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산림학과 겸임교수)
아이가 태어나서 나무를 심고, 나무식탁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나무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가로수 사이를 지나 학교에 가고, 나무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숲속을 거닐고, 등산을 하고, 나무와 숲으로부터 만들어진 화석연료를 이용해서 삶을 영위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때에도 우리는 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영면에 든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 동안 나무와 숲의 언저리에서 나무와 숲과 함께 일생을 영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나무와 숲은 수백만년 동안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의 문화가 되었다.
나무, 숲의 어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본식물을 대표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나무이다. 나무와 수목과 목본은 모두 거의 맡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나무는 주로 일상생활의 사회성을 띤 말로 쓰이고, 수목은 산림자원학이나 임학, 목본은 생물학이나 식물학의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무의 15세기 표기는 ‘나모’ 이다. 나무는 어근의 ‘남’에 접미사 ‘오’가 붙어서 만들어진 ‘나모’가 ‘나무’로 변했다. 어근의 ‘남’ 은 ‘낟 > 날 > 날암 > 나암 > 남’으로 변화해 왔다. 나무의 고어인 ‘남ㄱ’는 <용비어천가 2장>, <월인석보>, <삼강효>, <법화경언해> 등에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현재의 나무가 되었다.
숲이란 수풀이 줄어서 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숲과 같은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산림(山林) 또는 삼림(森林)이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나무가 무성하게 꽉 들어찬 곳, 또는 풀, 나무, 덩굴이 한데 엉킨 곳을 숲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산에 있는 숲을 산림으로, 나무가 많이 있는 곳을 삼림으로 정의하고 있다. 숲 또는 수풀을 나타내는 고어는 조선 초기 15세기 중반에 간행된 <월인석보>나 <석보상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는 ‘수ㅎ’의 형태로 숲이 나타나고 있어서 ‘숩ㅎ > 수플 > 숩플’로 쓰이다가 오늘의 숲으로 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숲 그리고 문명발달
초기 문명이 본격적으로 개화된 이면에는 나무와 숲이 있었다.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는 메소포타미아 유역, 나일강 유역, 인더스강 유역, 그리고 황하 유역이다. 이들 지역이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풍부한 수자원과 더불어 숲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숲이 없었다면, 또는 연료나 건축재로서의 나무가 없었다면, 그리고 숲을 개간하여 얻은 기름진 경작지가 없었다면, 이들 초기 문명도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나무와 숲을 배경으로 전세계로 널리 퍼져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하지만 인류 문명을 개화시키는데 숨은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4대 문명 발상지의 나무와 숲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문명을 개화시킨 이 지역들의 나무와 숲은 오늘날 대부분 사막이나 준 사막과 같은 불모지로 변했으며, 그러한 현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였던 이라크와 주변지역에서, 인더스 문명의 펀자브와 라자스탄 지역에서, 나일 문명의 이집트 지역, 황하 문명의 고비사막과 그 주변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4대 문명 발상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문명의 흥망과 성쇠에는 숲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으로 이와 같은 인구의 증가와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따른 경작지, 주거지의 확대와 연료 소비의 증대는 숲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대륙의 5% 미만만이 숲으로 남아 있다.
나무, 숲 그리고 환경
넘어야 할 새로운 파고인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들 중에 숲과 관련된 것들이 적지 않다. 토양 유실, 숲의 파괴, 사막의 확장, 산성비, 온실 효과, 대기 오염, 생물다양성의 손실, 수질 오염 등이 직간접적으로 모두 숲과 관련된 환경문제들이다. 이는 인간이 이룩한 문명 발달의 대가로 전세계에 걸쳐서 많은 숲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8000여 년간 지구상에 천연림의 형태로 존재하던 숲의 1/3이 경작이나 정착, 연료와 목재 생산을 위해서 사라졌다. 또한,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의 산업활동, 문화활동 등으로 생물종의 멸종은 꾸준히 증가하였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하루에 10종씩 연간 4만 종이 멸종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같은 추세라면 2020년경에는 전체 생물종의 1/5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이 한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라는 유명한 경구가 화자되고 있다.
나무와 숲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하고 산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여 지구 상의 생명체를 유지시켜준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탄소나무계산기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인당 평균적으로 연간 약 2.6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평생 이와 같은 비율로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 평생 약 1000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그만큼 심어야 지구에게 진 빚을 갚는 셈이 되는 것이다. 독자들도 한번쯤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각 가정에서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그에 따라 심어야 하는 나무의 수를 헤아려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무, 숲 그리고 문화
과거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아이들과 함께 자란 나무들은 아들이 늙어 죽을 때 관으로 쓸 송판으로, 딸이 시집갈 때 필요한 농을 짤 재목으로 사용하였으며, 식재된 나무들이 잘자라서 아이들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를 기원하였다.
자녀의 출생이나 결혼을 기념하는 개인적인 의식은 물론이고, 기념적인 건축물의 준공식에서,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장소에서, 나라 사이에 중대한 조약이나 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나무를 심는 의식은 상징적 의미의 하나로서,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심성 속에 강렬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 만능의 풍조와 인간 중심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도, 숲은 중요한 하나의 문화적 의미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숲을 삶의 터전으로, 예술의 소재로, 신의 대리물 혹은 수호신으로 여기며 숲과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이는 우리의 심성에 각인되어 세대를 이어 내려옴에 따라, 문화가 전래된 이동 통로를 따라, 지구 상의 구석구석으로 전파되어 온 인류의 문화 요소가 되었다.
숲은 인류가 발전시킨 자연 지배 문화의 주된 동력으로 이처럼 문명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숲은 문명 발달기에 고대 인류에게 끼쳤던 물질적 유용성이나 정신적 상징성과는 오히려 다른 가치 체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내일의 문명이 자연과 공존해야 존립 가능한 새로운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여 인간만이 살아남는 문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문화라야 영속가능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속가능한 사회는 인간과 자연과의 화합할 수 있는 문화의 토대 위에서 존립할 수 있다. 즉 자연 조화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것은 특히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숲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단순하게 자연자원으로서의 숲이 지닌 가치보다 오히려 환경 지지체로서의 가치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래서 목재 생산의 경제적 기능 이외에 숲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의 지속적인 공급을 위한 중요한 환경재로서, 정서 및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장소로, 지구 가족의 생물다양성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로,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위한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나무, 숲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20세기에 이룩한 국가의 대표적 업적인 국토 녹화 성공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간과하면서 살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배나 늘어난 그 놀라운 압축 고도 성장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같은 기간 동안 우리 숲의 부피가 10배나 늘어난 기적 같은 사실에 별다른 감흥을 느낄수 없었다. 그래서 국제 기구나 세계의 유수 언론이 우리의 산림녹화 성공 사례에 찬사를 보내고, 숲이 망가진 제3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한국의 녹화 경험을 익히고자 산림전문가를 파견하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숲의 참된 가치를 잊고 살고 있다.
세계 문화사를 되돌아볼 때 황폐된 숲을 완벽하게 복구시킨 예는 흔한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2백여 년 전에 국토를 녹화시킨 독일과 20세기 후반의 우리만이 성취한 놀라운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민은 세계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흔히 인류의 미래는 환경 문제의 해결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인류의 영속 가능한 발전은 전 지구적 당면 과제로 대두된 환경 문제를 옳게 해결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는 환경 보전을 중심 가치관으로 인식하는 환경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의 세기, 21세기는 지구 가족에게 새로운 소양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생태적 소양이다. 생태적 소양을 갖춘 민족은 다음 세기에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새로운 생태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 민족이 될 것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