, 같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작가를 통해서 우리의 시대 정신을 더욱 견고히 한 후에 다른 시대를 넘어가는 편이 더욱 편하다.
물론 고전 작품에서부터 현대 문학까지 올라오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정규 교육 과정과 독서는 그걸 권장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접근은 논리나 체계의 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해야 한다는 식의 압박이 생기기 마련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만족을 줄 수 있는 보다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대장정을 할 필요는 없다. 형을 먼저 소개받든 동생을 먼저 소개받든 그 순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을 어떻게든 안다는 점이다. 
대학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당장 자격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실용서도 아닌 문학 독서를 권장하는 까닭은 그것이 당장 한 줄의 스펙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접하는 실용서나 처세서는 결국은 타인이 경험하고 습득한 지혜나 지식을 통조림처럼 간편하게 사용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가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는 그 사람이 책을 써서 공개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며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럼 그런 지혜는 어떻게 습득하는 것일까. 그것은 경험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저자의 삶을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엑기스는 그 책을 보는 간접 체험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문학은 인간을 거의 직접 체험에 가까울 정도의 간접 체험으로 데려간다. 그 체험의 수준은 독서 경험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면 거의 직접 체험한 정도까지 가게 만든다. 대개 소설은 한 인간과 인생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편의 정돈되고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통해 한 생애를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의 경험은 유한한 인생에 폭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얻는 감정과 느낌과 생각은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 된다. 이런 감정 체험은 소설을 비롯한 문학의 고유한 장점이다. 이런 체험은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여러 순간에 예방 주사가 됨은 물론이고, 그런 문제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판단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이 판단력은 앞으로 우리가 무수히 직면하게 될 판단의 순간마다 숙련된 항해사처럼 우리를 이끌 것이다.
그럼 이제 왜 하필이면, 취직에 당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것일까. 이런 것은 취직 후에 여가로 존재하면 안 될 것일까. 그 이유가 분명 있다. 문학은 언제나 당대 문제에 있어서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이미 문학을 여가로 대할 땐 우린 그 문학 작품이 가진 진지한 태도를 가벼히 구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사람이 설렁설렁 듣는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소통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마치 소파에 누워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란 심정으로 재미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문학이 지닌 진정한 메시지를 놓치고 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나치게 추앙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젊은 시기에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아버린다면 나중에 그런 관심이 다시 생긴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긴 수련이 필요하다. 그 수련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딱한 경우가 생긴다.

 

문학 독서의 실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되면 당장은 의욕이 넘쳐서 책을 집어들 것이다. 아마도 유명한 책이나 추천을 받은 책을 고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간 순위로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독서는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각자의 독서 성향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은 대체로 쉬운 수준의 독서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가 읽을 것인가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는데, 그 독자 수준과 자신의 수준이 비슷한 작품을 고르는 게 좋다. 특히 문학 작품을 읽는 데 있어서 지적 허영은 금물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는 하나의 장식품으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작품을 찾았다면, 두 번째로는 작품을 읽기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시간은 독서를 방해할 수 있는 모든 요소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이나 친구, 애인, 컴퓨터, 애완동물, 피로, 음악 등 방해할 수 있는 요소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내 비법을 말하자면, 일부러 책을 읽는 요일을 만든다. 모든 방해 요소를 털어버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카페를 찾아 그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굳이 카페를 장소로 잡는 이유는 독서의 시작을 신선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평소에 잘 가지 않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장소가 결정된 후에 중요한 점은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고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할 때 한 번에 완벽하게 이해하겠다고 읽기 시작하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일단은 7할이나 8할만 이해되도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렇게 집중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용이 정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그때부턴 즐기는 일만 남았다. 만약 수준에 맞는 책을 제대로 고르기만 했다면, 벌써 다 읽었다는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 채 책은 끝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 속의 인물을 실제로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 인물들이 살아있는 인물만큼이나 생동감을 가진 채 삶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여기에서 멈춰선 안 된다. 독서는 읽기 전에 책을 고르는 과정, 그리고 실제로 책을 읽는 과정, 책을 읽고 정리하는 과정이 하나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완비되어서야 비로소 하나의 책을 읽은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책에서 읽은 내용은 자신도 모르는 새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 과정이 중요하다. 좋은 책을 고른다면 그만큼 자신의 삶에 보약을 마신 것처럼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나쁜 책을 고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을 조금씩 마신 것처럼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음으로 마음이 아닌 머리에 새기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과 인상 깊은 부분을 노트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억을 도와 책을 정리할 수 있고, 나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 책의 핵심보다 지식의 축적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산과 들은 그동안 감춰놓은 화려한 옷을 입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실내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책을 들고 산과 들로 나가자. 가끔 단풍에도 눈을 돌리고, 하늘도 바라보자. 문학 읽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날씨나 바쁜 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라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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