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희(정치외교학과 석사)
지역주의의 정의
지역주의란 사전적으로는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고 지역 내의 자치성을 추구하는 주의’를 의미한다. 보통 한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양상을 반영하여 형성된 특성과 그것을 표출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역주의 갈등은 세계의 다양한 국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며, 국가의 연륜이나 지역의 역사가 깊을수록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면모를 보인다. 삶의 현실 속에서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국가 내의 지역주의는 중앙정부의 억압적인 통제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지역의 자구 노력으로 강인한 문화적 특징을 잉태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한 국가일지라도 민족이나 인종 구성이 지역별로 상이하고, 산악지형 같은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고립된 경우, 지역주의는 더욱 배타성을 갖는다. 또한 종교적 갈등 혹은 경제적 불균등 같은 사회문제 등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지역주의를 탄생케 한다.
스페인의 지역주의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유럽대륙의 남서쪽 제일 끄트머리에 이베리아 반도가 위치해 있다. 이 반도에는 과거의 영광을 안고 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가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갖는 나라다. 오랜 역사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분쟁, 그리고 강렬한 지역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 지역색을 바탕으로 한 지역주의는 스페인이 한국보다 더 분명한 측면이 있다.
스페인의 지역주의는 통일 이전부터 스페인 영토에 존재하였던 다양한 봉건국가들의 색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5세기 이사벨 여제의 국토회복운동인 ‘레꽁끼스따’와 20세기 스페인 내전의 경우처럼 스페인이 역사적으로 겪은 심각한 지역 간 전쟁도 한 원인이 되었다. 스페인에서 지역주의가 강한 대표적인 지역들로는 까스띠야의 마드리드, 아라곤의 까딸루냐, 남쪽 이슬람권의 안달루시아, 그리고 끝까지 기독교의 영혼을 지켰다는 북서쪽의 아스투리아스 지역들을 들 수 있다.
지역주의는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스페인은 우리가 보통 ‘스페인어’라고 부리는 ‘까스떼야노(Castell- ano)’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지만 까딸루냐 지방에서는 ‘까딸란(Catal´an)’,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가예고(Gallego)’, 바스크 지방에서는 ‘에우스께라(Euskera)’를 사용한다. 이 밖에도 각종 비공식 언어까지 더해져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이는 스페인의 지역주의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들의 갈등은 정치.사회적 대립뿐만 아니라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적 대결과 축제로 나타나고 있어 흥미를 유발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페인 국민들이 열광하는 축구다. 이 가운데서도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각각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까스띠야 지방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까딸루냐 지방의 지역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통일의 역사적 주역인 마드리드 지역(까스띠야)과 바르셀로나 지역(까딸루냐)이 20세기 초반 서로 이념의 차이로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로 바뀌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것이 대결구도를 전제로 한 현대판 스페인 지역주의를 만들어냈다.
왕이 선택한 레알 마드리드와 까스떼야노
▲ 레알 마드리드의 심볼. 왕가의 문양이 상단에 장식되어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초기 이름은 FC 마드리드였다. 이것이 레알 마드리드로 변경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920년 당시 국왕 알폰소 13세(현 후안 까를로스 1세의 조부)가 왕실에서 사용하는 레알(Real) 칭호를 하사하면서 구단의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이름 덕인지 레알 마드리드는 다양한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명실 공히 최고의 구단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를 함에 있어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는 편이다. 구단 측에서도 또한 스페인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리그 등지에서 능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이처럼 ‘까스떼야노’는 하나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1인 지배논리에 흥미를 갖는다. ‘까스떼야노’는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까스띠야 지방 사람들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가리키는 스페인어다.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이 태어난 까스띠야 왕국에서 유래하였으며, 그래서인지 긍지가 강한 편이다. 스페인의 상징인 왕궁도 마드리드에 있으며, 대체로 ‘까스떼야노’는 명예를 중시한다. 그들의 경기에서처럼, ‘까스떼야노’는 목표 성취욕이 강한 반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저 바람으로 끝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까스떼야노’들은 명령하는 것만 좋아하며, 게으르다는 평도 듣는다.
스페인 현대사의 군부 독재 시절에도 마드리드 지역은 스페인의 중심이자 스페인 국가발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스페인 내전 시절 마드리드 지역은 까딸루냐 지역과 심각하게 대립각을 세워 전쟁했기 때문에, 마드리드 지역 주민들은 레알 마드리드팀이 FC 바르셀로나 팀과 붙는 경기에는 감정을 이입하며 관람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이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들어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티켓가격도 매우 비싸다. 그러나 영국의 훌리건처럼 실제 폭력으로 번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흥분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국가의 공권력을 무척 두려워한다. 그것은 40여 년에 걸친 프랑코 군부 통치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은 축구도 무척 좋아하지만, 국가에서 진행하는 축제도 중시한다.
국민의 구단 FC 바르셀로나와 까딸란
▲FC 바르셀로나의 심볼. 바르셀로나 시 문양을 기본으로 한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까딸루냐는 스페인이 1492년 통일국가를 완성했을 때 ‘가톨릭 왕’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이 있던 지역이다. 이사벨 여왕의 남편인 페르난도 2세는 통일 국가 스페인을 공동 통치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라곤 지역만이 온전히 그의 수중이었다. 까딸루냐가 여전히 그들만의 색깔을 지닌 것은 바로 이 같은 아라곤의 자주적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까딸란’은 까딸루냐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가리키는 스페인어이다. ‘까딸란’들은 ‘까스떼야노’가 중심이 되는 마드리드 중심의 현 스페인 체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체계 개념에 있어 입헌군주와 중앙정부의 통치를 긍정하지만, 실제 현 국왕과 총리에 대해서는 늘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까딸란’은 그들의 지역에 애착이 강하며, 지역 자치에 연관된 것에는 모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대표적인 것이 FC 바르셀로나 운영체제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구단은 단순한 연고 구단을 넘어선 상징적 지역 독립의 ‘정체성’이라 볼 수 있다. 프랑코 독재 시기 중앙정부에 의해 한이 서리도록 핍박받던 ‘피정복지의 까딸란’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끼리 더욱 꽁꽁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축구경기에는 아마 이러한 역사적 감정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페인의 국가 통일욕구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나, 축구 비즈니스측면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원한과도 같은 관심’을 불러 모아, 흥미를 더하고 입장료 수입을 극대화하는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 프로축구구단들에는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역주의와 분리주의 운동
스페인의 지역주의는 1939년 수립된 프랑코 군부 독재 정권을 거치며 더욱 강하게 발현되었다. 스페인 내란의 승리자 프랑코 장군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과도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페인의 정치발전 과정에 있어 긍정적 역할과 부정적 역할을 모두 하였다. 프랑코의 유훈적 승계를 받은 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 후 민주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프랑코의 피해자 격인 ‘까딸란’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마드리드 중앙정부에서는 ‘까딸란’들의 독립 요구를 약화시키고 순치시키기 위해 자치권을 더욱 강화해 주었지만 오히려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다.
2012년 11월 스페인에서는 까딸루냐 자치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진행되면서 까딸루냐가 분리 독립될 위기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독립을 주장하는 까딸루냐의 당이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하면서 당분간 급격한 분리 독립의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다.
강성이었던 ‘까딸란’들도 최근 까딸루냐 독립 의지를 물으면 현재로서는 독립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이것은 사실 스페인에 경제위기가 불어 닥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전후해 호황을 누리던 시절, 바르셀로나 덕에 까딸루냐 지역은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바로 까딸루냐 지역이 마드리드보다 관광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유럽 위기로 인해 유로존이 휘청거리게 되자 스페인 관광산업은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이에 ‘까딸란’들이 위기의식을 갖게 되어, 지역주의적 독립에 보다 소극적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오늘날 몇몇 지역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분리주의 운동을 펼치고는 있지만, 어떤 면에서 스페인의 지역주의는 오늘날의 스페인 국가를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스페인 중앙정부는 여타 지역의 자치권을 확대하고, 지역적 강점을 그대로 인정하는 민주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등 지혜로운 정책으로 지역적 갈등을 해소시켜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스페인 정치의 골칫덩어리인 바스크 분리운동도 스페인 정부의 강온 양면 정책이 주요하게 작용하여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최근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바스크 무장단체인 ETA의 정치조직인 바타수나가 해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물론 ETA의 지금까지 행보를 볼 때 번복의 여지가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스페인의 각 지역에서 지역주의에 관한 변화의 싹이 트고 있다고 보인다.
결론
스페인의 지역주의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고대 민족들의 이입과정에서 출발했었다. 로마세력의 영향이나, 이슬람세력의 정복은 스페인 지역의 민족적 다양성이란 지역주의 씨앗을 뿌렸다. 로마세력은 까딸루냐의 지중해 지역에 로마 문화를 전이시켰으며, 이슬람 정복세력은 이베리아반도 남부지역 안달루시아에 종교와 문화를 전파했다. 지금도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의 제2의 로마라고 불리고 있으며,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는 중동의 유적지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에 스페인은 당연히 지역적 특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역적 다양성은 정치적으로 지역주의로 전이되었다.
그런 연유로 스페인에서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국가통일이란 대의명분을 위해 엄청난 내전을 겪은 바 있었다. 중앙지역에서 출발한 까스띠야 지역, 즉 마드리드 지역은 힘으로 스페인을 통일한 최종 승리자였으며, 까딸루냐의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 같은 변방의 지역들은 패배의 한을 지닌 채 중앙 정부에 협력해왔다. 이들 변방지역은 정복당했던 ‘역사적 한’을 축제와 스포츠를 통해 카타르시스화 하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를 통해 지난날 스페인 통일 과정에서 맺혔던 “슬픈 추억들”을 지우려는 스페인 특유의 지역주의 단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는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설정한 스페인 국민들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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